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현미 조문 첫날… 조카 한상진 오열·尹대통령 근조화환
7일 원로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가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현미는 지난 4일 숨을 거뒀지만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현미의 두 아들 이영곤, 이영준씨의 귀국 일정으로 별세 3일 만인 이날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의 조카 배우 한상진도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한상진은 이모의 비보를 접하고 서둘러 한국에 귀국했으며, 이날 아침 일찍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한상진은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바라본 뒤 유족과 부둥켜안고 오열하며 슬픔을 나눴다.
현미는 연예인 집안이다. 8남매 중 셋째인 현미의 첫째 언니는 가수 노사연의 모친이며, 일곱 번째 동생이 한상진의 모친이다. 이들은 평소 방송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상진은 현미가 각별히 예뻐했던 조카로 알려졌다. 한상진은 2008년 KBS2 ‘불후의 명곡’에 현미와 함께 출연해 “이모가 나를 어릴 때 업고 키웠다”며 “긴 시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모의 출연 소식을 듣고 출연 제의가 들어와 선뜻 응했다”고 말한 바 있다.
가수 하춘화, 현숙, 정훈희, 설운도 등 연예계 후배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하춘화는 “여섯살에 데뷔했을 때 (현미와) 한 무대에 섰다”며 “현미, 이미자, 패티김 선배님들에게 제가 ‘아줌마’ ‘엄마’라고 불렀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현미는) 나에게 ‘춘화야’라고 부르는 유일한 분이었다. 굉장히 마음이 허전하다”고 했다.
설운도는 “(현미) 누님은 정말 건강하게 사셨다”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시는 분이었다. 누님만 보면 저희가 힘이 없다가도 힘이 불끈불끈 나게 했던 존재였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저는 정말 누님이 100살까지 사실 줄 알았다”며 “항상 10대 소녀 같은 마음으로 살았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셨는데 이 비보를 듣고 너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 인사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미의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전했다. 가수 이미자, 남진, 정수라 등 연예계 동료들이 보낸 근조 화환도 빈소 앞을 채웠다.
현미는 지난 4일 오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져 있는 현미를 팬클럽 회장이 발견한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현미는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에서 무용수로 서며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1962년 냇 킹 콜의 ‘It’s A Lonesome Old Town(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에 직접 가사를 입힌 번안곡 ‘밤안개’로 데뷔해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보고 싶은 얼굴’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키면서 이미자, 패티김과 함께 1960년대를 대표하는 3대 디바로 평가받았다. 1981년에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고인의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5일간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들이 맡는다.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10시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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