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가난까지 ‘죄’로 만드는 사회[북리뷰]

이정우 기자 2023. 4.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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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뚱뚱함은 죄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정보기술(IT) 업계의 데이터 과학자로 명성을 얻은 이 책의 저자 캐시 오닐은 어릴 때부터 뚱뚱했다.

TV 속 다이어트 예능은 뚱뚱함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를 충동질한다.

성차별에 대한 세계적 각성을 불러일으킨 '미투 운동'은 사회의 성적 관습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권력층 남성 범죄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힘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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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임 머신
캐시 오닐 지음│김선영 옮김│흐름출판

오늘날 뚱뚱함은 죄다. 뛰어난 수학자이자 정보기술(IT) 업계의 데이터 과학자로 명성을 얻은 이 책의 저자 캐시 오닐은 어릴 때부터 뚱뚱했다. 박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날, 그녀는 자축의 의미로 쿠키를 한 판 굽기로 한다. 식료품점 계산대에 밀가루, 설탕, 초콜릿 칩을 올려놓자 점원이 한마디 한다. “왜 이런 재료를 사는 거예요? 본인이 뚱뚱하다는 거 몰라요?”

미국에서 비만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퇴치돼야 할 질병으로 치부된다. TV 속 다이어트 예능은 뚱뚱함에 대한 수치심과 혐오를 충동질한다. ‘뚱보’는 자기 관리 실패자로 낙인찍혀 손가락질당하기 일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표출되는 수많은 ‘몸짱’과 다이어트 성공 사례는 대중의 수치심을 자극하고, 다이어트는 수치심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된다. 미국의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1년 4조4700억 원에서 2026년 5조820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치심을 사회적으로 구조화시켜 정치·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셰임(수치심) 머신’이 작용되는 단적인 경우다.

가난함과 못생김 역시 게으르다거나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한 선택의 결과로 여겨진다. 킴 카다시안의 미용 산업은 ‘수치심 머신’이 작용되는 전형적 사례다. 잘록한 허리, 넓은 골반, 풍만한 가슴. 카다시안의 비현실적인 인공적 아름다움은 자신을 ‘가꾸지 않았던’ 보통의 사람들이 잘못된 것처럼 인식시킨다. 자신의 결함에 대처하지 않았다면,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것. 이 결함들은 본인의 선택의 결과라는 논리다.

저자는 수치심의 방향을 약자가 아닌 강자에게 돌리는 해법을 제시한다. 성차별에 대한 세계적 각성을 불러일으킨 ‘미투 운동’은 사회의 성적 관습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권력층 남성 범죄자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힘을 부여했다.

저자의 마지막 경고. “우리는 수치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일 수 있다. 수치심이란 무기를 신중히 휘두를 것.” 320쪽, 1만8500원.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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