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슬램덩크'가 불 지핀 농놀 인기…韓vs美vs日, 농구 영화 대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비수기 극장가에 농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영화들이 동시기 극장에서 상영되며 박스오피스 1위를 향한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이 중 두 편의 영화는 실화 기반의 이야기이며, 한 편은 유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객의 구미를 댕긴다. 세 편의 공통점은 모두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경기 결과에 집중하는 서사가 아닌 과정의 치열함을 통한 인물의 성장담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 '리바운드', 언더독의 반란 그린 거짓말 같은 실화
'리바운드'(감독 장항준)가 주는 감동의 8할은 실화에서 나온다.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 고교농구대회에서 단 6명의 엔트리로 출전해 준우승 신화를 이뤄낸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실제 과정을 시나리오 서사에 그대로 녹여냈다. 또한 실제 인물과 외모 싱크로율을 높이는 캐스팅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소환한 정공법에 가까운 연출을 구사한 작품이다. 여기에 안재홍이 이끄는 따뜻한 유머와 6명의 신인 배우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재현해 낸 경기 장면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영화적인 각색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이야기가 너무도 영화적이라 조미료가 필요 없다. 영화 후반 몰아치는 경기 장면에 집중하고, 승부의 순간에 열광하다 보면 엔딩에 이르러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중앙고 농구부와 영화도 일견 닮은 구석이 있다. 멤버가 화려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았듯, 기대하지 않았지만 충만한 만족감을 얻어갈 수 있는 한국 영화의 복병이다.
배우들이 연기한 캐릭터와 실제 인물들의 당시 사진이 디졸브(dissolve: 한 장면이 다른 장면과 교차되며 서서히 바뀌는 장면 전환 방식) 될 때 영화의 감동이 극대화된다. 후반부에 펀(FUN.)의 노래 '위 아 영'(We Are Young)을 배치한 건 신의 한 수다. 영화가 끝나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포털 사이트에 당시 뉴스를 검색해 보게 될 것이다.
◆ '에어', 조던이 안 나와?…응. 운동화가 주인공이야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황제'라 불렸다. 농구로 한 시대를 평정하고 코트를 떠났으나 다시 돌아와 또 한 번 우승을 일군, 그리하여 농구계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의 줄임말로 '가장 위대한 선수'를 의미)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영화 '에어'(감독 벤 애플렉)는 마이클 조던의 너무나 유명한 신화를 스크린에 옮기는데 큰 관심이 없다. 그의 이름을 딴 운동화 '에어 조던' 탄생기를 그린다. 더 정확히는 오늘날의 에어 조던 신화를 만든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스포츠 영화에서 중요한 건 포커싱이다. 포커스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시작과 끝, 영화의 톤 앤 매너가 결정된다. 마이클 조던이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면 '에어 조던'은 스포츠 브랜드의 지형을 일순간에 바꿨으며 운동선수와 브랜드의 협업 방식에 대한 새로운 룰을 제시했다. 그 과정에는 나이키의 일꾼들과 조던의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는 조던의 어머니 돌로레스 조던의 뚝심과 승부사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이 계약이 현재 스포츠 선수와 스포츠 브랜드의 협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한다. 다만 이 파격적인 계약이 이뤄진 과정 자체는 흥미롭지만 의미 부여 측면에서 얼마나 와닿을지는 미지수다.
에어 조던에 관한 이야기지만, 마이클 조던의 얼굴이 정면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그의 영향력은 공기처럼 영화 내내 떠돌 뿐이다. 닮은꼴 배우를 내세워 어설프게 상황을 재연하는 실수를 하지 않은 건 최고의 판단이었다. 조던의 신화와 내밀한 이야기는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라는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통해 즐기면 된다.
'에어'는 영화 '아르고'(2012)를 통해 아카데미를 석권한 바 있는 벤 애플렉의 11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다. 배우로서도 큰 인기를 누렸지만 그의 진가는 감독일 때 더욱 빛난다. 특히 실화를 다루고, 인물을 조명하는 그의 연출력은 한층 더 노련해졌다.
◆ '농놀 신드롬'의 원조 '슬램덩크', 좋은 건 크게 보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2023년 상반기 국내 극장가를 강타한 '농놀 신드롬'의 원조다.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열기는 영화 한 편의 흥행에 그치지 않았다. 3040의 향수를 자극했으며, 1990년대의 추억을 소환해 냈다. 특정세대가 주도한 신드롬은 10~20대, 40~50대로 확산돼 대형 흥행의 발판이 됐다. 지난 1월 4일 개봉한 영화는 석 달째 장기 상영을 이어가며 누적 관객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개봉 초기부터 아이맥스와 돌비 버전을 함께 상영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지난 5일부터 아이맥스(IMAX) 상영을 시작했다. 다만 아이맥스 규격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고 컨버팅한 결과물이기에 특수관의 포맷이 영화의 본연의 특성과 100% 어우러졌다고 볼 수는 없다.
체험의 재미를 극대화한 업그레이드에 중점을 둔다면 만족감을 얻어갈 수 있다. 큰 화면, 양질의 사운드로 좋아하는 영화를 한 번 더 본다는 것만으로도 마니아들에겐 의미가 있다. 압도적인 크기의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북산과 산왕의 경기는 실제 농구장에 와있는 듯한 박진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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