[매경춘추] 야구가 뭐길래
지난 1일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사실 오랜 야구팬으로서는 얼마 전 WBC에서 일본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할 때 받았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다. 국가대표 투수들이 스트라이크 하나 던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 당시 잠실 야구장에서 수만 명의 관중들과 금메달의 기쁨을 나누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것은 이제 우리 야구가 시들어 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야구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함께 WBC 결과가 프로야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도 있었다. 어쨌든 팬들의 사랑이 있어야 야구가 발전할 수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다시 야구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날도 있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프로야구 개막전 5경기는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201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개막 전날까지 야구계는 온갖 불미스러운 뉴스들로 다시 한번 야구팬들을 실망시켰다. 한 선수는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퇴출당했고, 모 구단장은 뒷돈을 요구했다는 혐의로 해임되었으며, KBO의 한 간부는 특정 중계 채널에 이권을 주고 뒷돈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자식이 모자란 건 감싸줄 수 있어도 범죄까지 눈감아 줄 수는 없다. 속도 상하고 분노도 일고 욕도 나온다. 당장 경기장이 만원이라고 안도할 문제가 아니다. 과연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린 야구계의 분위기가 낮은 실력과 전혀 관계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협회부터 선수까지 야구계 전반의 쇄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착잡한 마음과 별개로, 나는 주말 내내 개막 시리즈 중계를 보며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 각본 없이도 드라마 한 편을 뚝딱 써 내려가는 스포츠 경기, 그중에서도 나는 다른 종목들과 다른 특성을 가진 야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팀 경기이지만 투수와 타자의 일대일 대결로부터 시작된다. 공수가 완전히 분리되기 때문에 작전이 매우 중요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투수의 공 하나하나에 의미가 없는 것이 없으므로 벤치의 두뇌 싸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몸싸움 없는 그라운드 경기라는 점, 공이 아닌 '사람'이 홈(집)을 떠나 다시 홈으로 돌아와야 점수가 난다는 점도 특별하다.
또한, 야구는 상대적으로 선수 생활이 긴 편이다. 야구처럼 많게는 스무 살씩 차이가 나는 선수들이 함께 경쟁하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똑같이 모자와 유니폼을 착장하는 스포츠는 드물다. 무엇보다 야구에는 '희생 플레이'라는 개념이 있다. 선행 타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거포들까지 번트를 대거나 희생타를 날릴 때는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진다.
지역 감정을 부추긴다거나 3S 시대의 유물이라는 시선도 있지만, 40년의 역사를 가진 프로 스포츠이자 문화로서 야구가 한국 사회에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잘못은 엄중히 벌하고 제발, 더 이상의 잡음 없이 한 시즌이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윤성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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