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구에 문동주 교체…수베로가 옳았다
[OSEN=백종인 객원기자] 6회 초. 원정 팀이 3자 범퇴로 끝냈다. 곧이은 6회 말이다. 앞선 팀의 투수가 바뀐다. 선발이 내려가고 이태양이 올라온다. 관중석이 잠시 술렁인다. 벌써? 너무 이른 것 아냐? 1이닝만 더 놔두지? 조금 불안한데? 괜찮을까? 수많은 물음표가 이글스 팬들의 머리 위로 떠오른다.
왜 아니겠나. 개막 후 아직 1승도 없다. 쓸쓸하게 3연패 중이다. 모두 1점차 패배였다. 우세한 순간도 있었지만, 늘 막판에 삐끗했다. 그래서 더 마음을 졸이게 된다.
석연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면 이해가 간다. 간신히, 또는 그럭저럭 넘어갔다면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너무나 완벽했다. 선발 투수 말이다.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 이런 압도적인 느낌은 오랜만이다. 1회부터 5회까지, 이렇다할 위기도 없었다. 강력함과 편안함을 모두 갖췄다.
라이온즈 라인업의 핵심 구자욱을 두 번이나 KO시켰다. 덕아웃 들어가는 길에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재일, 김태훈도 삼진의 희생양이다. 최고 159㎞의 숨막히는 스피드다. 커브와 슬라이더도 수준급이다. 흠잡을 데 없는 로케이션이다. 항상 유리한 카운트로 볼넷(0개)을 차단했다.
물론 승리도 급하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런 게임이 얼마 만인가. 조금 더 눈호강을 누리고 싶다. 보살 팬들의 아쉬움이다.
투구수 겨우 70개였다. 5이닝이면 퀄리티 스타트에도 못 들어간다. 그럼에도 교체는 단행됐다. 이글스와 20세 루키 투수의 첫 승은 그렇게 이뤄졌다(문동주는 지난해 28⅔이닝을 던졌다. 신인상 수상 요건 30이닝을 넘기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을 깜짝 놀라게 한 투수가 있다. 20세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다. 시즌 세번째 등판인 4월 10일 오릭스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NPB리그 28년 만의 개가였다. 사상 최연소 기록임은 물론이다. 27개의 아웃 가운데 19개가 삼진이었다. 13타자 연속 K의 기염을 토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경기에서 일어났다. 대기록 일주일 뒤인 니혼햄전이다. 경이로운 투구는 멈추지 않았다. 8회까지 완벽함은 이어졌다. 1이닝만 더 던지면 세계 야구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9회가 시작되며 자취를 감췄다. 다른 투수가 대신 마운드에 올랐다. 2경기 연속 9이닝 퍼펙트의 대기록도 물거품이 됐다. 이구치 다다히토 감독의 교체 지시 탓이다. 이미 102개를 던졌다. 장래를 위해 더 이상은 안된다는 결단이었다(팀은 연장 10회 끝에 패배).
이미 고교 때부터 전국구 스타였던 그는 철저한 육성의 산물이다. 프로 첫 해(2020년)는 실전 등판이 제로였다. 그렇다고 2군에 보낸 것도 아니다. 1군과 동행하며 특별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하드웨어적으로는 달리기, 근력 강화, 불펜 투구에 집중했다. 한편으로는 프로 선수로 갖춰야 할 멘탈 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2년차에 비로소 타자를 만난다. 역시 이닝수 관리는 기본이다. 당초 지침은 50이닝, 그런데 이보다 조금 넘겨 63이닝을 소화했다. 그리고 3년차였던 지난 시즌에야 풀타임을 소화했다. 물론 무리는 없었다. 20차례 선발 등판, 129⅓이닝에 그쳤다(9승 4패, ERA 2.02).
팬들은 기회를 더 줘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구단도 비슷한 스탠스였다. 하지만 이구치 감독은 완강했다. “아직은 미숙하다. 육체적으로 더 성장해야 할 시기다. 보호가 더 필요하다.” 세계적인 대기록도 멈추게 할 정도의 소신이었다.
WBC를 통해 국내 프로야구계에 자성의 소리가 커졌다. 가장 많은 지적은 투수력이었다. 일본처럼 젊은 투수를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이 문동주다. 대회를 전후로 그의 이름을 놓고 시끄러운 일이 많았다.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방증이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6일 밤. 공교롭게도 21세 영건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베어스 김동주가 6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따냈다. 트윈스 강효종도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시즌 첫 승, 개인 2승째다. 상대한 히어로즈의 장재영도 4이닝 3실점으로 나쁘지 않았다. 트리오의 투구수는 각각 92개, 87개, 82개였다.
물론 이들 세 명의 경우도 무리는 아니다. 충분히 견딜 만한 숫자들이다. 다만 이글스의 경우가 유독 특별하다. 20세 문동주에게 맡긴 5이닝, 70개 말이다. ‘지나친 관리 아니냐.’ ‘1이닝 정도는 더 괜찮지 않겠냐.’ 그런 반론과 의문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멈추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결정이다. 장래를 위해서는 당장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우리는 이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길고, 안타깝던 과정을 되새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마음을 가질 것이다.
‘카를로스 수베로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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