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가장 낮은 자리서 슬픔과 절망을 거름삼아 싹 틔운다”[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3. 4. 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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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작가 김중미
이번엔 가상의 마을 대포읍 배경 삼아
다문화 아이들 성장기 그려
김중미 작가. 돌베개 제공

느티나무 수호대

김중미 지음 | 돌베개 | 268쪽 | 1만4000원

도훈이는 대포읍 청소년문화센터 동아리 선생님에게서 ‘온라인 국제 청소년 댄스 대회’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선생님은 “대회 주제가 ‘팬데믹’ ”이라며 말했다. “코로나로 인해 더 절실해진 공동체와 연대라는 메시지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더라고.”

도훈이는 ‘레인보우 크루’ 멤버다. 작년 말 청소년 온라인 댄스 대회 때 BTS의 ‘러브 마이셀프’를 주제로 만든 공연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촬영한 댄스 영상은 1만뷰가 넘었다.

“난 너희가 다시 뭉쳐서 도전하기만 해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 도훈이는 ‘너희’라는 말이 거슬렸다. ‘다문화 아이들’로 들렸다. 도훈이에게 ‘다문화’는 ‘다채로운 문화’가 아니라 ‘루저’를 뜻하는 말이었다. 도훈이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다른 멤버 니카의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에서 왔다. 또 다른 멤버 금란이는 어릴 때 중국에서 이주했다.

차별과 편견이 옳지 않다는 내용의 공연 영상에 달린 댓글도 떠올린다. “다문화 꺼져라. 다문화로 감성팔이 하냐.”

도훈이는 권유를 받은 뒤 느티 샘을 보러 간다. 느티 샘은 500년 된 높이 24m, 둘레 10m 느티나무의 정령이다. 이 정령은 일제강점기 헌병이 숲에 불을 질렀을 때 처음 사람 몸으로 나타났다. “불이야, 당산나무가 불에 타고 있어요!” 엄마 나무는 살아나지 못했다. 대포읍 사람들은 그 뒤로 느티 샘을 당산나무로 삼았다. 그 뒤로 “내 몸의 모든 세포를 열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닥치는 위험을 내 몸의 언어로 알리는” 일을 해왔다. 대포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도 일하며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에게도 당산나무였다. 하소연을 들어주고, 조언을 들려줬다.

나무 기둥 안에서 매일 아이들 아침밥도 차려줬다. 책도 함께 읽었다. 느티 샘은 늘 책 읽기를 강조했다. “내가 인간들 사이에 들어와 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책 덕분이야. 나는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기관을 잎, 줄기, 뿌리라고 부른다는 걸 책을 통해 배웠어.… 너희의 권리와 행복을 지키려면 알아야 할 게 많아. 그 앎이 너희의 힘이 되어 줄 거야. 그 힘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어.”

느티나무 안에서는 언어 장벽도 없다. 각자 자기 언어로 이야기해도 서로 말을 알아듣는다. 아이들은 느티 샘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다.

도훈이 엄마는 베트남 가족에게 매달 부쳐주던 30만원을 두고 할머니와 싸우곤 집을 떠났다. 도훈이는 엄마를 원망했다. 도훈이는 느티 샘에게서 엄마 처지를 듣곤 이해한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아프다. 엄마는 딸기 농장, 사과 농장을 거쳐 참외 농장으로 가 일한다. 엄마는 종종 도훈에게 카카오톡을 보낸다. “미안해. 많이 많이 사랑해.”

부모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아이들은 아픔과 슬픔을 지니고 산다. 수용, 수영 쌍둥이 형제는 배달 일을 하는 아빠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 예은이 아빠는 술에 취해 늘 폭언과 폭력을 휘둘렀다. 아빠가 집을 떠나자 그 폭언과 폭력을 엄마가 이어받았다. 예은이를 집에 가두기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식당 일자리를 잃은 엄마는 어느 날 6만원을 예은이 손에 쥐여주고 떠난다. 예은이는 혼자 버스를 타고 대포읍에서 분식집을 하는 할머니를 찾아가 지금은 함께 산다.

금란이는 코로나19 때 겪은 혐오와 차별의 기억 때문에 힘들다. 아이들이 채팅방에서 마라탕집을 하던 금란이 엄마, 아빠를 욕했다. “중국으로 꺼지라”고도 했다. 코로나19를 ‘우한 폐렴’으로 부르던 시기 마라탕집 손님도 끊겼다.

