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가상화폐…‘영끌 광기’의 역사 까발리기[북리뷰]

2023. 4.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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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 권하는 사회
김승우 외 9인 지음│역사비평사
미국, 1차 세계대전 전비마련 위해
일반 시민들에게 채권발행 시작
수익 챙긴 대중들은 투자 본격화
한국, 1970년대 강남개발 등 시작
지역간 위계 만들어낸 사례 통해
정의 외면한 대중 투자사회 성찰
1920년대 중반 미국 플로리다 지역의 매립 개발 예정지에 세워진 광고판. ‘투자 권하는 사회’는 ‘영끌’과 거품 붕괴가 반복된 대중 투자사회의 역사를 되짚는다. 역사비평사 제공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2002년 한 신용카드 회사 광고가 사람들 마음을 흔들었다. 국가부도 이후, 돈이 강박적 인생 목표가 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문구였다. 부자는 감염병처럼 번지는 신흥 종교였고, 성실한 바보는 불신의 증거로 변했다. 금융 공부 열풍이 불고, 부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는 기사가 넘쳐났다. 누구나 대박을 꿈꾸면서 주식, 부동산, 채권, 가상화폐에 돈을 넣는 대중 투자사회가 출현했다.

김승우·박진빈 등 여러 역사학자가 함께 쓴 ‘투자 권하는 사회’는 대중 투자사회의 등장과 국가별 전개 과정, 일반 시민을 투자자로 호명하고 금융시장에 끌어들이는 기법과 정책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금융화가 가져온 우리 삶의 변화 양태를 꼼꼼히 되짚는다. ‘영끌’의 광기와 거품 붕괴가 반복되는 이 시장이 대중 관심사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초 미국에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 연방정부는 막대한 전비 마련을 위해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리버티 채권을 발행했다. 이로써 국가 운명과 개인의 경제적 운명이 하나로 엮였다. 전쟁 승리로 짭짤한 수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대중은 자신을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에 뛰어드는 투자자로 받아들였다. ‘위대한 개츠비’가 보여주듯, 도박과 투기의 장으로 의심받았던 뉴욕 주식거래소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투자가 투기가 되는 배경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압축되는 소비 자본주의의 발달, 물질적·쾌락적 삶을 부추기는 대중 광고, 거품을 노리고자 달려드는 꾼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정부 정책 등이 있다. 1920년대 플로리다 부동산 거품 붕괴는 이를 선연히 보여주었고, 이는 이후 전 세계 투기 사태의 공식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주식거래는 개항기에 시작됐다. 유길준 등 개화파는 주식회사를 부국의 길이자 구국의 비책으로 여겼다. 조선은행(1896)·한성은행(1897) 등 첫 번째 주식회사는 은행이었고, 경부철도·동양척식이 주식회사로 세워지면서 식민 경제 기반 구축에 이용됐다. 1919년 공식 주식시장이 최초로 열렸으나, 1970년대까지 주식투자 인구는 미미했다. 1962년 증권 파동, 1977년 건설주 파동 등 노름판 같은 시장에 감히 뛰어들 사람은 드물었다. 일반 시민이 주식시장에 몰린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3저 호황에 따른 주가 폭등, 포항제철, 한국전력 등 ‘국민주’ 보급으로 개미군단이 형성됐다. 그러나 대박의 꿈은 1989년 시장 붕괴와 함께 쪽박의 악몽이 됐다. ‘물타기, 뻥튀기’ 등 대주주 이익 확보를 위한 편법, 정부의 과한 증시 부양책이 원인이었다. ‘내가 바보지’에서 김성환은 노래했다. “반찬값 아껴 버스값 아껴 허리 졸라 마련한 내 집, 30여 년 일한 퇴직금 그 모두가 어디로 갔나.”

‘내가 바보지’는 이후에도 몇 차례 반복됐다. 그러나 한국 경제성장에 따라 주식시장은 오늘날 투자 인구 1384만 명, 세계 15위 시장으로 커져 투자라는 사고방식을 일상화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친(親)자본 사회로의 전면 전환 및 중산층 주도의 한국 사회 보수화의 요인이 되었다.

부동산 투자 역시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 자본이 진출해 토지를 사들이고, 식민 당국이 대지주 세제 혜택 등으로 이를 지원하면서부터였다. 몇몇 한국인도 이 무렵 부동산 투자에 눈떴다. 1932년 한적한 어촌 나진에 투기 광풍이 불었다.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고, 길림과 회령을 잇는 철도 종단항으로 나진을 선정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이곳을 ‘찍어서’ 토지를 사두었던 홍종화, 김기덕 등은 단숨에 조선 제일 부자로 올라섰다. 경제적 감각과 모험을 통해 부를 획득한 신흥 부자의 탄생 신화가 만들어졌다. 부동산을 이용해 중산층이 자산 증식에 나선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이다. 강남 개발, 신도시 건설 등이 이들의 욕망을 부풀렸다. ‘내 집’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중산층의 열망은 절약과 저축의 윤리를 깨뜨렸다. 서울과 경기,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 강남과 강북, 구도심과 신시가지 간의 공간적 위계도 괴물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 투기의 일상화였다.

투자를 통한 대박의 꿈이 진정 우리 전체를 좋은 삶으로 이끄는지 의심스럽다. 대중 투자사회가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고 사회 정의를 외면하는 불평등 통치 체제가 되지 않도록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328쪽, 1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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