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은 드라마 속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가?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2023. 4. 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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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모범택시2', 사진제공=SBS

최근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포착됐다. MBC 금토극 '조선변호사' 측이 소개한 포스터에 "택시 타고 불법으로 복수대행? 우린 합법으로 복수해드림"이라는 문구가 삽입됐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동시간대 방송되는 경쟁작인 SBS 금토극 '모범택시2'를 겨냥한 도발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모범택시'의 주된 소재인 '사적 복수'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대해 지난달 31일 열린 '조선변호사'의 제작발표회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우도환은 "자고 일어났는데 그게 보여서 '팬이 만든 거 아닌가' 싶었다. 'MBC가 사활을 걸고 정면 승부를 걸었구나, 열심히 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맞서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나도 사활을 걸어야겠다 싶었다"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래서 합법 복수와 사적 복수의 대결 결과는 어땠을까? '조선 변호사'는 2.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출발선을 끊은 반면 '모범택시2'는 18.3%로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사적 복수의 판정승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왜 대중은 사적 복수에 열광할까?

'모범택시2'의 소재는 어딘지 익숙하다. 여러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사이비 종교 단체 교주를 비롯해 시골 마을을 돌며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등쳐먹는 일당, 취업에 목마른 준비생들을 해외로 꼬드겨 불법 행위에 가담케 하는 이들 등, 연예면이 아니라 사회면에서 자주 보던 사건들이다. 최근 다룬 '블랙썬 게이트' 에피소드는 당연히 몇 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버닝썬 게이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기서 대중은 묻는다. 그 사건의 가해자들은 제대로 처벌 받았나요? 

하지만 대중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간다. 어렵게 잡아넣어도 법기술을 활용하는 유명 로펌 뒤에 숨은 그들은 쉽게 빠져나온다. 초범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실형은 피한 채 벌금형에 그치곤 한다. 도무지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결과다. 이에 분노하는 이들이 바로 '모범택시2'의 잠재적 시청자들이다. 이 드라마는 분리수거조차 불가능한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한다. 첫번째 시리즈에서는 아예 사적 감옥을 확보하고 실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이들을 단죄했다. 이 과정에 폭력, 불법 감금 등이 난무한다. 모범택시를 몰려 사적복수를 가하는 이들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시청자들은 없다. 어디까지나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은 이를 통해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더 글로리', 사진제공=넷플릭스

최근 글로벌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도 같은 맥락이다. 학교폭력(학폭)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가해자들을 향한 피해자의 사적 복수가 주된 줄거리다. 그 행간에 숨은 질문은 '왜 피해자는 사적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이다. 

피해자 문동은이 처음부터 사적 복수를 꿈꾼 것은 아니다. 그는 엄마, 교사, 경찰에서 피해를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비리 경찰과 교사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섰다. 자기 편일 줄 알았던 엄마는 돈 몇 푼에 딸의 자퇴서를 수정한다. 그렇게 피해 사실은 사라졌다. 이처럼 모든 공권력이 증발하고 사회적 시스템이 마비된 상황 속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서 일반적인 대중은 고민한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탓이다. 개인이 쉽사리 사적 복수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그 과정은 지난하고, 오히려 법에 저촉되는 행동으로 된서리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적잖은 가해자들이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잘못을 무마한다. 그렇게 법기술자 뒤에 숨은 이들에게 사적 복수를 가하려다가 오히려 전과자되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더 글로리'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가 "저한테는 가해자들을 지옥 끝까지 끌고 갈 돈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맞고 왔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면서도 "'더 글로리'의 동은(송혜교)은 그렇지 못하지 않냐. 이 세상의 동은이들은 거의 그렇지 못하다. 저처럼 돈 있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 거고 그런 가정환경이 없을 거다. 그런 분들을 응원해 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힌 이유다.

2021년 나란히 방송된 드라마 '빈센조'와 '마우스' 역시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들이다. '빈센조'의 주인공은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변호사다. 그 역시 폭력과 방화 등 범죄를 일삼는다. 하지만 한국으로 온 그는 부적절한 권력에 맞서는 서민의 편에 서게 된다.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위는 지지받는다. 빈센조는 결국 잔인한 방법으로 사회악을 행한 재벌을 벌한다. '마우스'는 사이코패스 유전자 검사를 갖고 태어난 순경 정바름(이승기)은 거듭되는 살인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살인자 등 사회악을 없애는 것으로 그 충동을 풀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대중은 통쾌함을 느꼈다.  

여기서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악을 행한 자라면 폭력으로 다스려도 될까? '모범택시'의 주역인 무지개운수의 사훈은 로마서 12장 21절에서 따온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다'다. 선으로 악을 넘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도 불법적 행위로 단죄한다면 그들 역시 결국 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범택시'나 '더 글로리', '빈센조'의 이야기는 판타지다. 허구라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상황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다.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마저 '사적 복수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제로 방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사회를 뒤흔드는 온갖 범죄 소식을 접하는 대중, 그 가해자들이 적절한 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는 뉴스를 보는 시민, 과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적 복수를 그린 콘텐츠를 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에 연고를 바라는 것이 전부 아닐까? 

'더 글로리'가 글로벌 흥행 1위에 오른 직후인 3월15일, 미국 유력 경제지 포브스는 "만약 '더 글로리'를 본 후 복수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다면, 이 K-드라마들을 챙겨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모범택시'와 '빈센조', '재벌집 막내아들' 등을 추천했다. 사적 복수를 담은 콘텐츠를 통한 한풀이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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