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멍’에 제격···이상하고 아름다운 ‘현대판 분재’ 괴근식물과 아가베
“진짜 살아있는 식물이야? 피겨야?”
지난 4월 3일 오후 서울 성수동의 아모레성수. 화장품을 둘러보던 고객들이 매장 곳곳에 놓인 ‘전시물’을 감상하고 사진을 찍었다. 식목일을 맞아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과 협업으로 개최한 전시의 주인공은 요즘 인기 급부상 중인 ‘괴근식물’과 ‘아가베’다.
괴근(塊根)식물은 몸통, 줄기, 뿌리가 한 덩어리로 팽창된 다육식물을 일컫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수분을 저장하는 통통한 뿌리가 상당 부분 노출돼 식재된 것이 특징으로 특유의 독특한 조형미로 사랑받는 식물이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북남미 등이 원산지인 코덱스(caudex) 식물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현대판 분재라 해도 좋을만큼 젊은 식물 애호가를 사로잡은 것이 아가베다.
괴근식물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등장해 신묘한 마법을 부릴 것 같은 독특한 모양새로 식물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선인장을 연상시키는 외양부터 바오바브 나무의 축소형 같은 그락실리우스, 거북이 등 껍질처럼 생긴 뿌리를 가진 구갑룡. 날카로운 가시와 탄탄해 뵈는 아가베는 ‘외계생명체 같다’는 평을 들을 만큼 개성이 강하다.
이번 전시를 공동기획한 ‘아가베오브서울’ 박태현 대표에 따르면 괴근식물과 아가베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지는 이제 3년 여. 앞서 일본, 홍콩, 대만 등지에는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돼 있다. 박 대표는 국내 괴근식물과 아가베 애호가를 1천여 명 이내로 추산하고 있다.
괴근식물의 두 번째 매력으로는 희소성을 꼽는다. 보통 원산지에서 흙을 제거한 상태로 수입되는데 100개 중 10개가 살아남는다고 할 정도로 뿌리 내리기가 쉽지 않다. 수입가는 물론 배송비도 고가라 판매가도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번 뿌리내린 괴근식물은 “죽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고 할 정도로 잘 자란다. 아주 느린 속도로 자라지만, 엄청난 생명력을 지녔다는 설명이다.
박 대표는 “강한 빛을 보여주고 종류에 따라 일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물을 주면 되기 때문에 관엽식물보다 훨씬 관리가 편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으로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을 수 있고 빛이 모자라면 웃자랄 수 있다.
성장이 느리고 개체수도 적응만큼 거래되는 가격대도 높다. 일단 형태가 오밀조밀 잘 잡혀있는 괴근식물이 높은 가치를 갖는다. 최근 몇 년간 ‘식테크(식물+재테크)’로 유명세를 치렀던 몬스테라 알보 같은 희귀 관엽식물처럼 아가베도 무늬 종이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괴근식물도 식테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될 수는 있으나, 강점이자 맹점을 모두 갖고 있다”고 답했다. 아가베의 경우 번식을 위한 어린싹 자구가 나오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손가락 한두 마디만 한 자구가 10㎝ 남짓 어엿한 개체로 자라는 데에 2~3년은 좋이 걸리기 때문이다.
괴근식물 애호가가 늘면서 외국 현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정식으로 수입 판매에 들어간 업체도 속속 생기고 있다. 아가베오브서울을 비롯해 웨트룸(wettroom), 콘(conkr.official), 고어플랜트서울 등에서 괴근식물을 취급하고 있다.
현재 괴근식물 애호가들은 식물 자체뿐만 아니라 화분까지 맞춤 제작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데에도 애정을 쏟고 있다. 아가베와 괴근식물에 기반한 브랜드 에이스트리맨의 권민석 대표의 관련 행사를 개최하는 한편 괴근식물에 맞춤한 화분을 제작하고 있다. 괴근식물의 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세라믹 화분,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한 화분을 비롯해 일부러 녹이 슬게 만들어 빈티지 느낌을 내는 화분 등이 괴근식물과 찰떡궁합을 발휘하고 있다. 별도의 장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작품의 경지를 넘보는 괴근식물 화분은 스타의 패션 화보에 오브제로 사용될 정도로 ‘핫’하다.
우리보다 앞서 괴근식물 시장이 형성된 일본에서는 ‘브랜드’ 식물 시장이 자리를 잡았다.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네이버후드에서 만든 식물 브랜드 SRL의 로고가 새겨진 화분에 담긴 식물은 10~20만 원대의 고가에도 품귀를 빚을 정도로 인기다. 이제 식물도 트렌드와 브랜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박태현 대표와 콘(conkr)의 손재영 대표는 괴근식물과 아가베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자 전시를 열었다고 밝혔다. 애호가들이 고가의 소장 화분을 기꺼이 내놓은 이유다. 다만 판매 문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마켓을 열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항간에 괴근식물과 아가베 마니아 중 상당수가 남성이라는 얘기가 있다. 박 대표는 남녀의 비율을 9:1 정도로 체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관엽식물과는 또 다른 남성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여리여리하기보다는 거친 느낌이 강한데, 또 이 식물을 바라보는 ‘식멍’을 하는 묘미가 있어요.”
일률적인 주기를 따르지 않고 언제고 일생에 한 번 사력을 다해 꽃을 피우고 죽는 아가베의 자못 비장한 생애도 애호가들을 사로잡는 스토리다. 아가베만 1000여 개를 키우고 있는 박 대표도 “딱 한 번 다른 애호가의 아가베에 올라온 꽃대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강한 가시가 도드라지는 아가베와 달리 그락실리우스나 파키푸스처럼 소담한 나무 형태의 괴근식물은 여성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종이다.
‘괴근식물’ 카테고리 안에 다양한 종이 포함되는 만큼 취향과 기호에 따라 둘러보기 좋다. 현재 아모레 성수에서 전시 중인 주요 괴근식물의 경우 중소형은 200~300만원대, 대형은 500만원대에 육박한다고 한다. 물론 누가 봐도 근사하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괴근식물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도 나온다. 중년의 고급 취미로 굳어진 ‘분재’처럼 괴근식물도 고가의 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좁고 길쭉한 잎을 내는 돌스테니아 크리스파 미니 화분은 온라인식물숍에서 2~3만 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다양한 괴근식물과 아가베의 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아모레성수의 팝업 전시 ‘NEVER STOP PLANTING’은 오는 16일까지 이어진다.
장회정 기자 long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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