니카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도훈이보다 더 놀림을 받았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아프리카로 가라는 말을 듣곤 했다. 니카는 운동을 잘했다. 4학년 때 축구부에 뽑힌 뒤 자기 힘으로 학교 대표 선수가 됐다. 당당했다.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준비한 ‘러브 마이셀프 캠페인’ 첫 수업은 자기 뿌리를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니카는 이런 내용으로 발표했다. “우리 아빠는 나이지리아라는 나라에서 왔는데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해요. 나는 한국 사람인데도 아프리카라고 하고요. 몰라서 그런 줄은 알지만 그럴 때마다 속상해요. 친구들이 함부로 무시하고 차별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민용이는 엄마가 한국 남자와 재혼하면서 한국으로 왔다. 일곱 살 때였다. 걸핏하면 울었다. 아이들은 ‘동남아 울보’라고 놀렸다.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면 ‘베트남 울보’라고 다시 놀렸다.

느티나무에 모인 아이들은 서로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이들은 느티 샘 기억 속의 숲도 공유한다. 느티 동산에 해병대가 들어서고, 주변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전 숲 말이다. 느티나무 뒷문이 열리면 빽빽한 나무가 들어선 기억의 숲이 펼쳐진다. 찔레꽃 향기도 코를 찌른다. 느티 샘은 아이들에게 기억의 숲을 만나게 하는 순간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긴다. 이 기억의 숲을 미래의 숲으로 바꿔주길 바란다.

도훈이는 이 숲을 드나들면서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레인보우 크루’를 재결성하기로 마음먹은 건 재개발 때문이다. 느티 동산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오면 느티나무가 베어질 수도 있다. 댄스 대회에 나가 위기에 처한 느티나무 이야기를 알리려고 한다. 아이들은 댄스 대회를 준비하면서 느티나무를 지킬 방법을 고민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는 이 청소년 소설에서 차별과 혐오의 현실을 드러내면서 자연과 환경의 가치, 환대와 연대의 소중함을 풀어낸다.

새봄이 아빠와 친한 사람은 미얀마에서 온 뚜야 아저씨다. 그는 반정부 인사다. 한국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돕는다. 군부 쿠데타 때 새봄이 아빠는 그 누구보다 분노한다. 대포읍은 한때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했다. 지금은 여러 이주 배경을 가진 이들이 공존하는 덕에 되살아난 곳이다. “우리 식물도 그렇지만 인간들은 낯선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 대포읍 토박이들도 이주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대포읍은 김포의 통진과 양곡을 모델로 만든 공간이다. 작가 김중미는 남편과 함께 이곳 네팔이나 인도 식당에서 밥을 먹고, 베트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한다. 김중미는 작가의 말에서 “한국어 간판과 외국어 간판이 공존하는 통진과 양곡은 쇠락한 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소설 속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는 ‘에마뉘엘 선생님’ 모델은 부르키나파소 출신 안무가 에마뉘엘 사누다. 그는 이주민과 이주 아동의 인권, 평화를 위해 공연한다. 김중미는 사누의 여러 인터뷰와 책 <춤과 땡땡>(보코 지음, 쿠나디아)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사누의 부인 손소영이 기획해 펴낸 책이다.

‘느티 샘’은 김중미 같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에서 ‘기차길옆공부방’을 열며 지역운동을 시작했다. 2001년 강화 양도면으로 터전을 옮겨 지금은 ‘기차길옆작은학교’ 큰이모로 산다. 35년간 늘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해온 김중미의 삶과 경험이 대사 하나하나에 녹은 듯하다. 소설은 학교 아이들과 함께 진행한 워크숍에서도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3부로 구성한 소설 각 부 맨 앞에 쓴 느티 샘의 독백에선 김중미의 생태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여러 센터를 짓느라 대포읍 북쪽 어귀에 있던 400년 된 은행나무와 그 곁의 후계목이 한꺼번에 베어졌을 때를 묘사한 대목이 있다. “은행나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따라 울었다. 그 은행나무에 깃들어 살던 많은 생명들도 함께 울었다.” 느티 샘은 농장에서 자라 척박한 길가로 나온, 간판을 가린다고 가지치기당하는 어린 은행나무들의 아픔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대목도 “희망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슬픔과 절망을 거름 삼아 싹을 틔운다”는 작가의 말과 이어지는 듯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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