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당정 두탕`이 역량 강화? 정책은 맹탕·재탕·방탕
"당 정책 역량강화·주도권"도 빈말 그쳐
정책위長→원내대표 교체순서 역주행
정책위, 국정기획수석실 하부기관화?
군사작전식 당정 반복…소구력 떨어져
인기영합 쇼에만 힘줘…'가치' 재점검해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성공을 기원하겠다". 대통령실과 친윤(親윤석열)계의 '당권주자 가지치기' 집단압력 결과 불출마를 선언(지난 1월25일)할 당시 나경원 전 의원의 언급이다. 벌써 두달여 흘러간 말을 곱씹게 되는 건, 명색이 '정식 지도부'인데 출범 한달을 채우기도 전부터 휘청인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내부 '힘의 논리' 앞에만 질서정연하고, 국민의 기대는 모으지 못하는 무기력한 당이 됐다.
'연포탕(연대·포용·탕평)' 언행불일치, 당·정 지지율 줄하락은 두말하면 입아픈 일. '정책 역량' 위기마저 감지된다는 게 문제다. 김기현 당대표가 당선 전후부터 외치던 "당의 정책 역량 강화", "당의 정책 주도권" 등은 공염불이다. 정책 발표마다 용산 대통령실의 하명(下命)을 제대로 따랐는지(?), 또 뒤집힐지부터 살피는 분위기가 됐다. 와중에 '천하통일'이니 '밥한공기'니 지도부 일원들의 잇단 설화(舌禍)로 미운 털만 박힌다. 일반국민 시각엔 무기력한 데다 무질서하기까지 해 보일 것이다.
원인은 정당다움 상실에 있다고 본다. 지켜보는 국민에게 '검사동일체' 간접체험을 시켜줄 뿐, 스스로 공론화하는 기능이 사라졌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3일 의원총회에서 박대출 정책위의장 임명을 추인했다. 유력한 원내대표 후보군을 줄이려 정책위의장에 앉힌 '교통정리'란 해석이 주를 이뤘다. 딱히 부정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임명 근거는 정책위의장을 '당대표가 원내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의원총회 추인을 받아 임명한다'는 당헌 제68조 4항에 있을텐데, 부자연스러운 면이 적지 않았다.
물론 의장 교체 직전의 정책위에서 저출산 대책 일환이라는 '30세 이전 3자녀 출산한 아빠 병역면제' 검토설이 흘러나왔다가 하루 만에 당 지도부가 발을 빼는 촌극이 있었으나, 본질적 문제는 컨센서스를 정면으로 부정한 임명 방식이다. 2021년 4월22일 상임전국위·전국위에서 당헌 68조 4항 등을 개정하기 이전까지 정책위의장은 원내대표와 2인1조로 선출되는 러닝메이트였다. 이보다 앞서는 현행 64조 3항·65조 4항대로면 원내대표 궐위시 원내수석부대표 다음으로 대행하는 직책이 정책위의장이다.
정책위의장 인선 '협의' 조항이 원내대표 지명권의 흔적인 셈이다. 하지만 박대출 의장 인선이, '4월7일 조기교체'로 가닥이 잡힌 당시 주호영 원내대표의 의중을 반영한 결과로 생각할 사람은 드물다. '당대표가~임명'한다는 글자대로만 따랐으니, 목놓아 성토하던 민주당의 '검수완박법' 강행과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보름의 기다림조차 없었다. 브레이크를 상실한 3·8 전당대회의 연장처럼 보인다. 곧장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과 '소통' 강화한다고도 했는데 '당정융합론'의 정책위판, 하부기관화처럼 들렸다.
당정협의 빈도 확대를 과시했지만, 군사작전 보듯 했다. 정부여당은 지난달 29일 총리 공관에서를 양곡관리법 당정협의회가 끝난 직후 국회에서 2분기 전기·가스 요금 관련 당정협의를 했다. 31일엔 오전에만 국회에서 근로시간제 개편 당·정·대 조찬간담회, 전기·가스료 두번째 당정을 했다. 이달 5일엔 학폭 근절과 '소아·응급·비대면 진료를 주제로 오전 두차례 당정협의를 했다. 6일에도 당정은 전기·가스요금 '의견 수렴' 명분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후속대책' 명분으로 '민·당·정 간담회'를 각각 열었다.
