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4·5 재보선 참패에 ‘퍼주기식’ 쌀 대책 내놓은 당정

윤희훈 기자 2023. 4. 7. 16: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의무 격리’ 반대하던 당정…해법으로 ‘선제적 격리’ 제시
‘쌀 목표가격20만원’까지 제시
당정 관계자 “양곡법 거부 과정서 농민 상처”
농식품차관 “쌀 정치성 강하다…시장 기능 못하는 일 종종 발생”
3월 28일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 논에서 농민이 못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정 부담’을 이유로 거부한 정부·여당이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쌀값 대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관가에선 ‘4·5 재보선 참패’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일 발표한 ‘쌀 수급 안정 방안’에서 올해 수확기 쌀값을 한가마(80㎏)에 20만원 수준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시장 격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략직불제 확대 ▲지자체 자율 감축 등 쌀 감산 계획도 밝혔지만, 대책의 방점은 ‘선제적인 시장 격리’에 찍혀 있습니다.

◇ ‘의무격리’ 반대한 정부 대안은 ‘선제적 격리’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2023년 수확기 쌀값이 80㎏당 20만 원 수준이 되도록 수급안정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쌀값 하락이 우려될 경우 정부는 빠른 시기에 시장격리 등 수확기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브리핑 현장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한 기자는 “그동안 정부는 ‘시장격리를 해도 쌀값은 떨어진다’며 의무격리를 반대했는데, 결국은 격리를 통해 수확기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김 차관은 “격리를 할 때 ‘남는 물량만 할 것이냐?’ 아니면 ‘남는 물량+α를 할 것이냐?’에 따라 격리 효과의 차이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초과 생산량 이상을 격리하는 ‘적극적인 격리 정책’을 펼치겠다는 것이었죠.

지난해 16만원대였던 쌀 1가마의 가격은 올해 정부가 재정 1조원을 투입해 45만t을 추가 격리하면서 18만원대로 올랐습니다. 수확기 쌀 생산량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목표 가격 20만원을 달성하기 위해선 최소한 작년 수준의 시장 격리가 필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특히 정부가 쌀 목표가격을 제시하고, 적극적인 격리에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쌀 농사를 짓는 농가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작물 전환 등으로 ‘쌀 감산’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기조와는 온도차가 나는 대목입니다. 정부는 여기에 올해 예산 2조8000억원을 배정한 직불금을 내년에는 3조원으로, 2027년까지는 5조원으로 확대하겠다고 했습니다.

쌀 목표 가격과 직불금 확대 모두 재정을 투입해 농가를 지원하는 정책입니다. 그동안 시장 기능 회복을 추구하던 윤석열 정부의 정책 노선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양곡관리법 재의요구 후속대책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당정은 쌀 산업 발전 및 수급 안정 방안과 2023~2027년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 계획, 농업직불제 확대·개편 계획 등을 논의했다. /뉴스1

◇ ‘농가 홀대’ 이미지, 선거 악재 판단한 당정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을까요? 이에 대해 한 당정 관계자는 “양곡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농민들이 많았다”면서 “쌀 대책을 검토하면서 이런 부분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양곡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과정에서 정부가 농가를 홀대한다는 인식을 심었고,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지난 5일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지역구(울산남구을) 인접지역 기초의원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 패배하는 등 선거 참패 성적표를 받은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바닥 민심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됐다는 것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부정적 인식이 드러난 것도 정부에 부담이 됐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에게 윤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에 대한 시각을 물은 결과 ‘좋지 않게 본다’는 답변이 48%로 ‘좋게 본다’(33%)를 앞섰습니다. 의무매입 자체에 대한 설문 조사도 ‘농가 소득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는 응답이 60%로 ‘재정 부담이 늘어 반대한다’는 응답(28%)의 배 이상 많았습니다.

여론이 이러한데, 정부로서도 농심(農心)이 떠날 수 있는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는 반응이 관가에서 나옵니다. 이와 관련, 김인중 차관은 “쌀은 정치적인 특성이 강하다. 시장 기능에 의해서만 수급이나 가격이 결정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농심 잡기에 나선 정부·여당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연말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 단위의 재정 투입을 통한 격리로 농가 소득 보전은 기대할 수 있지만, 쌀값 상승으로 인한 도미노 인플레이션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태연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목표 쌀값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격리하겠다는 것을 밝힌 것은 농가들에 ‘쌀 농사를 늘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명확한 미래 농업 청사진을 제시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할 시점에 정부가 특정 품목에 대해서만 계속 특혜를 주면 산업 구조가 기형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