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타인의 삶 침범할 수도”… 글쓰기·현실의 간극 줄이는 법[작가의 서재]

2023. 4. 7. 09: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바야흐로 '쓰기'의 시대다.

책 속의 문장과 같이 "그 어떤 사람도 타인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타인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그 순간부터 '대상화' 또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글쓰기의 모순과 역설을 꼬집는 제이미슨은 타인의 삶을 다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 서재

바야흐로 ‘쓰기’의 시대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만 가는데, 책을 쓰겠다는 사람들은 갈수록 넘쳐난다.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이제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 나를 봐줘, 내 이야기를 들어줘.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교실과 책 쓰는 법에 대한 강의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그러나 이처럼 모두가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시대이기에 역설적으로 말하기와 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읽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나 또한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생각한다. 어디까지 쓸 수 있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되지? 내 삶은 나의 삶이지만 나만의 것이 아니며, 그 안에는 타인들도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 나의 이야기지만 나 혼자만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삶, 타인의 이야기. 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망 앞에서,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가 너무도 쉽게 타인의 삶을 침범할 수 있는 오늘날의 환경에서, 쓰기와 말하기의 윤리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반비)는 국내에 소개된 레슬리 제이미슨의 세 번째 책이다. 전작인 ‘공감수업’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탐구하고, ‘리커버링’을 통해 알코올 중독과 회복의 지난한 여정에 대해 쓴 그는, 이번에는 복잡한 세상사와 다양한 층위로 이루어진 타인의 자아를 어떻게 ‘옮길지’ 고민한다. 책 속의 문장과 같이 “그 어떤 사람도 타인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타인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는 그 순간부터 ‘대상화’ 또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전시에 찍힌 사진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동시에, 희생자들을 구조하기보다 사진에 집중한 사진작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러나 만약 완전한 글만이 존재해야 한다면 세상의 누구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기록되고 전해졌어야만 하는 많은 이야기 또한 그대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한 글쓰기의 모순과 역설을 꼬집는 제이미슨은 타인의 삶을 다루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책에 실린 분량도 주제도 제각각인 14편의 글은 얼핏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래나 환생, 또는 가상세계에 집착하는 조금 ‘독특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비행기 환승 과정에서 마주친 어느 짜증스러운 여성과의 일화나, 아버지의 결혼식에서 겪은 일,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경험 등에 관한 글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질문을 관통한다. 타인의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글과 현실의 간극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쓰는 과정에서 타인을 대상화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나.

이런 질문을 통과한 결론 역시 전작들과 동일하다.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 보이는 것 너머의 지점을 상상할 것, 마지막으로 대상을 사랑할 것. 그리하여 제이미슨은 말한다. “사랑이란 완전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헌신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승혜 작가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