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었지만, 가장 찬란하게 빛난 도로공사의 V2… ‘기록으로 남은 기적이 되다’

남정훈 2023. 4. 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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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는 V리그 출범 후 가장 늦게 챔피언결정전(이하 챔프전) 우승의 맛을 본 팀이다. 2005년 V리그 원년에 정규리그를 우승한 뒤 챔프전에 직행했으나 KT&G(現 KGC인삼공사)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2005~2006시즌엔 정규리그를 준우승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KT&G에 2전 전승을 거두며 이전 시즌 챔프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했지만, 챔프전에서 당시 신인이었던 김연경을 앞세운 흥국생명에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3패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6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과 선수들이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뉴시스
이후 도로공사가 V리그 챔프전에 오르는 데는 9시즌이 걸렸다. 성남을 마지막 홈으로 썼던 2014~2015시즌, 니콜 포셋이라는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와 FA로 각각 IBK기업은행, GS칼텍스에서 도로공사에 합류한 ‘베테랑 듀오’ 이효희(現 도로공사 코치), 정대영, 27경기 연속 서브득점 기록을 세운 문정원 등을 앞세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챔프전에 직행한 것. 그러나 그해 올스타전에 공격을 시도하다 무릎 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된 당시 현역 최고 리베로 김해란(現 흥국생명)의 공백이 컸을까.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올라온 IBK기업은행에 3전 전패로 패퇴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시즌을 또 보내고, 도로공사는 2017~2018시즌 정규리그 우승과 챔프전 우승을 통해 V리그 출범 14시즌만에 그 한을 풀었다. 일등공신은 IBK기업은행에서 6시즌을 보내는 동안 챔프전 우승 3회를 이끈 ‘우승 청부사’ 박정아. 통합 우승 직전 시즌인 2016~2017시즌을 앞두고 김종민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한데 이어 FA로 배유나를 영입해 코트 가운데를 보강한 도로공사는 2017~2018시즌을 앞두고 박정아를 영입해 전력 보강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세터 이효희, 미들 블로커 정대영-배유나, 아웃사이드 히터 박정아-이바나, 리시빙 아포짓 스파이커 문정원, 리베로 임명옥까지. 2017~2018시즌 전부터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 도로공사는 정규리그에서 승점 62(21승9패)로 IBK기업은행(승점 61, 21승9패)을 승점 1 차이로 제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정규리그에선 승점 1 차이였지만, 챔프전은 도로공사의 3전 전승 압도적 우세로 진행되면서 그렇게 V리그 출범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듬해 2018~2019시즌에도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프전에 진출했지만, 이재영이 이끄는 흥국생명에 챔프전에서 1승3패로 패퇴하며 챔프전 2연패에는 실패했다.

2019~2020시즌과 2021~2022시즌이 코로나19로 봄 배구 자체가 열리지 않고, 그 사이의 2020~2021시즌엔 정규리그 4위에 그치며 봄 배구 티켓을 받아들지 못했다.

6일 인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2022-2023 V리그 챔피언 결정전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 5차전 경기, 한국도로공사 배유나가 공격을 하고 있다. 뉴스1
2021~2022시즌엔 정규리그 2위를 달리고 있었기에 봄 배구의 무산이 아쉬웠을 도로공사는 2022~2023시즌은 시작이 좋지 못했다. 에이스 박정아가 시즌 전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느라 받은 스트레스 등으로 대상포진을 앓기도 했고, 새로 영입한 카타리나 요비치(세르비아)가 기대 이하의 기량을 보이며 3라운드까지 9승9패로 1,2위 현대건설, 흥국생명과는 격차는 크고, 4,5,6위인 KGC인삼공사, GS칼텍스, IBK기업은행과는 승점 1~3점차는 초박빙 상황에 놓였다.

김종민 감독은 터키 리그에서 뛰고 있던 캣벨의 몸상태를 주시한 끝에 과감한 결단으로 카타리나를 퇴출하고 캣벨을 영입했다. 사실상 백어택이 전무해 전술적 활용성이 낮았던 카타리나를 캣벨로 바꾼 효과는 탁월했다. 캣벨 영입 후 도로공사는 11승7패를 거뒀고, 시즌 최종전인 GS칼텍스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4위 KGC인삼공사와의 승점 차를 4로 벌리며 준플레이오프 없이 플레이오프에 직행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현대건설. 시즌 초반 개막 15연승을 달리는 등 시즌 내내 선수들 지키던 현대건설은 야스민의 허리 부상이 길어진 끝에 돌아오지 못하고, 야스민의 공백을 메우느라 지나치게 힘을 많이 쓴 국내선수들의 줄부상이 이어지며 정규리그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야스민의 대체 외인으로 영입한 이보네 몬타뇨가 기대 이하의 기량을 보였고,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1위를 놓친 박탈감이 경기력에도 이어진 현대건설에 2전 전승을 거두며 4시즌 만에 다시 챔프전 무대에 올랐다.

