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큐] 하춘화 "트로트가 주류였던 가요계, 현미의 등장은 파격"
"트로트가 주류였던 가요계, 현미의 등장은 파격적"
"'춘화야' 불렀던 현미, 나는 '아줌마'로 불러"
■ 진행 : 이광연 앵커
■ 출연 : 하춘화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Q]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한 가수 현미 씨 빈소에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전 빈소를 조문한 후배 가수, 하춘화 씨를 전화로 연결해서 추모 분위기 들어보겠습니다. 추모 분위기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하 선생님도 사실 YTN과 굉장히 오랜만에 인터뷰를 하시는 건데 비보를 접하게 됐습니다. 오전에 빈소에 다녀오셨거든요. 그렇게 저희가 알고 있는데.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하춘화]
아마 빈소 조문 시작하고 제가 제일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 아침이. 너무 건강하셨던 분이라서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차에 이런 일을 접하니까 너무 억울하기도 하고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고 실감이 안 나더군요.
[앵커]
억울하고 실감이 안 난다. 그리고 오전 언론 인터뷰를 보니까 고인이 춘화라고 불러준 유일한 선배, 이렇게 말씀하셨던데. 어떤 의미인가요?
[하춘화]
우리 가요계를 보면 1세대가 황금식 선생님, 이난영 선생님 이런 분들이시고요. 2세대가 현미 선생님, 이미자 선배님, 패티김 씨 이런 분들이세요. 저 같은 경우는 15년, 20년 아래 딸뻘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2세대 선배님들이 저에게 춘화야, 이렇게... 지금은 저에게 선생님이라고 지금 아나운서께서도 그렇게 호칭하셨지만 그런 후배들이 더 많거든요. 그렇게 춘화야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신 분들이 한분한분 가시니까 정말 의지할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누가 어떻게 앞으로 메워줄 것인가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앵커]
하 선생님을 춘화야라고 부르신 고인은 개인적으로 하 선생님께 어떤 선배였습니까?
[하춘화]
그 당시에는 제가 6살 때 일찍 데뷔를 해서 나이에 비해서 지금 나이를 굉장히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2세대나 1세대 선배님들하고도 한 무대에 섰어요, 사실은. 6살 때. 그런데 다들 저를 정말 딸 또 손주처럼 귀여워해 주셨던 분이고요. 지금 생존해 계신 분들이 몇 분 안 되잖아요. 다 돌아가시고. 그래서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으면 우리가 더 든든하고 또 기댈 데도 있고 하는데 정말 아쉬워요. 아쉽고, 앞으로 선배님 얼굴을 못 본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정말 아프더군요.
[앵커]
현미 선생님도 8살에 데뷔를 했고 또 하 선생님도 6살에 데뷔해서 공통점이 있네요.
[하춘화]
그 당시에 파격적인 가수셨어요. 신문화와 트로트가 주류를 이뤘던 가요계였는데 미8군 출신이시면서 혜성처럼 나타나셔서 굉장히 다이내믹한 그런 창법으로 노래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정말 시원하고 정말 이런 가수가 또 등장을 했구나 할 정도로 무용도 잘하셨고. 한명숙 선생님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 그 두 분하고 아주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가수였습니다, 당시로는.
[앵커]
혹시 언론에 소개되지 않은 그런 어린시절, 혹은 젊은 시절의 일화가 있을까요, 두 분 사이에?
[하춘화]
분장실에서요. 현미 선생님하고 한명숙 선생님이 흉내를 참 잘 냈어요, 다른 사람. 노래도 흉내를 잘 내셨지만 행동. 그래서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같은 가수나 동료들에게 항상 웃음과 기쁨을 주시는, 늘 평상시 행동이 에너제틱했어요, 현미 선배님은. 그래서 누구도 그 선배님에 대한 건강을 의심한 적이 없었고요. 얼마 전에 넘어지셔서 허리 좀 다치셔서 허리가 굽으셨지만 그 이외에는 건강은 항상 소리도 짱짱하게 나오셨잖아요.
