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정맥류' 급증엔 숨은 이유가?…실손 제외 '악몽' 다시 떠오른다

박정렬 기자 2023. 4. 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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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맥학회의 주도로 하지정맥류 진료와 연관이 있는 6개 학회가 함께 발간한 '하지정맥류 진단을 위한 근거중심 초음파 검사법' 표지. /사진=대한정맥학회 등

하지정맥류 진단 방법을 두고 학회와 의사회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한정맥학회와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등 6개 학회가 최근 '하지정맥류 초음파 진단을 위한 근거중심 초음파 검사법'을 발표한 것을 두고 개원가 중심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회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피부 쪽 정맥(표재 정맥)이 비정상적으로 부푼 상태를 말한다. 나이가 들어 혈액을 한쪽으로 보내는 판막이 고장 나거나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경우, 오래 서 있는 직업에서 생기기 쉽다. 과거 부풀어 오른 혈관을 절제했던 데서 지금은 콘크리트를 바르듯 혈관을 막는 주사 경화 치료, 혈관을 지지는 고주파·레이저 정맥 내 폐쇄술 등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적용되고 있다.

하지정맥류 환자는 고령화와 맞물려 가파르게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하지정맥류 환자는 2017년 24만723명에서 2021년 37만7895명으로 5년 새 13만명 이상 늘었다. 그 기저에 실손보험 적용에 따른 과잉 진료가 존재한다는 게 학회의 판단이다. 이성호 대한정맥학회 이사장(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은 "정맥질환은 초음파를 이용한 정확한 진단이 필수지만 진단 특성상 주관적 판단의 개입이 많아 명확한 기준 확립과 술기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라며 "과잉 진료에 따른 불필요한 분쟁과 불신을 막기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검사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사법이 발표되자마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의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첫째는 검사법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의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의사회가 지적하는 것은 측정 방법이다. 학회가 발간한 검사법에는 환자가 서 있는 자세에서 측정하되 이것이 어려우면 앉거나, 침상을 세워 상체를 세운 자세(Reverse Trendelenburg, 역트렌들런버그)로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의사회는 기립 저혈압일 땐 검사 도중 쓰러져 다칠 우려가 있는 만큼 환자 안전을 위해 안전띠를 착용한 후 침상을 세워 검사하는 것이 더 좋다고 반격한다. 김승진 의사회장은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의 역트렌들런버그는 인정할 수 없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이성호 이사장은 "검사법에 둘 다 가능하다고 되어 있는데 일부만 보고 확대해석하는 것"이라 답했다.

표준 영상의 해석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정맥이 역류하거나 고이는 정맥부전은 하지정맥류의 주요 원인이다. 정맥부전은 혈류 방향을 보고 진단하는데, 이 경우 종아리 근육의 압박으로 발생하는 증강파형과 역행성 혈류에 의한 역류파형이 서로 반대방향에 위치한다. 학회 검사법에는 가로축을 기준으로 증강파형이 아래로, 역행성 혈류파형이 위에 위치하도록 측정·기록하라고 권고됐는데 이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의사회의 입장이다. 김 의사회장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파형의 위상이 바뀐다"며 "통일을 핑계로 한가지 기준만 세우는 건 '반쪽 해법'을 지침서라고 내놓은 것"이라 비판했다. 이성호 이사장은 "두 파형이 반대라는 걸 명확히 알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다"며 "가급적 이렇게 하자는 약속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회와 의사회의 대립은 사실 실손보험과 연관이 깊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국민의힘) 의원실이 손해보험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주요 비급여 지급보험금 통계'를 보면 하지정맥류 수술의 보험금 지급액은 2019년 805억원, 2020년 897억원, 2021년 1062억원, 2022년 1075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맥 환자를 두고 의료계와 보험업계 간 마찰이 계속되는 배경이다. 실손 보험사는 이미 지난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나 각각 허위 입원과 미용 목적의 치료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하지정맥류 환자 보험 적용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학회는 최근 백내장의 사례처럼 하지정맥류에도 실손보험 적용 제한 사례가 재현될까 걱정한다. 자칫 치료가 꼭 필요한 하지정맥류 환자를 성심껏 돌 본 의사까지 싸잡아서 비난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리 내부적인 자정 활동을 추진하는 게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이롭다는 판단에서 이번 검사법이 나왔다. 반면 의사회는 개원가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진단 가이드라인이 향후 실손보험사의 보험료 삭감에 악용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김 의사회장은 "가이드라인 기준을 벗어났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사례가 이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학회가 문구 수정에 동의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새로운 검사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학회는 진료지침위원회에서 근거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수정이 가능하지만, 단순 의견만으로는 바꾸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의료 단체의 갈등에 환자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앞서 과잉 진료가 문제시됐던 백내장 수술의 경우 이미 치료받았는데도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정경인 실손보험 소비자권리찾기 시민연대 대표는 "하지정맥류를 둘러싼 의료 단체의 논란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 기간 치료받은 환자도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환자 중심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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