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벚꽃길… 희망은 다시 피어난다
배우 박용기의 감독 데뷔작
한밤 흩날리는 꽃잎 맞으며
야반도주하는 네 명의 가족
한 컷 한 컷 고심 또 고심…
첫 장면 구도 잡기에만 3시간
김지완·현영, 부부 역할 맡아
사기당해 재산 날리고 쫓겨도
하루하루 가족 지키려 발버둥
생에 대한 반성이자 새출발 그려
사람들은 때로 예기치 않게 바닥에 떨어질 때가 있다. 희망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양산 벚꽃길을 걷는 네 명의 가족 풍경은 아름다운 한편의 그림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빚쟁이들을 피해 야반도주하는 중이다.
김지완(현우 역), 현영(유리 역)이 주연을 맡고, 박용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하루 또 하루’의 경남 양산 촬영 현장을 찾았다.
촬영 시간은 10분 남짓. 영화에 등장하는 건 길어도 20초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영화의 첫머리를 찍기 위해 조명 세팅과 구도를 잡는 데 세 시간여가 걸렸다. 한 컷의 울림을 위한 고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빚 독촉 전화야. 네가 받을래? 삼십 통 넘게 왔어.”
휴대전화를 부여잡은 김지완이 현영에게 울분을 토해낸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컷을 마친 배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김지완은 “본의 아니게 오래 쉬었고, 이 영화는 다시 출발할 기회”라며 “어려운 역할이지만, 이걸 극복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현영의 딸인 강채빈양(소망 역)이 유준혁군(소중 역)과 라면을 끓여 먹다 데인 후 이를 현영이 다그치는 장면.
현영은 “결혼 전에는 밝은 역할만 했다면 이제는 엄마도 됐고, 인생도 어느 정도 겪은 만큼 변화한 나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저한테 굉장히 도전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현영은 “내 안에 ‘엄마’가 이렇게 강할 줄 몰랐다. 리허설하고 대본 리딩할 때는 이 아픔을 어느 정도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찍으면서는 나에게도 이렇게 뜨거운 모성애가 있었구나 느꼈다”고 심상을 풀어놨다.
극장 관객이 흘낏 지나칠 수 있는 장면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오랜 시간 연극과 함께 해온 박 감독의 연륜과 고집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박 감독에게도 이 영화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배우로 살아온 그에게 ‘하루 또 하루’는 첫 감독 도전인 동시에, 생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좀처럼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 못하는 듯하다. 박 감독은 “잘했다. 이제 90%까지 왔다”면서도 부족한 10%를 채우지 못했는지 촬영을 길게 이어간다.
밤늦게까지 촬영이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 정해진 스케줄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2일 촬영에선 두 주연 배우의 감정이 한계치까지 끓어오른다.
슬픔의 강행군 중에도 “저는 아직 삼춘기”라며 밝게 재잘거리는 채빈양은 촬영 땐 연기에 몰입하지만, 연기가 끝난 뒤엔 “제 연기 보고 울었어요?”라고 묻는 당찬 아이다. 지쳐가는 배우들과 촬영팀에게 아역 배우들은 때때로 웃음을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다.
많은 저예산 영화들이 그렇듯이 카메라 한 대로 같은 장면을 찍으려니 풀샷과 클로즈업이 반복된다. 아마도 이 중 많은 장면은 잘려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장면도 쉽게 찍을 순 없다.
짧은 촬영장 방문으로 종합예술인 영화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배우와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화는 사업을 하다 사기꾼을 만나 재산을 날리고 야반도주할 수밖에 없었던 남자와 그의 가족 얘기를 그린다. 우리가 어쩌면 겪게 되거나 때론 듣게 되는 실패의 경험담. 그래서 너무 과해서도 안 되고 너무 관조적이어도 안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
한국 영화 산업의 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 여전히 영화인들의 노력은 하루 또 하루 그렇게 계속되는 중이다. 바람에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양산에서 영화는 새로운 희망을 그리고 있다.
양산=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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