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전기료 인상 골든타임의 끝

박수진 기자 2023. 4. 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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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화제가 됐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는 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해가 지면 독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두컴컴해지는 도시의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등장한다.

전 세계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이처럼 안정적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1년 365일 단전(斷電) 공포 없이 마치 햇볕 쬐듯 전력 사용을 당연시하는 우리로서는 어쩌면 공감이 되지 않는 상황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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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경제부 차장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에는 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해가 지면 독서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두컴컴해지는 도시의 모습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는 대목이 등장한다. 전 세계 인구 중 10억 명 이상이 이처럼 안정적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1년 365일 단전(斷電) 공포 없이 마치 햇볕 쬐듯 전력 사용을 당연시하는 우리로서는 어쩌면 공감이 되지 않는 상황일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과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꽤 저렴하게 책정된 가격이 자리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가별 주택용 전기요금은 한국이 ㎿h당 103.95달러다. 미국(131.96달러)이나 독일(344.66달러) 등과 비교해 보면 훨씬 싸다. 산업용도 비슷하다. 필수재이다 보니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 올리지 못하게 가격을 통제한다.

문제는 전기가 결코 값싼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원빈국(貧國)이다. 전기는 석유·가스·석탄 등을 원료로 만들어지는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해외에서 사들이는 원재료 값은 치솟는데도 가공해 만든 제품 가격을 올릴 수 없으니 판매자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32조 원의 사상 전례 없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이유다. 전기요금을 통한 한전의 원가 회수율은 약 70%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 경제가 어려운데 에너지 공기업이 손실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가격 급등 시기에도 전기요금 인상을 인위적으로 억눌렀던 것도 이 같은 주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건 시장경제 불문율이다. 한전은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국내 유일 전력 판매 공기업인 한전의 재무 상황 악화가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력은 너무 크다. 연관성이 떨어져 보이는 금융시장이 이미 지난해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돈줄이 마른 한전이 회사채를 마구 찍어내면서 채권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고 한계·중소·중견기업이 자금난으로 위기에 처했다. 요금이 싸니 가격 신호가 왜곡되고 사용량은 줄지 않는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 전력 소비량은 4위다. 1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무역적자도 에너지 수입액 증가에 기인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의 감산 소식에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력산업 투자 감소는 전력 생태계뿐 아니라 국가 산업 전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한전이 물고 있는 하루 이자는 38억 원이다. 이미 국민 한 명당 매달 2200원을 더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한전 경영난이 심화할 경우, 결국 국민 세금인 공적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고 미래 세대가 짊어져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지난 3월 31일 보류한 2분기 전기요금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 시간 끈다고 인상 요인이 사라지거나 해결되지 않는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올 3·4분기를 맞으면 내년 4월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정치권 입김이 더 거세지고 원가를 반영한 요금 책정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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