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의 시론]통합 위해 國歌까지 바꾼 호주의 교훈
‘우리는 젊다’→‘우리는 하나’
國歌 바꾸며 통합 강조한 호주
한국은 통합커녕 분열 가속화
포퓰리즘에 정치권 害國 행위
세계질서 격변 속 대내적 혼란
국익 위한 통합 가치 되새겨야
국가(國歌)는 한 나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있다. 애국가에 백두산과 남산이 등장하고, 국화(國花)인 무궁화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영국이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한 뒤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에서 여왕을 왕(King)으로 바꾸긴 했지만, 대체로 국가를 바꾸는 사례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호주는 2021년 1월 1일 전격적으로 국가의 가사를 바꿨다. 둘째 줄에 나오는 ‘우리는 젊고 자유롭다(For we are young and free)’를 ‘우리는 하나이며 자유롭다(For we are one and free)’로 교체했다. 18세기 말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이주민들이 호주에 정착하면서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에 대한 박해와 탄압의 역사를 반성하는 차원이었다.
특이한 것은 호주 내에서 논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보수당의 스콧 모리슨 당시 총리가 새해 첫날을 하루 앞두고 ‘깜짝’ 발표했지만, 당시 야당 대표였던 앤서니 앨버니지 현 총리도 “우리가 원주민들이 이곳에서 이룩한 문명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이후 정부 슬로건도 이주민으로 구성된 ‘젊은 국가’라는 의미의 ‘We are young’에서 ‘We are one’으로 바뀌었다.
호주 정부가 국가 가사까지 교체한 것은 전체 인구 2646만 명(2023년 추정치)의 30%가 해외 출신인 상황에서 통합이 국가 정체성과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부모 중 한 명이 해외에서 태어난 비율도 절반에 가까운 45%에 달한다. 지난 3월 초 호주 현지에서 이뤄진 한국여성기자협회 주관 인도·태평양 안보협력 현장 취재에서 만난 팀 와츠 외교부 부장관도 “호주는 다양성을 가진 다민족 사회로, 제 가족도 다문화 가정”이라면서 “호주에는 300여 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인들도 현대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연방 결성 때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악명 높은’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 전통은 이제 역사의 유물이 됐다.
우리나라도 이젠 ‘단일민족’ 국가로 부르기 어렵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은 2015년 29만9241가구에서 2021년 38만5219가구로 해마다 증가세이며, 2019년 기준 다문화 결혼 비중도 10.3%에 달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도 2022년 말 기준 224만5912명으로 전년 대비 14.8% 늘었다. 이미 다민족 사회로 이행하는 전환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한민족’이라는 정체성만으로는 국가 통합·단합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사회적 분열은 극심하다. 전 세계적 포퓰리즘 현상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내년 4월 총선까지 다가오면서 ‘팬덤 정치’도 극에 달하고 있다. 주말마다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는 친(親)이재명과 친윤석열 시위대의 구호가 울려 퍼진다. 국회는 연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부터 양곡관리법까지 이어지는 논란 속에서 정쟁으로 얼룩져 있다. 국내가 혼란하니, 외교도 탄탄할 리 없다.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의 낙마 과정도 심상치 않은데, 윤석열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 해법을 반일 정서를 자극하는 정치 동력으로 삼으려는 민주당 의원 대표단은 6일 일본을 방문하면서 사실상 ‘해국(害國)’ 행위를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가속화한 ‘자국 우선주의’ 파도를 넘기 위해 국내적으로 꼭 필요한 ‘통합’이라는 단어도 아예 들리지 않는다. 북한 핵 위협과 중국·러시아의 강압 외교에 일사불란하게 단합해 대응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내 정치적 이득을 위한 소재가 되고 있다. 반면, 호주는 지난 3년간 중국의 호주산 석탄·와인 등 대규모 수입규제 조치에도 굴하지 않았다. 지난해 8년 만에 정권을 잡은 노동당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만, 기존 보수당 정부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정책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라는 신념을 공유하는 초당적 지지 하에서 세계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 역시 ‘우리는 하나’라는 단순하지만 숭고한 문구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핑클’ 성유리 남편 프로골퍼 안성현 구속영장 청구
- 여중생 제자와 수차례 성관계한 전직 기간제 교사…징역 1년 6개월
- “푸틴, 병적으로 암살 겁내 벙커서만 생활” 보안요원 폭로
- 정유라, 조민 입학취소 판결에 “오래도 가네, 난 100일이 채 안걸렸는데”
- 이재명 부모 묘소 훼손 사건 ‘대반전’…“문중서 이 대표 ‘기’ 보충해주려”
- 이승기·이다인, 오늘 결혼합니다… 2년 열애 결실
- “아기 아빠는 죽은 내 아들”…유명 배우 ‘대리모 논란’ 대반전
- 음주단속 땐 주변건물로 피신?…남의 건물서 허락없는 음주측정 “거부 가능”
- [단독] 정진상, 담당 부서 아닌 직원 통해 집무실 CCTV 설치…다른 CCTV와 달리 별도 관리
- 횡령 혐의 박수홍 친형, 구속기한 만료로 출소…불구속 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