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현미 조문 첫날…조카 한상진 오열·尹 대통령 근조화환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psyon@mk.co.kr) 2023. 4. 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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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현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원로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가 마련돼 조문이 시작됐다. 조문 첫날부터 가요계 선후배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현미의 빈소가 차려져 오전 10시부터 조문이 시작됐다.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아들 이영곤 씨와 조카인 배우 한상진이 상주로 나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차남 이영준 씨는 8일 귀국해 어머니를 만난다. 특히 생전 현미가 예뻐했던 것으로 알려진 한상진은 영곤씨를 부둥켜 안고 오열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전에는 가수 현숙 정훈희 하춘화가 어두운 표정으로 빈소를 찾아 대선배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하춘화는 “여섯 살에 데뷔했을 때 (현미와) 한 무대에 섰다. 이미자, 현미, 패티김 선배님은 내가 ‘아줌마’ ‘엄마’라고 부르던 분들”이라며 “(현미는) 나에게 ‘춘화야’라고 부르는 유일한 분이었다”고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금도 실감이 안 난다. 100세 이상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20년은 더 사셨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든든하게 우리 가요계를 지켜주던 한 분이 떠나시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다. 이 자리를 누가 메꿔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좋은 곳에 가셔서 건강하게 노래하던 그 모습대로 하늘나라에서도 편히 계시기를 빈다”고 애도했다.

오후에는 설운도, 장미화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애통해했다.

고 현미의 아들 이영곤씨와 조카 한상진.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빈소는 대체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 조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가수 이미자, 남진, 정수라 등 동료 가수 및 연예계 선후배들이 보낸 근조 화환이 빈소 앞을 가득 채웠다.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 모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고 현미 빈소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근조화환.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5일간 엄수되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며,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았다.

고인은 미국에서 영면에 든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 겸 장례위원장은 “아드님들이 미국으로 같이 모셔가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달 받았다”며 “유족의 뜻을 존중할 것”이라 밝혔다.

5일장으로 진행하게 된 데 대해 이 회장은 “현미 선생님의 장남, 차남이 다 미국에 거주해 오늘 아침에 장남이 왔고, 내일 차남이 온다. 그래서 가족의 뜻에 따라 5일장으로 하게 됐다”며 “자녀분들이 생전 선생님으로부터 가수협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협회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가족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현미 선생님께서는 가요계의 큰 별이다. 별이 진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여전히 빛나며 우리 후배들을 지켜보시리라 믿는다”면서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하는 마음 담아 후배 가수들과 함께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겠다”고 말했다.

고 현미 빈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현미는 지난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고인은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 했다.

고인은 작곡가 고 이봉조와 사이에 영곤, 영준 두 아들을 뒀다. 미국에 거주하던 두 아들이 비보에 급거 귀국했다. 둘째 며느리는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알려진 가수 원준희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이 조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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