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이름 없는 길[김창길의 사진공책]

김창길 기자 2023. 4. 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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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가나안. 누군가에게만 ‘약속의 땅’이라 불리는 곳. 신은 그곳이 “아름답고 광대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금의 가나안은 ‘중동의 화약고’, 분쟁의 땅이다. 지도에 표기된 이름은 세 가지다. 이스라엘,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가자지구를 제외한 가나안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받은 이방의 사진작가들은 그곳을 ‘이곳(This Place)’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사진 공동 프로젝트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작가는 12명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비롯한 12명의 족장이 다스리던 곳,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육신으로 인간의 땅을 밟았던 예수님의 제자도 12명이었던 이곳에 12명의 사진가들이 모인 것이다. 사진에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한 캐나다의 ‘제프 월’,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의 살아있는 전설 ‘요세프 쿠델카’(체코), 컬러 스냅 사진의 거장 ‘스테판 쇼어’(미국), 독일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토마스 스트루스’…. 국적과 스타일이 다른 세계적 사진작가들이 참여한 프로젝트에 한국인의 이름도 섞여 있었다. 미국의 황량한 사막을 한지에 인화해 해외에서 주목받았던 작가 ‘이정진’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 많은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프로젝트 ‘이곳’의 자문을 맡게 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사진 디렉터 ‘제프 로젠하임’이 이정진 작가를 끌어들였다.

가나안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는 유대계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브레너’다. 25년 동안 40여개 나라에서 디아스포라(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를 기록했던 사진작가다. 브레너는 가나안에서 “이 땅에 부여된 약속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기획자의 혈통 때문이었을까? 그의 의도와 달리 프로젝트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쿠델카의 지인은 경고했다. 결국은 이스라엘의 선전물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12명이 기록한 500여장의 사진들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주류의 시선은 사나웠다. 프로젝트 타이틀에 적었던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이곳’으로 대체된 사연이다.

보도사진과는 다른 이스라엘과 서안지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는 것이 ‘이곳’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참여 작가 토마스 스트루스는 “고독한 인물로서의 예술가에 대한 고전적인 생각은 구식”이라며 프로젝트 취지를 옹호했다. 사진의 역사에서 사진 공동 프로젝트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남겨놓았다. 사진술의 발명가 중 한 명인 ‘이폴리트 바야르’가 참여했던 1851년의 ‘미션 헬리오그래프’는 프랑스의 역사적 기념물들을 기록했던 프로젝트였다. 대공황 시절 미국 농업안전국(FSA)은 피폐한 농촌의 실상을 사진으로 조사했다. FSA의 경제학자 ‘로이 스트라이커’는 ‘워커 에번스’와 ‘도로시아 랭’을 비롯한 다수의 사진가를 고용했다. 1936년 도로시아 랭이 찍은 ‘이민자의 어머니’는 FSA 프로젝트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워커 에번스도 같은 해에 앨라배마에서 ‘소작농의 아내’를 사진에 담는다. 비슷한 형편, 그리고 같은 세대로 보이는 여성을 찍었으나, 에번스와 랭의 사진 스타일은 달랐다. 랭은 가난과 궁핍의 이미지와 어울릴 만한 인물을 발견해 사진을 찍었다. 에번스는 사진 찍히는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2010년을 전후로 작업했던 프로젝트 ‘이곳’의 결과물 500여장의 사진에는 종종 비슷한 소재와 장소가 발견된다. 요세프 쿠델카의 허물어진 담벼락과 철조망은 이정진의 사진에서도 등장한다. FSA의 에번스와 랭처럼 쿠델카와 이정진의 사진도 스타일이 다르다. “하나의 장벽, 두 개의 감옥”이라고 쓰여 있는 장벽의 낙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요세프 쿠델카가 찍은 철조망은 그래서 분단의 은유로 해석된다. 가자지구에 몰래 잠입해 찍은 이정진 작가의 철조망은 은유나 상징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정진의 철조망은 본래의 쓰임새를 넘어서 사물 그 자체의 감각을 환기시키고 있다. 대지를 짓누르고 있는 정체 모를 광물질의 육중한 무게감이라고 할까. 가나안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철조망 덩어리는 불모지 호렙산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집트 노예였던 유대인들을 탈출시킨 선지자 ‘모세’는 광야에서 목이 말라 지친 백성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이정진 작가는 2010년부터 이듬해까지 5차례 가나안 땅을 밟았다. 분쟁 지역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여정은 낯선 도전이었다. 안내자였던 이스라엘 교수는 분리의 장벽을 넘어서자마자 밀어닥친 공포감을 체감한 뒤 그의 곁을 떠났다. 현지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한국인 학생이 도망간 교수의 역할을 대신했다. 검문 검색을 마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은 먹통이 됐다. 화면에서 지도가 사라지고 알파벳 문자가 표시됐다. ‘Unnamed Road(이름 없는 길).’ 이정진은 생각했다. ‘모든 예술가는 이름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 아닐까?’ 작가는 그의 사진 연작에 ‘이름 없는 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름 없는 길에서 마주한 것들. 통곡의 벽, 사격장, 정육면체의 건물들, 돌담 위를 걷는 남성, 계단에서 멈춰선 여인, 벌판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 파괴된 도로, 허물어진 담벼락, 폐허가 된 공동묘지, 총탄 자국, 자갈밭에 놓인 바위, 길을 가로막는 바위, 선인장과 텅 빈 하늘, 검은 장막, 철조망 뭉치, 펼쳐진 철조망, 철조망 너머의 능선, 전선 위의 새들, 그리고 올리브 나무.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올리브 나무는 1000년을 산다고 했다. 언제나 묵묵히 서 있는 올리브는 그 땅에서 벌어진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까? 블레셋(팔레스타인)의 골리앗 장군을 돌팔매로 쓰러뜨린 유대인 목동 ‘다윗’이 왕국을 세웠던 땅에서 정반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변변한 무기가 없는 팔레스타인 소년병들이 철갑을 두른 이스라엘 전차를 향해 돌팔매질하고 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가르침을 따르려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과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나 서로의 공존을 약속했다. 그러나 2년 후, 이스라엘의 한 극우파 청년은 라빈 총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땅에 붉은 피가 스민다. 장벽이 펼쳐진다. 철조망이 에워싼다.

