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사 '우주 러시' 이유 있다...우주의학 연구 '봇물'
지난해 11월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은 단백질 ‘TMBIM’을 겨냥한 난소암과 유방암 치료 신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퀸은 후보 약물을 암 세포에 적용해 96시간만에 암세포 100% 사멸을 유도한 결과를 얻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도 종양 부피가 4일만에 91% 감소했다.
마이크로퀸의 연구는 세포 내부 환경 조절 단백질 TMBIM을 암 세포 사멸을 유도하는 '스위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특히 연구 성과를 우주 공간에서 얻어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우주가 의학은 물론 인류의 미래를 바꿀 획기적 발견을 연구하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 우주공간 미세중력 환경, 의학 연구에 용이
마이크로퀸의 실험은 지구 상공 약 350km의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이뤄졌다. 지구에서 실험하는 것과 비교해 결과물 도출에 시간을 약 8년 앞당겼다는 게 마이크로퀸의 분석이다.
TMBIM는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던 단백질이다. 그동안 관련 연구들이 이어졌지만 신규 파이프라인 발굴 같은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결정화’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결정화는 단백질 분자구조를 구조화하고 정렬된 격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단백질의 3차원(3D)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신약 개발에 필수 과정이다.
지구에서는 중력에 따른 밀도 차이로 불균일한 결정이 생긴다. 반면 중력이 거의 '0'에 가까운 '미세중력' 환경의 우주공간에서는 고른 결정을 얻을 수 있다. 단백질 분석 전문가인 이영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할 수 있는 우주가 신약 개발에 유리한 곳으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마이크로퀸도 미세중력 환경을 고려해 ISS에서 TMBIM를 결정화하고 3D 구조를 분석했다.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TIMBIM을 표적으로 하는 후보 약물들을 발굴했다. 암 외에도 퇴행성 뇌질환 파킨슨병을 치료하거나 인플루엔자(독감)를 완벽히 예방하는 형태의 약물 후보들도 찾아냈다. 스콧 로빈슨 마이크로퀸 최고경영자(CEO)는 “단백질 TMBIM의 신약 관련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우주 환경은 줄기세포 배양에도 유리하다. 줄기세포 배양은 인간의 세포나 조직, 장기를 재생시켜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재생의학의 근간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100만개 당 100개 가량만 원하는 세포나 장기로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균일한 결정을 얻을 수 있는 우주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 우주공간서 답 찾으려는 기업들 대거 등장
지난달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ISS로 발사된 미국 스페이스X의 우주선 ‘크루드래건’에는 스위스와 이스라엘이 합께 설립한 우주 스타트업인 ‘스페이스파마’의 미니실험 장치가 실렸다. 가로, 세로, 높이 각 60cm 정도 크기인 미니실험 장치엔 사람 피부가 실려 항노화 의약품, 뇌 질환 등에 대한 연구가 우주 공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사람 피부는 스위스 생명과학기업 ‘커티스 AG’의 의뢰를 받아 우주로 보내졌다. 커티스AG는 우주 환경이 사람 피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실험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지구로 전송된다. 요시 야민 스페이스파마 CEO는 “우주 의학이란 새로운 산업을 개척했다”며 “작년에 이미 7개의 우주의학 실험을 수행했으며 수가 더 늘고 있어 더이상 공상 과학 소설에서만 그려지는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독일 제약사 머크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신규 약물전달기법을,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당뇨병 치료제를 우주에서 개발하는 등 이미 세계 선도 제약사들의 우주의학 연구는 진행되고 있다.
국내 우주의학 연구는 걸음마 수준이다. 보령이 우주 의학 연구에 최근 뛰어들었다. 민간 우주정거장을 짓고 있는 미국 우주기업인 액시엄스페이스와 오는 5월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우주 의학 연구를 포함한 우주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우주 방사선 치료제를, 스페이스린텍은 우주 의학 연구를 통한 뇌 질환 진단과 치료 기술을 개발 중이다.
김정균 보령 대표는 “'달 장기체류 때 속이 쓰릴 때 겔포스를 먹으면 속쓰림이 나아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겠다”며 "우주 의학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주에서 인간이 제약 없이 자유로운 활동을 하게 해 다양한 임무들을 차질없이 수행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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