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눈 어두우면 의심해 봐야…서서히 시력 잃는 희귀질환 ‘망막색소변성증’

서애리 2023. 4. 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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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는 사진기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망막이 있다. 망막은 눈으로 들어온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하는데,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은 이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소실되는 유전성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개인마다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나 진행 속도가 다르지만,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 나중에는 상당수 시력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무서운 질환이다.

 

희귀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야맹증이다ㅣ출처: 게티이미지뱅크

3대 실명 원인 질환 ‘망막색소변성증’…가족력 없지만 발병하기도
망막색소변성증은 녹내장, 당뇨변성망막증과 함께 3대 실명 원인 질환으로 손꼽힌다. 정확한 발병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시각 세포 내에서 빛을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기전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결함 때문으로 추정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시각 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유전성 망막질환으로, 전 세계적으로 5,000명 당 1명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유전성 망막질환 종류는 20가지가 넘는데, 그중 가장 흔한 질환이 망막색소변성증인 셈. 300개 정도로 알려진 유전성 망막질환에 해당하는 유전자 중 망막색소변성증 유전자는 80개 이상이며 계속 추가되고 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가족력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특정한 이유 없이 돌발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 유전양식은 유전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상염색체 열성, 상염색체 우성 그리고 성염색체와 관련된 유전 형태이며, 특히 상염색체 열성유전의 경우에는 부모에서 '보인자'로만 되어 있어 병이 발생하지 않지만 자식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유전 형태이다. 가족력이 없는데 발병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성염색체 열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모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병이 없는 어머니의 성염색체에 있는 원인 유전자가 아들에게 전달되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유전양식에 따라 부모가 모두 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질 수 있고 병을 앓지 않을 수도 있다.
현재 밝혀진 80여 개의 망막색소변성증 유전자에는 레베르 선천성 흑암시(Leber Congenital Amaurosis), 황반이영양증 등 다른 유전성 망막질환과 겹치는 것이 많다. 각 유전자 안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주요 지점 역시 여러 가지라서 하나의 유전자에 의해서 다양한 표현형이 나온다. 즉, 유전적으로 봤을 때 망막색소변성증은 매우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며, 유전뿐만 아니라 유전자 이상으로 초래되기도 한다. 따라서 유전자 이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질병의 정도나 진행 속도가 다를 수 있다. 늦게 병이 발생하거나 병이 빨리 진행하지 않는 경우에 노인이 될 때까지 실명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 증상은 야맹증…상당수가 시력 상실로 이어져
하이닥 안과 상담의사 구오섭 원장 (글로리서울안과)은 "망막색소변성증은 보통 20세 전후나 40대 이후 진단되며, 초기 발견이 어렵고 병이 진행되어야 증상이 나타난다"라며 "보통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진행되는데, 갑자기 어두운 곳에 들어갔을 때 적응을 잘못하거나 해 질 무렵 외출할 때 잘 보이지 않거나, 어두운 실내에서 생활이 어려워진다면 망막색소변성증 유무를 검사해 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의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야맹증으로, 망막의 막대세포의 기능이 떨어져 나타난다. 망막에는 물체 명암을 구분하는 막대세포와 물체의 형태와 색을 인식하는 원뿔세포가 있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이 시작되면 막대세포부터 이상이 발생해 이후 원뿔세포까지 순차적으로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심한 야맹증이 나타나면 망막색소변성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야맹증 외에도 병이 진행되면서 점차 양안의 시야가 좁아지는 시야협착도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마치 작은 망원경으로 보는 것과 같은 시야 즉 터널시야를 경험하며, 시야가 희미해져 글을 읽지 못하거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이외에도 중심시력 저하, 색각장애, 광시증, 눈부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망막전위도 검사 통해 진단… 치료·예방법 없어 더 위험
망막색소변성증은 시력검사, 색맹검사, 검안경 또는 촬영 장비를 통한 안저 검사, 시야 검사나 전기생리 검사, 유전자 확인 등을 종합해 진단한다. 이 중 전기생리검사인 망막전위도 검사는 망막에 빛으로 자극을 줬을 때 나타나는 전기신호를 기록하는 검사로, 가장 유용한 검사법이다.
하이닥 안과 상담의사 정영택 원장 (온누리안과병원)은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질환인 만큼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없다"면서도 "진행에 따라 동반되는 백내장이나 녹내장 수술 등 부분적인 치료는 가능하며, 증상에 따라 질환의 악화를 늦추는 보전적 치료 또는 항산화제 치료, 줄기세포 치료, 유전자 치료 등이 시도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유전적 질환인 망막색소변성증은 특별한 예방법이 없다. 다만 시력이 자외선에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선글라스나 교정 안경을 착용하면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 된다. 과도한 음주나 흡연, 지나친 스트레스는 병의 경과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만큼 생활습관 교정도 필요하다. 비타민 A와 오메가3 지방산 등 눈에 도움 되는 영양제를 복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진행 속도를 늦춰 시기능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또한 망막색소변성증은 황반부종과 백내장 등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황반부종이 발생하게 되면 그나마 보존된 중심시력까지 떨어지기 때문에 시력저하가 갑자기 발생한다면, 반드시 안과를 방문해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백내장 역시 마찬가지로, 시기능에 영향을 많이 미칠 수 있으므로 심한 경우에는 수술을 통해 시력 개선에 힘써야 한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구오섭 원장 (글로리서울안과 안과 전문의), 하이닥 상담의사 정영택 원장 (온누리안과병원 안과 전문의)

서애리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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