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는 청부살인인가…4000만원 출처에 수사력 집중
원래 목적이 A씨가 빼돌린 투자금일 가능성도...휴대폰 빼앗긴 ‘2시간’ 행적이 관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서울 한복판, 그중에서도 인프라와 치안 역량이 집중된 강남에서 납치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틀 안에 사건에 직접 가담한 피의자가 모두 검거돼 불안감은 잦아들었지만 의문은 커졌다. 범행 동기와 과정에 남은 석연치 않은 구석 때문이다.
사건은 3월29일 밤 11시46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아파트 앞에서 일어났다. 황대한(35)과 연지호(30) 등 남성 2명은 귀가 중이던 여성 A씨(48)를 차로 납치해 살해했다. 이후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시신을 암매장했다. 경찰은 3월31일 황씨와 연씨를 경기도 성남시 일대에서 검거했고, 이들에게 범행을 사주한 이경우(35)를 서울 논현동에서 체포했다. 이들 3명은 4월5일 모두 신상이 공개됐다. 그 외에 경찰은 A씨의 동선을 미행한 20대 남성도 붙잡았다.
당초 사건의 배후는 이씨로 알려졌다. 이씨가 대학 동창인 황씨에게 700만원을 주며 A씨 납치를 지시했고, 황씨가 배달일을 같이 하던 연씨를 끌어들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씨가 "이씨가 범행 착수금 조로 4000만원을 윗선으로부터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경찰은 그 윗선을 40대 남성 유아무개씨로 지목하고 4월5일 체포했다. 이로써 입건된 피의자는 모두 5명이 됐다. 여기까지가 4월6일 기준 경찰 수사 진행 상황이다.
의문점① 숨어있던 윗선은 누군가?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종합하면 당초 유씨는 암호화폐 퓨리에버 코인의 투자자 겸 홍보이사로 참여했다. 이는 퓨리에버 홍보·영업을 맡고 있던 피해자 A씨의 소개로 이뤄졌다. 유씨는 2020년 10월 퓨리에버의 거래소 코인원 상장 전후로 리딩방 등을 통해 호재를 퍼뜨렸다. 이후 개당 1000원대이던 코인은 2020년 12월 9600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유씨가 부인 황아무개씨와 함께 A씨 몰래 코인을 대거 팔아치워 상당한 수익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후 2021년 2월 코인은 다시 10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때부터 균열이 생겼다. A씨는 기존 투자자였던 이씨와 함께 유씨 부부를 찾아가 "코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이를 통해 1억9000만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빼앗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A씨와 이씨는 같은 편이었다. 이씨는 A씨의 가족회사인 또 다른 암호화폐 업체에서 일하며 급여를 받기도 했다.
A씨는 유씨 부부와 고소전에 돌입했다. 이들은 코인 손실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이 과정에서 유씨 부부는 이씨에게 새 일자리를 소개해 주는 등 회유하면서 A씨로부터 떨어뜨려 놓았다. 결국 이씨는 유씨 부부와 손잡고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유씨의 사건 개입 범위와 이씨에게 건넸다는 4000만원의 실체를 쫓고 있다. 반면 유씨 측은 "지난 1년6개월간 (이씨와) 돈거래를 한 적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의문점② 휴대폰 훔쳐서 뭘 했나?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의 휴대폰은 납치가 일어난 시각(3월29일 밤 11시46분)으로부터 약 3시간 후인 3월30일 오전 2시35분경 꺼졌다. 그사이 이씨는 A씨를 납치해 싣고 가던 연씨와 황씨를 경기도 용인시에서 만나 A씨의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납치 지점으로부터 용인시까지 거리는 약 40km다. 수요일 밤에 차로 이동할 경우 30분 안팎이면 도달할 수 있다. 즉 A씨 휴대폰이 이씨의 손에 들어간 후 최소 2시간은 커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경찰은 이씨가 암호화폐 탈취에 실패했다고 봤다. 금액도 적었다고 한다. A씨 지갑에는 퓨리에버 88만 개가 있었는데, 이는 납치 당일 기준으로 700만원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씨의 목적이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앙일보 등에 따르면 A씨는 남편을 필두로 'TES코리아'란 암호화폐 발행업체를 별도로 차렸다. 이씨가 일했던 그 회사다. TES코리아의 사업 목표는 바인빗 코인 발행과 코인 채굴장 개설 등이었다. 채굴장은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독점 계약을 맺고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아예 바인빗 전용 거래소를 연다는 계획도 밝혔다. A씨 부부는 사업을 홍보하며 2019년 8월부터 투자금 100여억원을 끌어모았다.
그러나 채굴장은 실체가 없었고, 바인빗 거래소는 2020년 초 폐쇄됐다. A씨 부부는 바인빗이 다른 거래소에 상장될 것이라며 투자자를 설득했지만 결국 어느 곳에도 상장되지 않았다. 바인빗 피해자이자 TES코리아의 홍보를 도왔던 김아무개씨는 중앙일보에 "A씨 일가가 40억~50억원을 챙기고 회사 문을 닫았다"며 "이 돈으로 이더리움을 구입해 제3자의 코인 지갑으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이씨는 퓨리에버가 아닌 이더리움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씨가 TES코리아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잘 알았을 것이란 점도 간과하기 힘들다. A씨 남편이자 TES코리아 설립자인 장아무개씨는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의문점③ 코인 탈취 가능한가?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자산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을까. 암호화폐를 주고받으려면 '지갑'으로 불리는 보관 프로그램에 접근해야 한다. 지갑을 열려면 개인키(Private key)가 필요한데 이는 오로지 지갑 소유자만 알 수 있다. 지갑은 온라인에 연결된 '핫월렛'과 USB, 외장하드 같은 오프라인 형태의 '콜드월렛'으로 나뉜다.
콜드월렛은 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탈취가 불가능하다. 덕분에 보안성이 높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투자자들은 편의를 위해 거래소에서 수탁·관리하는 핫월렛을 이용한다. 따라서 개인키를 보관할 필요 없이 거래소 접속 비밀번호만 알면 지갑을 열 수 있다. 또 신원 인증이 가능한 휴대폰을 이용하면 비밀번호를 찾는 게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휴대폰만 확보하면 언제 어디서든 암호화폐 탈취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만 지갑에 접근해도 암호화폐 특성상 전송 경로 추적이 가능하다. 하지만 '믹싱 앤 텀블러(mixing and tumbler·이하 믹싱)' 기술을 활용하면 추적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는 암호화폐를 수백~수천 개의 지갑에 나눠 옮긴 후 다시 합치는 일종의 세탁 방법이다. 믹싱 사이트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약 2시간이면 믹싱을 거쳐 원하는 지갑으로 보낼 수 있다. 2020년 n번방 사태 당시 성착취범 조주빈이 코인을 숨기기 위해 활용한 방법도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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