[앵커]
그렇군요. 생전에 에너지가 넘쳤던 증언을 해 주셨는데.
[하춘화]
모든 것이 긍정적이셨어요.
[앵커]
문화계에 울림을 준 부분이 본인이 80대 중반이심에도 불구하고 효도 콘서트, 독거노인을 위한 공연 이런 데도 놓지 않은 걸로 알고 있거든요. 좌절하지 않고 이런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고인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런 에너지의 원천.
[하춘화]
항상 부정적인 생각이 없으시고요. 늘 긍정적이세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얘, 너무 좌절하지 마. 너무 우울해하지 마. 힘내. 우리는 건강해야 건강한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어쩌다 만나면 꼭 희망차고 힘이 되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어요.
[앵커]
오늘 가장 먼저 빈소에 다녀오신 하춘화 선생님과 추모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밖에도 김완선 씨, 후배이긴 합니다마는. 가수 김수찬 씨 등 가요계에서 추모 메시지가 넘치고 있거든요. 이렇게 모든 후배들이 한마음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건 고인의 업적, 가요계에 남긴 업적, 발자취 때문이겠죠. 직접 소개해 주시죠.
[하춘화]
물론이죠. 대중가요에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면서 우리 가요계를 좀 더 풍성하게 해 주셨던 그런 분이셨고 내가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는 나는 할 거다 해서 여러 후배들한테 큰 귀감이 되신 그런 분이셨어요. 그리고 한 번도 제가 우울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24시간을 쪼개서 쓸 정도로 아주 적극적으로 삶에 대응하고 대처하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아마 우리 현미 선생님의 자리는 그 어떤 분보다도 그 자리가 크지 않을까. 지금 안 계시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우리 현미 선배님이 하늘나라에서도 건강하게 좋은 노래하시면서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편히 계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앵커]
선생님은 현미 선생님을 뭐라고 부르셨어요? 선생님이라고 하셨나요?
[하춘화]
아니요. 아줌마.
[앵커]
그럼 아줌마께 마지막 고인을 보내기 위한 메시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춘화]
아줌마, 너무 뜻밖이라서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러나 너무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한테 심어놓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도 늘 아줌마의 그 업적을 생각하면서 또 조언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이 가요계를 잘 지키고 또 기대해 주신 만큼 후배들이 어긋나지 않게 잘 가요계 이끌어가겠습니다. 모든 걱정 다 놓으시고 편히 그곳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앵커]
어디선가 춘화야라는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춘화]
귀에 쟁쟁해요.
[앵커]
혹시 다음 주 발인도 가시나요, 선생님?
[하춘화]
제가 그날은 공연이 있어서 제가 못 가고요. 후배들이 아마 갈 겁니다.
[앵커]
저희가 대신 전하겠습니다. 오늘 힘드신 인터뷰였는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춘화]
감사합니다. 현미 선생님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제가 대신 감사드립니다.
[앵커]
가수 하춘화 선생님이셨습니다.
※ '당신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카카오톡] YTN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02-398-8585
[메일] social@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장 카메라로 고객 사생활 엿본 테슬라 직원들...충격적인 폭로
- 부산 횟집서 포착된 尹 대통령...한동훈 장제원 등 참석
- 권경애, '9천만 원 각서' 쓰고 잠적...변협 "곧 징계 절차 개시"
- “다 보고있다” 유아인도 잡아낸 마약관리의 ‘눈,’ 마약음료 정체 알고 있었나
- "후쿠시마 오염수 137만톤 방류? 사실은..." 도쿄전력의 속내
- "승강기 전단지 뗐다가"…'검찰 송치'된 여중생의 결말
- 사격 김예지, 돌연 선수 생활 접는 '진짜 이유' 밝혀졌다
- 지디도 탄 '사이버 트럭' 사고로 산산조각..."탑승자 전원 생존"
- [단독] 69억 상속 노렸나?...판결문으로 본 '냉동고 시신' 사건 전말
- "소녀상 중요성 몰랐다" 美 유튜버 소말리 고개 숙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