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올리는 K학원물, 거기 투영된 한국사회의 자화상
부쩍 늘어난 학원물, 학교 풍경에서 비치는 한국사회 모순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이어 웨이브 《약한 영웅》, 티빙에서 최근 공개된 《방과 후 전쟁활동》까지. 최근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가 부쩍 늘어났다. 이들 작품이 담은 학교의 풍경들에는 한국 사회의 어떤 면들이 투영돼 있는 걸까.
어느 날 갑자기 하늘 위를 가득 덮은 구체들. 하지만 건드리지 않는 한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아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쯤 구체 하나가 땅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괴생명체들에 의해 순식간에 사단 병력이 희생된다. 국가는 이를 비밀에 부친 채 비상을 선포하고 고3 학생들까지 병력으로 확보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시작한다. 때아닌 1980년대로 회귀한 듯, 고3 학생들은 학교에서 마치 교련 수업을 받듯(물론 그 강도는 총기가 지급될 정도로 세지지만) 군사훈련을 받는다. '수능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말에 학생들도 훈련 과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부모들도 학생들의 등을 떠민다. 하지만 그들이 싸워야 할 괴생명체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면서 학생들은 펜 대신 총을 들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 속으로 들어간다.
고3 학생들이 펜 대신 총을 든 이유
입시전쟁을 치르던 고3 학생들이 총을 들고 진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은 그 세계관 속에 풍자가 담겨 있다. 지긋지긋한 입시전쟁 속에 있는 고3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했을 '지구가 망해 버리면 시험은 안 보겠지'라는 그 생각을 실제 세계관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한국 사회가 가진, 성적으로 순위를 나누는 입시제도나 경쟁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괴생명체의 등장으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부닥치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생기부(생활기록부) 가산점'을 얻겠다는 몇몇 학생의 모습이 이를 상징한다. 그러면서 입시 앞에 모두가 경쟁자였던 학생들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 하나로 뭉치고, 때론 누군가를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며, 때론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경쟁사회가 지워버린 진정한 인간관계를 이 진짜 전쟁 상황 속에서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상명하복 계급 사회인 군대와 성적에 의해 나뉘는 학교는 모두 경쟁을 통한 서열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고 움직이는 윗선 혹은 어른들은 위기 상황에서도 제 살길만 찾는다. 결국 《방과 후 전쟁활동》이 이 가상의 세계관을 통해 저격하는 건, 이러한 시스템을 조장한 잘못된 어른들이다. 이 작품 속에서 아이들을 챙기는 유일한 어른으로 이춘호 중위(신현수)나 김원빈 병장(이순원)이 등장하지만, 다른 어른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고3 학생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 작품의 원작인 동명의 하일권 작가 웹툰이 젊은 세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건 이 세계가 주는 현실 공감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입시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는 그 안에서나 밖에서나 '전쟁활동'이 펼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는 영화에서 종종 공포의 공간으로 그려지곤 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여고괴담》이다. 이 작품이 지금도 명작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학교는 안전한 곳이 아닌 공포의 공간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는 학생들을 지켜주기보다는 경쟁과 일상적인 폭력으로 내모는 어른들에게 있다.
《여고괴담》 이후 그 시리즈가 2021년까지 무려 여섯 차례 탄생하기도 했지만, 학교와 청소년들을 다루는 콘텐츠들은 다소 보수적인 지점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지상파 시대의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학교와 청소년들의 문제를 미온적으로 다루곤 했다. KBS의 《학교》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21년까지 제작됐던 《학교》 시리즈는 입시 경쟁 속 아이들이 겪는 혼돈과 갈등을 다루긴 했지만, '꿈과 우정, 설렘의 성장기' 정도의 서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것이 OTT가 생겨나면서 달라졌다. 그간 청소년들이 마주한 진짜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루지 못했던 그 영역들이 OTT에는 하나의 블루오션이 됐기 때문이다. 청소년 성매매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을 시작으로, 마약 문제를 다룬 시즌 오리지널 《소년비행》이 등장했고, 학교폭력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 티빙 《돼지의 왕》, 웨이브 《약한 영웅》, 디즈니+ 《3인칭 복수》 등등에서 다뤄질 정도로 핫한 소재가 됐다.
OTT 플랫폼에서 과감해진 소재와 표현
그중에서도 판타지가 더해진 디스토피아를 학교를 배경으로 그리는 작품의 계보가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과 《지금 우리 학교는》을 거쳐 《방과 후 전쟁활동》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행복'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삶'을 강요하는 어른들에 의해 점점 커지고 많아져 가는 젤리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그건 자유와 비범함이 허락되지 않고 억압된 학생들의 현실을 판타지로 에둘러 비판한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른들에 의해 창궐한 좀비 떼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을 통해 몰개성을 강요하고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 서사들은 모두 '어른들에 의해 위기에 처한 학생들'이라는 세상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물론 입시 지옥을 소재로 하는 K콘텐츠 중에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을 가져와 극화한 작품도 적지 않다. 《SKY캐슬》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교육의 현실을 이 작품은 김주영(김서형)이라는 병적인 입시 코디네이터와 엇나간 학부모들의 욕망을 통해 파국적으로 그려냈다. 이미 2007년에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나올 정도로 입시 앞에 비정상적인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대한 소재는 뜨거웠다. 그만큼 우리네 교육 제도에서 아이들이 소외되고 나아가 부모들 또한 그 경쟁 시스템 속에 이성을 잃게 되는 일은 꽤 오래도록 지속돼 온 문제였던 것이다. 이 흐름은 작년에 방영된 《그린마더스클럽》 같은 작품과,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일타스캔들》로도 이어졌다.
최근 들어 소재와 표현에서 좀 더 과감해진 OTT 플랫폼을 통해 우리네 교육 현실을 파격적으로 그려낸 K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약한 영웅》 《방과 후 전쟁활동》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학교 서사들'이 모두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재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즈음에서 OTT를 통해 이를 접하는 해외 대중이 한국의 학교를 어떻게 생각할까가 궁금해진다. 물론 《방과 후 전쟁활동》 같은 판타지는 재미있는 상상으로 받아들일 테지만, 그 이면에 깔린 한국의 교육제도나 경쟁 시스템의 현실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또 《SKY캐슬》이나 《그린마더스클럽》 《일타스캔들》에 등장하는, 너무나 거짓말 같지만 우리 현실이기도 한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저들은 어쩌면 드라마 속 허구로 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허구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허구가 주는 씁쓸함이 이들 학교 서사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의 실체가 아닐까.
어쩌다 보니 학교를 소재로 학생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들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K콘텐츠가 되고 있다. 그런데 소재가 학교일 뿐, 이 학교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순위를 나누고 승자가 모든 걸 가져가는 그곳에서 학생들은 전쟁 중이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들이 학교를 나온 후에도 그들 앞에 펼쳐져 있다. 《방과 후 전쟁활동》에 등장하는 고3 학생들의 진짜 전쟁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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