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가난, 중독... '수치심'은 어떻게 약자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가 되는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는 1960년대 스탠퍼드대에서 진행된 '마시멜로 실험'으로 이야기를 연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나눠준 다음 유혹을 참으면 보상을 하나 더 주겠다고 했는데 절제력 있는 아이가 훗날 더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실험의 요지다. '부유한 사람은 부유할 만하고 빈곤한 사람은 빈곤할 만하다'는, 다분히 '지배계층'이 좋아할 법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 결론은 2018년 더 엄밀한 연구로 허물어졌다. 실험 결과 마시멜로를 집어먹는 요인보다 부모의 부와 교육 수준이 아이의 성공과 훨씬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 유복한 아이는 재력 있는 부모가 늘 보상 약속을 지켰기에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냉장고에 당장 내일 아침 먹을 것도 없는 가정의 아이는 물질적 보상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는 무턱대고 약자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고, 이들은 실패가 자신의 탓이라는 수치심을 내면화했다.
'수치심(羞恥心)'. 사전적 정의로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뜻한다. 얼핏 개인의 내면 요인에 불과할 것 같은 이 감정이 현대 사회에서 억압과 이윤, 통제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발간됐다. 신간 '셰임 머신'은 개인의 수치심이 어떻게 누군가의 돈과 권력이 되는지를 분석한다.
오늘날 수치심은 성공을 보장하는 사업 아이템이다. 일례로 비만을 살펴보자.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곳곳에 다이어트를 위한 헬스클럽, 의료시술, 건강보조식품 광고 일색이다. 살을 뺄 수 있도록 돕는 자원이 이렇게 무궁무진한 현실에서 계속해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개인은 늘 수치심의 노예가 된다. 자기 혐오를 내재화하고 세상은 그를 패배자로 바라본다.
정부도 수치심을 곧잘 공동체 유지 도구로 활용한다. 근로장려금제(EITC)는 자녀가 있는 근로 가구 상당수를 빈곤선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고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미국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마약, 약물, 흡연, 알코올 중독자를 향한 징벌적 태도는 어떠한가. 이들을 왜 중독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회구조적 맥락은 살피지 않고 '○○와의 전쟁'부터 선포하는 공권력의 무심함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보편화된 디지털 환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수치심 머신이다. 지하철에서 붙은 일반인의 시비마저 실시간 온라인 중계되는 세상. 네티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열띤 토론을 하며 과한 비난을 쏟고, 누군가의 의도치 않은 실수 영상은 '유머'로 둔갑해 평생의 주홍글씨가 된다. 평범한 사람도 페이스북에 정치적 소신을 담은 글로 사상검증의 대상이 되기 십상. 개인은 조롱을 피하려 애플리케이션으로 몸매를 보정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20여 년간 월스트리트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한 저자는 이 모든 배경에 페이스북과 구글 등 거대 디지털 기업의 알고리즘이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 사이에 혐오 정서를 퍼트리는 최적의 값을 찾아 트래픽과 광고 효과를 높이는 기술 전략이라는 거다. 개인들은 팔로어나 좋아요 수를 늘리기 위해 타인을 희생양 삼은 글을 게시한다. 사람들은 분노, 공격심, 혐오 등을 쏟아내며 후련해한다. 오늘날 일촉즉발의 갈등 상황 이면에는 이처럼 수치심을 돈벌이로 삼는 생태계가 존재한다.
권력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고 관대한 마음이 아래로 향할 때 사회는 본질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세계적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를 보라. 하비 와인스타인에게 수치심을 안긴 건 피해자들의 용기와 연대였다. 카스트제도가 공고한 인도에서 하층민이 고통에 신음할 때 마하트마 간디는 불가촉천민과 함께 목욕했다. 가난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며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말이다.
수치심 머신에 가담하지 않는 개인의 작고 소중한 실천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약자를 괴롭히는 게시물에 동참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약자에 격분하기보다 권력자에 저항하며, 사람은 모두 실수하는 존재이며 그 잘못으로 영원히 수치심의 늪에 빠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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