공포, 적개심, 슬픔, 그리고 신에 대한 기도…. 이정진 작가의 시야는 혼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걷고 있는 길의 끝은 어디일까? 스승이었던 ‘로버트 프랭크’는 한없이 곧게 뻗어나가는 미국의 285번 국도를 사진에 담았지만, 그가 바라본 이름 없는 길은 불모의 산맥을 향해 고불거릴 뿐이다. 프랭크는 질주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진은 가로막힌다. 바위가, 엉겨 붙은 나뭇가지들과 검은 장막이 그의 발걸음을 막는다. 이정진은 머뭇거릴 수밖에. 사막에서 늘 그랬듯이 그는 숨을 가다듬고 명상에 빠져든다. 사물의 온전한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느낌을 알아차리기 위해

감정이 고요해지도록 기다린다

마음은 그 자체의 신기루

사막은 거울과도 같다”

여정이 끝나갈 무렵, 이정진은 깨달았다. ‘이곳’에서 느꼈던 불편했던 마음이 사진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그의 카메라는 사물을 보여주는 창문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광학 장치다. 미국의 사막을 찍은 이정진의 사진을 본 프랭크는 “인간이라는 야수가 배제된 풍경”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정진은 자기 사진에 야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리의 야수가 가나안의 네게브 사막을 어슬렁거린다. 피와 살을 찾아 헤매는 포악한 생명체. 이정진은 이곳에서 혈혈단신으로 야수와 맞선다. 그는 대평원의 순리를 체화한 남아메리카의 목동 ‘가우초’처럼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다. 꼭 찔러야 하는 순간에 급소를 겨냥해야만 하는 법. 가우초는 가슴속에 숨긴 단도(短刀)를 꺼내는 순간 싸움의 승패를 알아차린다. 이정진도 마찬가지. 사막 언덕에 웅크리고 숨어 있던 야수가 포효하며 달려들 때, 그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낸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정진은 셔터를 누른다.

싸움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다. 이정진은 야수에게 경외감을 바치고 싶다. 섣불리 난도질하지 않고 자기 거처에서 노획물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그는 야수의 본성을 되살리려 한다. 광활한 사막의 하늘을 갈라놓으며 포효하는 야수의 기운을. 이정진의 인화법은 거친 사막의 입자와 잘 어울린다. 그는 양피지처럼 까끌까끌한 한지의 표면에 야수의 본성을 인화한다. 그리고 시대 흐름에 맞추어 디지털로 다시 프린트한다.

이름 없는 길(Unnamed Road) ⓒ이정진,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수묵화나 탁본에서 느껴지는 이정진 특유의 사진 질감은 여전했다. 사격장을 찍은 그의 사진을 본 한 관객이 작가에게 말했다. “혹시 총탄 자국인가요? 가까이서 봤을 때, 꽃이나 눈송이라고 느꼈어요.” 이정진은 흥미롭다. 관객들은 자기 사진에서 그들의 내면을 보고 있었던 것. 한 마리의 야수가 찍힌 사진에서 어떤 이는 꽃을 본다. 그이는 아마도 분쟁의 땅에서 희망을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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