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많아 제약·바이오 업종 유망? 고령화에 대한 5가지 착각 [왕개미연구소]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이 점치는 자산시장 미래
[왕개미연구소]
전세계 인구학자들은 2023년이야말로 향후 자산시장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곡점이라고 말한다. 인구론 측면에서 올해 두 가지 큰 변화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첫째, 중국 인구가 60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인구 보너스(생산가능인구 증가)’ 시대에서 ‘인구 오너스(생산가능인구 감소)’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둘째, 인도 인구가 중국 인구를 올해 처음 앞지르며 ‘인구대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박소연 신영증권 투자전략부장은 7일 본지 인터뷰에서 “중국발 인구배당(demographic dividend)이 가능했던 시기의 고정 관념을 이제부터 싹 바꿔야 한다”면서 “글로벌 성장 중심축이 중국에서 인도, 동남아, 중동 등 생산가능인구가 증가하는 국가로 이동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장기투자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에서 거시경제를 분석하며 잔뼈가 굵은 20년차 증시 전문가다. 그가 지난 2월 펴내 여의도에서 화제였던 ‘인구론:새로운 40년을 준비한다’라는 장문의 보고서를 토대로, 인구 고령화에 대해 개인 투자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5가지 사실을 소개한다.
1️⃣착각1. 대중 무역 흑자는 영원하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주요2개국)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아직은 1만불대인 중진국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중국은 고령화에 진입하게 된다. 유럽과 일본이 4만불대에서 고령화를 시작한 것과는 다르다.
박소연 부장은 “중국의 고성장 국면이 종료되면서 양적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앞으로 중국은 산업 고도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목표가 될 것이며, 이렇게 되면 중간재 수출을 통한 우리나라의 대중 무역 흑자 기조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고성장 수혜를 가장 많이 누렸던 국가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는데, 이제는 경제 방향성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박 부장은 덧붙였다.
중국은 지난 31년 동안 한국의 무역흑자 상대국이었지만, 올해 그런 위상이 뒤집힐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 무역적자가 작년 10월부터 올 2월까지 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해 중국은 31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적자 상대국’으로 바뀌게 된다.
2️⃣착각2. 인플레이션은 곧 잡힌다
‘세계의 공장’을 자처해온 중국은 저비용 구조로 시장을 확대해 왔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고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불을 돌파하면서 그런 이점이 사라지고 있다.
박소연 부장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던 2001년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인건비는 30배 이상 차이가 났지만, 2018년에는 5배 미만으로 줄었다”면서 “운송비나 관세, 기타 요소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해외 생산의 이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야기하게 된다고 그는 예측했다.
“찰스 굿하트 런던정경대 교수는 그의 저서 <인구대역전>에서 노령화는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 환경을 야기한다고 주장했죠. 인구론에서 만 60세 이상 고령자는 생산 인력으로 보지 않고 먹여 살려야 할 부양 인구로 봅니다. 일할 사람이 줄어드니 노동력은 귀해지고, 임금은 오를 수밖에 없죠. 제조업에서 ‘노동 비용’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미 세계 전역에서 임금 증가세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 변화와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사이클의 장기화로 이어질 겁니다.”
그런데 고령화를 가장 먼저 경험한 일본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았다. 박 부장은 “일본은 1990년 생산가능인구가 고점을 찍고 나서 오히려 물가가 하락했는데, 중국 부상으로 수입 물가를 낮게 유지했고 해외 직접 투자를 확대해서 인구 감소의 부작용을 막아냈다”고 말했다. 1990년 이후 일본의 FDI(해외직접투자) 비중은 GDP 대비 5%까지 확대됐다.
3️⃣착각3. 노령화로 감세 정책이 펼쳐질 것이다
노령화는 필연적으로 세수 감소로 이어진다. 재정이 모자라도 저금리 시기엔 국채를 찍어내면 쉽게 충당할 수 있었다. 이자 비용이 큰 부담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손쉬운 재원조달은 고금리가 고착화되는 시대엔 통하지 않는다. 미국만 해도 코로나 이후 공공부채는 31조달러(약 4경원)까지 급증했는데, 평균 금리 3%라고만 해도 이자 비용이 1조달러에 육박한다.
박소연 부장은 “역사적으로 재정이 부족한 시기에는 늘 증세가 합리화되는 경향이 있었다<아래 그래픽 참고>”면서 “이미 모든 주요국 정부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을 공식화하고 있고, 토지세·탄소국경세·빅데이터세 등과 같은 새로운 조세 개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소득 상위 1%가 가진 부의 집중도가 역사상 최고 수준까지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이 같은 ‘적극적인 증세’ 트렌드는 쉽게 받아들여 질 것이라고 박 부장은 예상했다. 실제로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대기업 최저한세(15%)와 자사주 매입 과세(1%) 등 과세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4️⃣착각4.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에서 못 벗어난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으로 쫓아오고 일본은 기술 경쟁력으로 앞서가면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 샌드위치론’은 지난 2007년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경제를 진단하며 내던진 화두였다. 중국이 강해지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것이라는 위기론이었다.
그런데 저가 물량 공세로 위협해왔던 중국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중 관계 악화가 첫 번째 이유이고, 비싸진 노동 비용이 두번째 이유다. 박소연 부장은 “탈중국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역할은 더욱 빛날 수 있다”면서 “한국 제조업에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선진국은 자국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생산 설비를 본국으로 가져가겠다지만, 수십년간 제대로 된 설비 투자가 없었던 국가가 하루 아침에 제조업 강국이 되긴 어렵다”면서 “수율을 끌어올리려면 기존 플레이어에게 인센티브를 많이 줘서 생산 공정 노하우를 빌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IPEF(인도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의 숨겨진 의도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5️⃣착각5. 고령화엔 제약·바이오가 유망하다
일반인들은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화가 제약·바이오 산업에 있어서는 대형 호재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은 80년대 후반부터 노인 환자가 늘어나면서 의료비와 약제비가 급증했다. 소비자가 늘어 시장이 커지는 만큼, 제약사간 경쟁은 심해졌다. 그 와중에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서 약값 인하 압력에 나섰다. 결국 90년대 들어 일본 제약사들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해야 했고, 제약사간 통폐합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박소연 부장은 “일본에선 대형화에 성공했거나 적극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으로 신약을 개발했거나 혹은 해외 수출로 활로를 개척한 제약사만 살아 남았다”면서 “이런 상황이 재현된다면 제약·바이오 업종 내에서의 빈익빈 부익부는 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일본의 제약 업체들 주가를 봐도, 약가 인하와 기술개발 투자비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주가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다가 수출이 증가하거나 M&A와 해외 수출로 외형 성장이 가시화되는 시기에 재평가받는 경우가 많았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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