'남발' 수준의 일정에 박 의장은 모두 자리했으나, 갈수록 당의 역할은 좁아져 보였다. 하루 '두탕' 당정에도 결실은 '맹탕'이나 '재탕'. 근로시간제 결정은 '6000명 설문조사' 발표 뒤로 숨었고, 학폭 대책엔 혁신성이나 '정순신 사건 반성' 언급이 없었다. 응급의료는 기본계획 재탕, 2분기 전기·가스요금 결정은 정치적 '보류' 결정 이후 기존 한전·가스공사 구조조정론에 '28조원' 숫자를 덧붙인 데 그쳤다. 쌀값 대책 민당정 결과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사전 자료를 빼다 박았고, 조(兆)단위 직불금 예산 확대가 주를 이뤘다.
민생·정책 여론전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당내 특위 '민생119' 위원장인 조수진 최고위원은 KBS라디오 진행자가 민주당표 양곡법 거부권 행사 이후 '쌀 농가 보호 대안'을 묻자 "민생119에서 나온 얘기"라며 "밥 한공기 다 비우기"를 꺼내들었다. 개인 사생활 간섭, 좋게 봐야 '캠페인'에 불과한 것을 '입법 대체재'처럼 말했으니 비교대상부터 어긋났다. 마치 쌀밥은 한공기조차 안 먹고, 그보다 단위당 칼로리는 더 높은 음식만 찾아먹는 이들처럼 여성을 일반화한 발언은 국민 눈높이마저 멀리했다.
질병관리청 '2021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인구 비만율은 2009년 31.3%에서 2021년 37.1%까지 늘었다. 이 기간 남성 비만율이 급증(35.8→46.3%)했지만 여성은 비만율이 26%대를 유지했을 만큼 대체로 체중관리에 민감해 보인다. 여기에 '밥 한공기를 다 비우라'는 훈계는 반감만 자초한다. 비만화 사회에서, 쌀밥 말고 다른 것을 먹어 문제라더니, 당정은 수백만원 등록금을 내야 진학할 수 있는 대학생들을 돌연 결식아동 보듯 하며 '천원의 아침밥' 혈세 지원을 늘리고 또 늘린다는 포퓰리즘에 빠졌다.
김기현 당대표는 지난달 말 경희대 학식으로 아침을 하며 "품질도 높게 해서 점심, 저녁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당정에선 대상 인원 대폭 확대(69만→150만명)한다고 한술 더 떴다. 민당정 간담회에선 아예 "쌀 소비 확대"와 이 사업을 엮었고, 여당은 농식품부에 "363개 대학교, 264만명 전체 대학생으로 확대할 방안을 검토해 늦어도 24년 예산에 반영하라"고 주문했다고 생색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세금으로 보전받는 대학교 1000원밥과 경쟁해야 할 주변 먹거리 상권 처지는 고려해봤나.
1끼 4000원으로 고정한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이 텅텅 빈다는 관가 이야기에 빗대 생각해 봤나. 1000원으로 밥값 맞추기가 민생이라면 공짜 제공은 왜 안하나. 빈곤선 미만 대상 필요불가결한 복지인가. '누구 돈'으로들 하고 있나. 창의력 빈곤, 방탕함만 드러낸 포퓰리즘이다. 민주당은 이례적으로 날 세우지 않고 표정관리 중이다. 중앙·지방정부 모두 지원을 늘리라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추궁하기도 한다. 초·중·고 세금급식 도입 때 그랬듯 진보좌파 진영이 헤게모니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싸움을 마다할 리가 없다. 자유·시장경제와 자생적 질서, 자조라는 가치만 상처입었다.
일관성에도 금이 갔다. 용산에선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 제안에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 다르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 민간 부위원장 '해임 쇼'를 하더니, 대통령 주재 회의에선 "문화 전반의 변화" "민간의 동참" 같은 말로 무(無)대책을 가리려 했다. 민주당에선 주류·비주류, 지위고하 막론하고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동질적인 노선을 대다수 구성원이 공유하고 뒷받침하는데 극히 대조적이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오답노트'를 써가며 공부할 능력도 의향도 없이, 용산의 의중만 바라보는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도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지난해 3월 대선후보 때 '인생책'으로 꼽은 밀튼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등을 주류 희망자들에게 진작 읽혔다면. '당심(黨心) 100%라 쓰고 윤심(尹心) 100%로 읽는', 선출 지도부 정당성과 운신의 폭을 좀먹는 경선을 택하지 않았다면 국민 여론이 지금같지 않았을 것이다. '쇼' 남발을 멈추고 근신·숙고해야 할 건 최고위원 한명 뿐만이 아니라고 본다.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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