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목숨을 걸고 무조건 간다. 남겨진 대원들을 구하러."

허연 기자(praha@mk.co.kr) 2023. 4.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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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인격으로 조난된 대원들을 귀환시킨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1874~1922)

1914년 12월 5일 영국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대원 27명을 이끌고 남극 횡단에 나섰다. 그러나 혹독한 추위 때문에 배는 얼음에 갇혔고 탐험대는 오도 가도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지금이야 통신 등 과학기술 발달로 살아 돌아올 확률이 높겠지만 100년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비슷한 사고를 당한 탐험대는 대부분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섀클턴의 탐험대는 2년 만에 무사히 귀환했다. 그들은 도대체 얼음 위에서 어떻게 2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사건이 있고 나서 한참 시간이 흘렀을 즈음 사람들이 당시 1등 항해사였던 라이오넬 그린스트리트에게 어떻게 그런 극한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단 한마디였다.

"섀클턴이었으니까요."

섀클턴은 탁월한 인격으로 2년 동안 조난된 탐험대를 이끌었다. 생존을 위한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결국 극단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섀클턴의 인격은 대원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5명의 선발대를 데리고 새로운 탈출 루트를 개척하러 갔던 섀클턴은 천신만고 끝에 피신할 수 있는 포경기지를 발견했다. 목숨을 건질 기회를 얻은 대원들은 다른 대원들이 남아 있는 난파선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1300㎞에 이르는 그 죽음의 길을 다시 돌아간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단호했다. "무조건 간다. 남겨진 대원들을 구하러."

영국 지질학자 레이먼드 프리슬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극지 탐험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다면 무릎을 꿇고 섀클턴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겠다." 그는 로버트 스콧, 로알 아문센, 섀클턴 모두와 같이 일해본 사람이었다.

"과학적 리더십이 필요하면 스콧을 부를 것이다. 신속한 정복을 원하면 아문센을 부르고 싶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섀클턴을 보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다급한 상황일수록 리더의 인격은 큰 힘을 발휘한다.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 취임식 날 아주 특별한 손님을 한 명 초대했다. 교도관이었던 제임스 그레고리였다. 두 사람은 취임식장에서 오랫동안 포옹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적대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도관은 만델라의 품위와 인격에 감동했고 그를 존경하게 됐다. 그레고리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만델라를 보호했다. 만델라는 그레고리에게 혐오가 아닌 용서와 화해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다. 훗날 대통령이 된 만델라는 늘 말했던 대로 자신을 탄압했던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새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인격은 운명보다 힘이 세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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