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15%나 올랐다 달콤한 주가 맛본 허쉬 당장 꺼내쓸수 있는 돈 '잉여현금흐름' 달랐다
테슬라가 자율주행차 가격을 인하하고, 삼성전자가 반도체 가격을 계속 내릴 정도로 경기가 안 좋은데 조용히 제품 가격을 올리며 실속을 챙기는 기업이 있다. 내년 창립 130주년을 맞는 초콜릿 회사 허쉬다. 이 회사는 올 들어 주가가 15% 오르며 최근 사상 최고가 행진 중이다. 창립자 밀턴 허시가 자기 주식과 재산을 기부해 만든 허쉬교육재단이 회사를 이끌며 이룬 성과다. 오너 기업이 낫다는 이론에 정면 반박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첨단 기술기업이 고전하는 가운데 굴뚝기업이 잘나가는 이유를 살펴보니 새로운 지표가 보인다. 바로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찐현금'이다. 장부상 기록된 가공의 현금이 아닌 언제든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현금이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지표가 허쉬의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최근 유가까지 반등하며 주요 상장사 잉여현금흐름(FCF)은 말라가는데 허쉬의 FCF는 되레 상승 중이다. FCF는 각종 투자를 하고도 회사에 남아 있는 진짜 현금을 말한다. 상장사가 양심적으로 장부에 기록하기만 했다면 FCF만큼 회사 재무사정을 제대로 알려주는 지표는 없다. 통상 FCF는 총현금흐름에서 총투자를 빼서 계산한다. 여기서 총현금흐름은 세후영업이익(영업이익-법인세)에 유무형 자산상각비를 더해준다.
자산상각비는 미리 사둔 설비 등 자산의 가치를 정해진 기간에 깎아주는 회계상 비용이다. 실제 현금이 빠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FCF에선 플러스(+) 요소다. 총투자는 영업활동을 위해 투입된 각종 자본투자를 말한다.
회사 성장과 재무 안정성을 판단하고 주가가 오를 것인지 가늠하는 데는 수년간 FCF의 추세가 중요하다.
2020년 말 12억5800만달러(블룸버그 기준)였던 허쉬의 FCF는 2021년 말 15억8700만달러, 작년 말엔 18억달러(약 2조3600억원)도 돌파하며 2년 연속 상승했다.
허쉬는 초콜릿 시장의 높은 점유율(46%)에 따라 초콜릿과 각종 과자류 등 제품 가격과 연간 투자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한다.
물가 상승 와중에 가격은 올리고 투자는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FCF를 높게 가져간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내년 창립 130주년을 맞는 허쉬를 '안전자산'으로 판단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쉬의 실적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허쉬의 순이익은 2021년 15억7700만달러에서 2022년 14억8900만달러로 1년 새 5.6% 줄었다. 이런 엇박자가 나는 것은 순익에는 각종 자산상각비나 외화환산손실 같은 회계상 비용이 많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허쉬와 정반대의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의 순익은 2020년 26조원에서 2022년 56조원까지 2배 이상 급증했다.
허쉬와 달리 삼성전자 순익에는 연결 회사 지분법 이익, 외화환산이익 등 실제로 번 돈이 아닌 회계상 수익이 많이 잡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착시를 걷어내려면 FCF를 보면 되는데 삼성전자 FCF는 2020년 말 32조원에서 작년 말 5400억원으로 수직 낙하했다.
주가가 2021년 1월 초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탄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FCF를 설비투자에 쏟아부으면서 총투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반도체 판매가 부진하면서 세후영업이익이 급감한 것이다. 국내 시가총액 1위 상장사인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어닝쇼크'를 발표(7일)하며 FCF가 여전히 하락 추세에 있음을 보여준다.
올 1분기 실적 추정치가 존재하는 코스피 상장사 166곳을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분석했다. 이들의 2022년 말 FCF 합계는 -2조4904억원으로 나타났다. 2021년에는 -1281억원이었는데 2조원 넘게 하락했다. 손에 쥔 현금이 없다보니 삼성전자가 계열사 삼성디스플레이에 20조원을 빌리고, SK하이닉스는 자사주를 담보로 2조원 규모 채권까지 발행했다.
