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정해인이 광고하는 침구회사, '인공혈관' 국산화 기업이었다

김성진 기자 2023. 4. 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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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혈관 튜브, 전량 수입해 썼는데...섬유기업 웰크론, 5년 개발 끝에 국산화
배우 정해인 침구로 유명한데...방산용품, 인공혈관까지 '미래 먹거리'도 생산
지난해 '테이퍼형' 스탠트용 튜브 상용화...혈관대체용 제품까지 개발 '박차'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웰크론 본사 모습. 건물 4층에 기술연구소가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6일 오후 2시쯤 서울 구로구 웰크론 본사 외벽 높은 데 가로·세로 7m 남짓 배우 정해인씨 침구 광고 사진이 붙어 있었다. 건물 1층은 웰크론 침구 브랜드 '세사' 매장이었다. 극세사 이불, 옥(玉) 분말을 섞어 개발한 이불 등이 진열돼 있었다.

건물 4층엔 웰크론 기술연구소가 있다. 한쪽 벽에 세탁기 3대가 연구 중이던 침구를 빠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오른편 구석에 2~3평 남짓 유리 벽으로 구분된 공간이 있었다. '무균실'이라 쓰여 있었다. 안쪽 책상에 정체를 알기 힘든 흰 실 같은 물체들이 수북했다. 권은희 기술연구소장은 "상용화 마지막 단계인 인공혈관"이라고 했다.

세사과 세사리빙을 론칭해 '침구 회사'로 널리 알려진 웰크론은 2016년 국내 최초로 혈관 확장, 이른바 '스탠트'용 인공혈관 튜브를 자체 개발했다. 지금도 인공혈관 튜브를 만드는 국내 기업은 웰크론이 유일하다.

개발은 2012년 시작했었다. 당시 국내 인공혈관은 전부 수입산이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세계적으로 시장을 미국의 고어 사, 일본의 테루모 사 등 소수 회사가 과점 형태로 점유하고 있었다.

공급이 불안정했다. 2017년 국내 시장 과반을 점유하던 고어가 국내 사업을 철수하는 일이 있었다. 대란이었다.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이 수술을 못 받았다. 의료계 노력에 상황은 차츰 회복됐지만 인공혈관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웰크론이 개발한 스텐트용 튜브(왼쪽)와 개발 중인 손상 혈관 대체용 인공혈관(오른쪽)./사진=김성진 기자.


인공혈관에는 '섬유 기술'이 쓰인다. 인공혈관 제품은 크게 △스텐트 △손상 혈관 대체용 인공혈관으로 나뉜다. 스텐트는 혈관 안에 집어넣는 인공혈관이다. 콜레스테롤, 지방 등으로 막힌 혈관을 넓힐 때 쓴다. 혈관을 넓혀주는 합금 소재 지지체와 지지체 안 또는 밖에 붙인 '튜브'로 이뤄진다.

튜브는 신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이는 양산되고 생체 안정성이 강한 PTFE(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소재를 쓰면 어렵지 않게 해결된다. 관건은 튜브 두께를 100만분의 1 미터 수준인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얇게 만들고 혈액 속 영양소·노폐물은 통과하지만 혈액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업계 용어로 특정 성분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멤브레인'을 구현하는 것이다.

멤브레인은 섬유 기업들이 연구하는 기술이다. 산업용 필터, 패션 원단 등에 들어가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인공혈관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고어 사도 공기는 통하고 수분은 막는, 등산복 소재로도 유명한 멤브레인 기술 '고어텍스'를 보유하고 있다.

스텐트 적용 모습. 콜레스테롤과 지방으로 막힌 혈관을 넓혀주는 합금 재질 지지체와 지지체 안 또는 밖에 붙이는 튜브로 이뤄진다. 튜브는 두께가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얇아야 하고 혈액 속 영양소와 체내 노폐물은 통과하지 혈액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사진제공=웰크론.


웰크론은 1992년 산업용 섬유 전문 회사로 사업을 시작했다. 필터와 나노 섬유, 친환경 섬유 등을 만들었다. 침구류 사업은 20여년 흐른 2010년 시너지를 노리고 시작했다. 절단 방지 장갑에 쓰던 고밀도 섬유 기술로 체열을 빨리 뺏는 여름 이불 세사 아이스쿨링을 개발하는 식이다.

PTFE로 웰크론은 기체 필터,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화학 물질 필터 등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술연구소는 PTFE를 가늘게 늘리고 마이크로미터 단위 기공으로 멤브레인을 구현해 스텐트 튜브 ePTFE를 개발했다. 개발을 마친 이듬해 스텐트 완성품 제조업체에 납품했고 현재 완성품은 국내와 러시아 등 해외에 판매된다.

권은희 웰크론 기술연구소장. 오른쪽 유리벽으로 구분된 '무균실' 안 책상에 웰크론이 개발 중인 인공혈관 제품들이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튜브 상용화에 성공한 후 기술연구소의 과제는 '다양화'였다. 환자마다 혈관 크기가 다르고 어떤 부위는 혈관이 굵다가 얇아지거나 Y자로 갈라지는 부분이 있어 스텐트 튜브는 크기, 형태를 다양하게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권 소장은 "튜브 크기가 워낙 작아 처음에는 구경 조절이 어려웠는데 다양한 구경 제품을 여러번 반복해 생산하니 크기를 컨트롤하는 기술을 찾아냈다"며 "지금은 스텐트 제조업체 요구에 다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혈관이 굵다가 얇아지는 부위는 '테이퍼형' 스텐트를 써야 한다. 웰크론은 지난해 해당 스텐트용 튜브를 개발해 납품까지 완료했다.

앞으로 연구소의 과제는 '확장'이다. 연구소는 앞으로 3년 안에 손상 혈관 대체용 제품도 국산화할 계획이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데이터는 국내 인공혈관 시장이 2025년까지 연평균 3.9%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현대인의 불규칙한 식습관, 고령화 영향으로 심혈관 질환 환자가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시장 55.8%는 고어 사, 13.3%는 미국 메드트로닉 사, 6.5는 S&G 바이오텍이 점유해 80% 이상이 수입산이다. 권 소장은 웰크론 제품이 "국내 생산되는 유일한 제품이라 납품 지연 걱정이 없다"며 "또 외국 경쟁 제품과 비교하면 '품질이 균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스텐트 튜브는 크기가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작아 품질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인공혈관 시장은 판로 개척이 쉽지 않다. 소재를 교체하면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 시간, 비용 부담이 커 웬만하면 소재 납품 기업을 바꾸지 않으려 한다. 권 소장은 "고령화로 인공혈관 시장은 클 텐데 국내 제조기업은 많지 않고 인증 부담에 주저앉은 기업들도 있다"며 "패스트트랙 등 임상시험과 인증 과정에 비용, 시간 부담을 줄여주는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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