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현미 빈소 조문 시작…대한가수협회장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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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의 장례식 빈소가 마련, 조문이 시작됐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현미 선생님께서는 가요계의 큰 별이다. 별이 진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여전히 빛나며 우리 후배들을 지켜보시리라 믿는다"면서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하는 마음 담아 후배 가수들과 함께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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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중앙대학교 장례식장 특실 1호에서 현미의 빈소 조문이 시작됐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엄수되며, 발인은 11일 오전 10시다. 장례위원장은 대한가수협회 감사 서수남이며, 장례위원은 협회 임원 이사진이 맡는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현미 선생님께서는 가요계의 큰 별이다. 별이 진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여전히 빛나며 우리 후배들을 지켜보시리라 믿는다”면서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하는 마음 담아 후배 가수들과 함께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겠다”고 말했다.
현미는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 김 모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향년 85세.
현미는 지난 1938년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평양에서 보냈다. 이후 6.25 전쟁 당시 1.4 후퇴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고인은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매하며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재즈 창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5년에는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 했다.
작곡가 고 이봉조와 사이에 영곤, 영준 두 아들을 뒀다. 장남 이영곤은 고니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둘째 며느리는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알려진 가수 원준희다. 가수 노사연과 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신영은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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