챔프전 상대는 4시즌 전 같은 무대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흥국생명. 게다가 ‘배구여제’ 김연경이 다시 국내 무대에 돌아왔기에 그 파괴력은 4년전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플레이오프를 마치고 선수단을 덮친 감기 바이러스로 박정아, 배유나 등 주축선수들의 컨디션 저하가 이어져 원정 1,2차전을 쉽게 내주고 말았다.

그간 17번 열린 V리그 여자부 챔프전에서 1,2차전을 한 팀이 모두 쓸어담은 사례는 다섯 번. 그 5팀은 모두 챔프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흥국생명은 우승 확률 100%를 잡은 셈이고, 도로공사는 0%에 몰렸단 얘기다.

6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한 도로공사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반전은 감기 회복 후 치른 3차전에서 찾아왔다. 흥국생명의 3전 전승 우승이 점쳐지는 상황에서 1세트마저 내주고 벼랑 끝에 몰린 도로공사. 김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원포인트 서버 이예은이 2,3세트 막판 접전 상황에서 등장해 신비한 ‘서브쇼’로 흥국생명 리시브진을 흔들어놓으며 두 세트를 잡아냈고, 승기를 잡은 도로공사는 4세트마저 집어삼키며 기사회생했다. 4차전은 무려 112개의 디그로 상대 공격을 걷어올리는 끈적한 배구로 흥국생명을 또 다시 격침시키며 기어코 승부를 마지막 5차전까지 끌고갔다.

우승 확률 100%에서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인 흥국생명과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기적의 우승’에 도전하는 도로공사의 챔프전 5차전은 매 세트 2점차로 승부가 갈릴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5세트까지 158분 진행된 이날 경기는 여자부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최장 경기 신기록으로 남았다. 아울러 KBSN스포츠와 SBS스포츠 양사의 동시 생중계로 진행된 이 경기는 합산 시청률 3.4%로 V리그 역대 최고 시청률 신기록까지 세웠다.

흥국생명은 김연경(30점)-옐레나(35점) 쌍포가 30점 이상, 공격 성공률 45%를 모두 넘기며 맞섰고, 도로공사는 캣벨(32점)과 박정아(23점), 배유나(18점)의 삼각편대로 맞섰다. 결국 승부는 집중력에서 앞선 도로공사의 승리였다. 특히 3세트 19-23으로 뒤진 상황에서 상대 범실 3개를 묶어 단숨에 6점을 따내며 세트를 끝낸 게 결정적인 장면이 됐다. 챔프전 5경기에서 112점을 몰아친 캣벨은 ‘대체 외국인 선수의 품격’을 보여주며 챔프전 MVP에 등극했다.

게다가 여자부 챔프전 우승 현황을 살펴보면 흥국생명 4회, KGC인삼공사 3회, IBK기업은행 3회, GS칼텍스 3회, 현대건설 2회로 도로공사의 V2가 가장 늦었다. 비록 가장 늦었지만, 누구도 해내지 못해지 못한 ‘전인미답의 고지’였던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 우승이었기에 올 봄을 찬란하게 빛냈다.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배구단의 5차전 경기. 4세트 한국도로공사 박정아가 팀 득점에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2017~2018시즌부터 시작된 ‘박정아-배유나 시대’의 도로공사는 V2를 완성하며 해피엔딩을 맞았다. 박정아와 배유나는 9일부터 FA 자격을 얻게 된다. 과연 두 선수는 내년 시즌에도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이번 봄 배구에서 보여준 맹활약으로 그들의 몸값이 올라가는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릴 정도였기에 두 선수를 모두 잡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그렇게만 된다면 올 시즌 뚫어낸 역경과 고난, 그리고 찬란한 기적은 박정아, 배유나 그리고 도로공사의 자산이 되어 내년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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