허쉬처럼 FCF가 최근 2년 연속 상승한 곳은 16곳이었다. 여기에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한 곳으로 좁히니 8곳이 나왔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대위아의 FCF는 2020년 -8208억원이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현대차·기아 판매가 부진했고 차 부품 계열사 현대위아 역시 손에 쥔 현금이 부족했다. 현대위아의 현대차그룹 매출 의존도는 90%에 달한다. 현대위아는 현금흐름이 나빠지자 수년간 재무부담 완화에 올인했다. 러시아 등 유럽 공장 투자를 마무리하고 차입금 상환에 주력한 것이다.
이 회사 FCF는 2021년 768억원에서 작년 말 3534억원까지 올라왔다. 작년 9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100% 밑으로 내려갔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위주 판매 전략이 주효하면서 현대위아의 올 1분기 실적도 개선될 전망이다.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1225억원, 577억원으로 추정된다. 1년 새 이익은 12%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위험 요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 여파로 현대차 러시아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현대위아 공장까지도 멈췄다.
투자자 측에선 이런 리스크로 현대위아의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위아 시가총액(4월 3일 기준)을 FCF(2022년 말)로 나눈 PFCF는 4.4배로 낮은 편이다. PFCF는 현금흐름 대비 주가 수준을 뜻하는데 낮을수록 저평가다. 삼성전자의 PFCF는 무려 695.5배에 달한다.
최근 여의도에선 추천 종목으로 패션기업 F&F가 자주 거론된다. FCF 추세도 추천 이유 중 하나다. F&F의 FCF는 2021년 34억원에서 2022년 1757억원으로 급증했다. 본격적인 야외 활동과 해외여행족 유입에 따른 '리오프닝' 기대감도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에선 F&F가 'MLB'로 통한다. F&F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를 상징하는 MLB 브랜드를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회사다.
F&F는 1997년 메이저리그와 계약을 체결한 이유로 MLB를 딴 모자나 의류를 20년 넘게 판매 중이다. 2019년에는 중국 판권을 따낸 후 중국 내 매장을 급속도로 늘리면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에서 MLB 모자는 한국 연예인이 착용하는 모자라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류 바람이 실제 기업 현금흐름으로 이어지는 사례다. 이에 따라 F&F의 올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934억원, 1486억원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률이 30.1%에 달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아 향후 FCF는 상승 추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F&F의 라이선스 사업은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높고,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지 않아 인플레이션 시대에 유망한 투자처로 지목되고 있다.
엠씨넥스는 카메라 모듈 업체로 전기차 수요가 살아 있는 한 중장기 성장 추세에 있는 상장사다. 2019~2021년 엠씨넥스의 FCF는 지속적인 마이너스로 재무 압박을 받아 성장 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2022년 말 이 회사 FCF는 439억원으로 돌아선다.
주가 역시 화답했다. 올 들어 지난 4일까지 21% 올랐다. 투자금을 다 쓰고도 현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투자 리스크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FCF 대비 시총은 13.6배다. 올해 예상 순익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5.84배로 코스피(시장) 평균보다는 다소 높다.
엠씨넥스의 작년 1분기 영업이익은 40억원이었는데 올 1분기에는 84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작년까지 이 상장사는 애플이나 삼성전자처럼 스마트폰 판매 실적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기 침체로 스마트폰 수요가 감소하면서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엠씨넥스는 자동차 전장사업 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고 있다.
테슬라가 몰고 온 자율주행차 바람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 각종 기술 고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카메라 모듈을 늘려 운전 정확도를 높여야 하는데 엠씨넥스의 고화소 카메라 부품이 많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잉여현금흐름(FCF)
FCF(Free Cash Flow)는 기업 성장을 위한 투자에 돈을 쓰고도 남아 있는 현금을 뜻한다. 이 같은 여유 현금은 향후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 배당금 등 주주 환원에 사용할 수 있어 그 추세와 주가가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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