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챔프전이라 생각하시라" → 말이 '씨'가 됐다

권수연 기자 2023. 4. 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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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 김종민 감독(좌)-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MHN스포츠 삼산, 권수연 기자) 첫 맞수가 마지막 맞수로 막을 내렸다.

지난 6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 '2022-23시즌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최종전)에서 한국도로공사가 흥국생명을 풀세트 혈전 끝에 세트스코어 3-2 (23-25, 25-23, 25-23, 23-25, 15-13)로 꺾고 챔프전 정상에 올랐다.

1,2차전을 내줬지만 3,4차전을 반격하며 50%의 확률을 움켜쥔 도로공사 선수단은 공수방면에서 훌륭한 팀워크를 선보였다. 한국배구연맹(KOVO) 통계에 따르면 1, 2차전을 승리한 팀의 우승확률은 100%에 달한다. 그러나 도로공사에게만큼은 적용되지 않는 확률의 법칙이었다. 

사상 최초의 기록을 이뤄냈다. 도로공사는 2017-18시즌 이후 5년만의 챔프전 우승에 이어 V-리그 출범 후 사상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역스윕 우승이라는 업적을 만들어냈다. 

캣벨 32득점, 박정아 23득점, 배유나 18득점의 공격화력과 더불어 문정원(63개 시도 35개 정확)과 임명옥(22개 시도 17개 정확)의 리시브, 3세트 반짝 투입된 안예림의 토스까지 빼놓을 것 하나 없는 팀 플레이의 정수였다. 김종민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에게 "기적을 일궈낸 선수들에게 너무나 고맙다, 시합하면서 선수들에게 감동받았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규리그 1위 트로피를 함께 들었던 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은 결국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등을 돌리고 말았다. 김연경과 더불어 김해란이 공수에서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햄스트링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이원정의 토스는 불안했고 체력 고갈이 찾아온 김미연의 리시브가 흔들렸다. 34개 시도에 9개 정확을 기록했다. 적절한 선수 교체기용이 필요했지만 아본단자 감독의 운영은 경기 말미에서 헤매는 느낌이 강했다.

득점 후 기뻐하는 흥국생명과 아본단자 감독ⓒ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한국도로공사 선수단과 김종민 감독이 작전타임을 가지고 있다ⓒ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남자부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다소 비장하게 말했던 "한국에는 한국의 태양이 떠야한다"는 바람은 흥미롭게도 여자부에서 이뤄졌다. 김 감독은 "감독이 외인이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단에서 원하면 능력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프로"라는 말로 시즌을 여유있게 마무리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2월, 그림은 완벽히 반대였다. 

아본단자 감독은 2월 18일 입국해 23일(5라운드)부터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공식적으로 잡고 첫 데뷔전에 나섰다. 재밌게도 당시 아본단자 감독의 국내 첫 상대 역시 도로공사였다. 데뷔 무대는 흥국생명의 홈 구장인 인천 삼산체육관이었다. 이 날 아본단자 감독의 첫 경기였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인터뷰 장소 역시 기존과는 달리 조금 더 넓고 큰 세미나실이었다. 

당시 사전 인터뷰를 위해 바뀐 기자회견실을 찾아온 김종민 감독은 머쓱한 웃음으로 착석했다. 어디선가 "미리 보는 챔프전이라고 생각하시라"는 농담이 들렸다. 

스쳐지나가는 한 마디였지만 운명은 얄궂게도 그 날과 마지막 날을 완벽히 대치시켰다. 2월 당시 도로공사는 흥국생명에게 세트스코어 0-3으로 영봉패를 당했던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캣벨ⓒ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당시 김 감독은 "선수들은 열심히 해줬지만 상대가 공격력이 좋아 힘들었고 자꾸 결정적일 때 범실들이 흐름을 끊었다"고 패인을 짚었다.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캣벨이 상대 블로킹에 차단당했던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3세트에서 26-26, 듀스까지 치열하게 치고받았지만 리시브가 흔들리며 경기를 내줬다. 

공격력이 약했던 원 용병인 카타리나 요비치가 방출되고 캣벨은 4라운드부터 합류했다. 당시 김종민 감독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캣벨이 V-리그 경험이 있기에 가장 적합한 선수"라면서도 "무릎이 안 좋은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안고가야지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캣벨은 2015-16시즌 GS칼텍스에서 활약할 당시 입은 무릎부상 후유증이 2021-22시즌 흥국생명 소속 시절까지 이어졌다.

올 시즌 챔프전을 마친 후 인터뷰에서는 "흥국생명에서 나온 후 집에 돌아갈 당시엔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는 말로 몸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반면, 데뷔전 당시 승장이었던 아본단자 감독은 "승리한 기념으로 저녁은 레드와인과 고기를 먹겠다"며 성공적인 첫 경기의 기쁨을 만끽했다. 팀 전력의 '90%' 이상인 김연경만 있다면 정규리그 1위를 넘어 챔피언트로피까지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2022-2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한국도로공사ⓒMHN스포츠 이지숙 기자

아무도 당시의 도로공사를 챔프전의 주역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도로공사는 배구가 '팀 스포츠'임을 입증했다. 선수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거미줄 수비를 짜내고 이를 바탕으로 득점까지 안정적으로 연결하며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프전까지 올라왔다. 특히 캣벨의 볼 처리능력은 4차전에서 절정에 달해있었다. 

반면, 흥국생명은 마지막 순간 해결능력에서 흔들리며 선수들 개인의 분투로 끝나고 말았다. 조직력은 미약했고 허둥지둥 달려가는 모습만 남았다. 부상입은 몸으로 뛰던 세터 이원정은 4세트 19-17로 앞선 상황, 1분 7초가 넘는 장기랠리 끝에 완전히 지쳐 네트 기둥 옆에 쓰러졌다.

김연경 역시 디그를 위해 뛰다 바닥에 누워 몇 초간 일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승부처 범실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3세트 23-19로 흥국생명이 앞서있던 상황에서 옐레나의 아웃 범실은 도로공사에 그대로 기회를 내주고 말았다. 

처음과 완벽히 대조된 상황에 놓인 두 사령탑은 큰 여운과 뼈저린 아쉬움을 접고 이제 다가올 시즌을 대비해야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림으로 화려하게 시즌의 막을 내린 프로배구는 오는 10일(월), 한 시즌을 빛낸 선수들과 함께 V-리그 시상식으로 공식 일정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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