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학술지들, 오픈액세스 악용하고 있다”

최정석 기자 2023. 4. 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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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액세스와 부실학술지’ 온라인 공개 세미나
“논문 수준 향상, 연구문화 발전 위한 해결책 필요”
“실적용 부실논문 양상 막을 기관, 인력 만들어야”
부실 학술지(Predatory Journal)를 표현한 사진

“논문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지만 논문 편수를 기준으로 실적을 매기는 풍토와 오픈액세스 흐름을 악용하는 ‘부실 학술지(Predatory Journal)’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윤철희 서울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는 이달 6일 한국연구재단이 개최한 ‘오픈액세스와 부실학술지’ 온라인 공개 세미나에서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 품질을 높이고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젊은 과학자들에게 좋은 문화를 물려주려면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오픈액세스는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 학술지 논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며 특별한 허가 절차 없이도 논문을 재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금과 같은 공적 자금으로 진행한 연구 관련 내용을 보는데 왜 납세자들이 돈을 또 내고 봐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오픈액세스 학술지는 구독자가 아니라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하는 과학자들로부터 일종의 출판 비용을 받는다.

윤 교수에 따르면 오픈액세스 운동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을 시작으로 일반인이 돈을 내고 논문을 보는 건 부당하다는 말이 나오면서 시작했다. 그러자 유럽의 웰컴트러스트재단, 미국의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자신들에게 연구비를 지원받아 나온 논문은 반드시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게재하라고 연구자들에게 요구했다. 여기에 전 세계 상위권 대학들이 동참하면서 오픈액세스 학술지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의 주요 대학은 물론 미국의 미국 캘리포니아대(UC) 계열 대학들과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같은 미국 대학들이 글로벌 학술지 출판사인 엘스비어와 계약을 끊었다. 지난해 8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은 정부 지원으로 나온 모든 연구개발(R&D) 논문을 즉시 무료 공개로 전환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후부터 연구자가 출판사에 돈만 내면 아무리 질이 떨어지는 논문이라도 학술지에 실어주는 ‘부실 학술지’가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점이다. 당초 오픈액세스는 개인 구독자나 교육·연구기관이 부담했던 학술지 구독료가 너무 비싸다는 점 때문에 등장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하지만 일부 출판사들이 여기서 ‘돈냄새’를 맡으면서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6일 윤철희 서울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에서 개최한 ‘오픈액세스와 부실학술지’ 온라인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 중이다. /유튜브 캡쳐

윤 교수는 교육·연구기관 논문 게재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운영한 게 부실 학술지 문제를 더 키웠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2019년 네이처 보도를 인용하며 “남아프리카 지역은 부실 학술지에 전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 논문을 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기관에 따라 논문 한 편 게재에 최대 7000달러(약 923만원)을 인센티브로 지급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학술지에 논문을 낸 것에 보상을 주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부실 학술지 문제를 더 부추기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논문 양을 기준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스위스 오픈액세스 출판사인 MDPI처럼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대형 국제학술지 출판사도 부실 학술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MDPI는 425종의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는 거대 출판사다.

윤 교수는 “MDPI 소속 학술지는 대체로 논문 초안을 받고 20일 안에 첫 번째 검토를 끝낸다”며 “논문 검토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MDPI 소속 32개 학술지는 지난 2021년 매일 1개 이상씩 ‘스페셜 이슈’ 명목으로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스페셜 이슈는 학술지가 특정 주제를 제시하고 이에 맞는 논문을 투고받아 실은 것이다. 원래는 주제가 좁아 더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하는데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해외에선 현재 부실 학술지를 학계에서 걸러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검증된 과학 학술지 명단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갱신 중인 영국의 분석회사 클래리베이트는 지난달 50종의 학술지를 학술 논문을 평가하는 웹오브사이언스 명단에서 삭제했다. 이 중 MDPI 학술지 2종도 제외됐다. 자체적으로 만든 24개의 품질 측정 기준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이들 학술지가 수준 미달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도 상황이 좋지 않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오픈액세스센터에 따르면 2017~2021년 한국연구재단에 R&D 지원을 받은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12만6505편 중 부실 학술지로 의심되는 곳에 실린 논문이 2만103편(15.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 쓰인 출판비용만 649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수준 높은 연구를 하라며 지원한 나랏돈이 부실 논문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윤 교수는 부실 학술지에 논문 여럿 게재하는 식으로 실적을 올리는 행위를 적발해 관리할 수 있는 부서를 각 기관이 운영하고 여기서 일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또 연구자 개개인이 논문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조하고 공유하며 연구 문화를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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