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에…'멸종 위기' 처한 모래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4.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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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빌딩·반도체·안경까지
전세계 1년 사용량만 500억t
북한 등 70개국선 불법채취도
모래부족 몸살 앓는 中양쯔강
토착 희귀어종 돌고래 사라져
모래 쟁탈전의 피해자는 자연
모래전쟁 이시 히로유키 지음, 고선윤 옮김 페이퍼로드 펴냄, 1만6800원
베트남 하노이 강가에서 모래 채취가 한창인 모습. 매경DB

'멸종'이란 단어를 들으면 보통 공룡이나 동물, 식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누가 "모래가 멸종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래의 멸종'은 예고된 사실이다.

도시화에 따른 모래 수요의 폭발적 증가, 국제조약이 미비한 틈바구니를 뚫고 위험한 거래에 뛰어든 '모래 마피아', 모래를 둘러싼 국가 간 수급 불균형과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전모를 추적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30년간 환경전문기자로 일한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신간이다. 모래 알갱이 하나에서 지구와 인간의 고통스러운 함수를 추적했다.

"땅 파봐라, 돈 나오나"란 옛말도 있지만, 땅에서 모래를 갖다 팔면 정말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신축 건물에 사용되는 콘크리트는 70%가 모래로 구성돼 있고, 반도체의 원료 중 하나는 흰 모래 '석영사'다. 중동과 중국에 건축되는 1000m짜리 초대형 건물부터 우리가 손에 쥔 스마트폰과 안경까지 모래를 사용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현대 문명은 그야말로 모래 위에 쌓은 성(城)이다.

100년 전만 해도 누구든 '모래의 고갈' 따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래는 길에도 산에도 들에도 있었다. 모래는 애초에 주인이 없는 물건으로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모래엔 그 어떤 국제조약도 없다. 모래는 공동 자원이므로 모래 거래를 규제하자는 조약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모래 불법 채굴국은 전 세계에 70여 곳, 북한은 그중 대표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식량난을 겪는 북한의 지하자원에 이어 해주 등 북한 서해안에서 모래를 수입한다. 미국이 공개한 위성사진을 보면 중국 깃발을 단 279척의 배가 모래를 담고 있다. 2019년 한 해에만 2200만달러의 모래가 북한에서 중국으로 수출됐다. 북한이 외화벌이에 모래까지 내보내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최대 모래 수입국이다. 싱가포르는 국토 매립용 모래를 들여와 기존 국토 면적의 25%에 달하는 '땅'을 만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세워진 아랍에미리트의 초호화 도시 두바이도 호주에서 모래를 대량 수입해 건설됐다. 모두가 얕본 모래가 외화벌이의 최전선 매물이 되고 중동 토후국 최첨단 도시를 만드는 마법의 알갱이로 부상한 것이다. 한 해 인류가 사용하는 모래는 500억t. 저자는 말한다. "지구가 수박이라면 우리는 그 달콤한 과육을 다 먹어치웠다."

하찮던 모래가 욕망의 알갱이가 되면서 모래 이권에 개입한 글로벌 채굴꾼들이 모래 거래를 단속하는 활동가나 단속 경찰을 살해하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10년간 수백 명이 살해됐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모래 채굴이 지금과 같다면 그 화살은 자연과 인간으로 향한다. 강바닥에서 모래를 캐내면 퇴적물이 떠올라 먹이를 구하기 어려워진 조류가 사라지고, 수중생물도 줄어든다. 이 경우 어류와 갑각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2000만년 전부터 양쯔강에 살아 '중국 양쯔강의 여신'으로 불렸던 양쯔강돌고래가 멸종 위기인 것도 모래 채굴에 따른 수질오염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인구 1000만명의 메가시티, 2000만명의 메타시티 등장으로 모래 쟁탈전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2030년에는 인구 1000만명이 사는 메가시티가 43곳으로 늘어나고 그중 메타시티는 델리 3900만명, 카이로 2000만명 등 적지 않은 수가 될 것이다. 고대 인류는 바벨탑을 쌓다 무너졌던 전례가 있다. 당시엔 벽돌을 나르던 사람들의 언어가 문제였지만 이제 그 벽돌에 담길 모래가 문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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