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남 “친누나 같던 故 현미, 큰 별이 졌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큰 별이 졌어요.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너무 말 없이 떠나버렸다는 게. 마음이 좋지 않네요."
원로가수 서수남(80)이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서수남은 "개인적으로는 현미 누나지만, 현미 씨 하면 본인도 '밤안개 현미'라고 칭할 정도로, 그 우렁찬 육성으로 '밤안개'를 부르는데 진성과 가성을 활용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로가수 서수남(80)이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서수남은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된 현미의 빈소에서 취재진과 만나 고인과의 생전 추억을 떠올렸다.
서수남은 “현미 누나와 미8군단 시절엔 활동이 겹치지 않았지만 이후 많은 무대에서 활동하며 몇 년을 저녁마다 매일 만났다. 개인적으로 ‘수남아’ ‘누나’ 하던 사이다. 친남매처럼 지냈는데 최근엔 코로나도 있고 해서 못 만났다. 쉬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누나가 작고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다. 친가족이 돌아가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경황이 없었다”고 비통해했다.
가수 현미의 위대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서수남은 “개인적으로는 현미 누나지만, 현미 씨 하면 본인도 ‘밤안개 현미’라고 칭할 정도로, 그 우렁찬 육성으로 ‘밤안개’를 부르는데 진성과 가성을 활용해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서수남은 “성량이 크고 음악성이 굉장히 좋다. 원래 무용으로 시작해 체격이 커도 무대에서 자연스럽고. 어딜 가나 각광 받는 훌륭한 가수였고 선배였다”고 말했다.
그는 “큰 별이 졌다. 가슴 아프다. 누구나 가는 길이지만, 너무 말 없이 떠났다는 게, 홀연히 가버려서 그게 좀 아쉽다. 떠나기 전에 한번이라도 얼굴 봤으면 마음이 안좋지 않을텐데, 많이 애도해주시고 많이 슬퍼해주시고 해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서수남은 또 “너무 갑작스럽게 보내드리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현미 선배님을 좋아하던 후배들이 같이 모여 추모 공연을 선배님 영전에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 모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조문 첫날, 빈소는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큰 아들 이영곤씨와 조카인 배우 한상진이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은 빈소가 차려진 직후 애통함을 금하지 못하고 부둥켜 안고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빈소에는 오전부터 하춘화, 설운도 등 후배 가수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가수 이미자, 남진 등 동료 가수들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도 근조 화환을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5일간 엄수된다. 이자연 회장과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나서고,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는다. 발인은 11일 오전 10시고, 고인의 유해는 두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으로 향한다.
현미는 지난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고인은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 했다.
작곡가 고 이봉조와 사이에 영곤, 영준 두 아들을 뒀다. 장남 이영곤은 고니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둘째 며느리는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알려진 가수 원준희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Copyright © 스타투데이.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