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기록제작소] 틀니도 하루 만에 뚝딱… 어느 꼬마의 꿈
송준엽 ㈜중앙바이오메디컬 대표
3D프린팅으로 보철물 제작
시간과 비용 줄일 수 있어
의료비 부담 획기적 경감
노년기엔 틀니에 의존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노인들은 틀니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비싼 비용 때문이다. 그 부담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치과 의료기기 업체 연구원 출신인 송준엽(35) ㈜중앙바이오메디컬(C.E.I.B.med) 대표가 3D프린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에서 제품을 개발하던 송준엽 연구원의 머릿속엔 잔상처럼 남아있는 장면 하나가 있다. 정확히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일가친척이 모인 어느 날, 꼬마였던 그는 고모할머니가 잠깐 빼둔 틀니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플라크(치태) 탓에 부식까지 진행된 틀니였다.
잠시 후 고모할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그 틀니를 끼우는 걸 보고 놀란 마음에 할머니께 물었다. "왜 그런 걸 끼고 계세요?" 할머니는 부끄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거 맞추는 데도 목돈이 깨졌는데, 무슨 면목으로 자식들에게 바꿔 달라고 하겠니."
수십년이 훌쩍 지난 일인데도 그는 의치를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났다. 그가 치과용 의료기기 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더 오래 남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부식된 틀니를 끼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를 비롯한 몇몇 치과업계 관계자가 의기투합해 "가격 부담을 낮춰서 1년에 한번씩 교체할 수 있는 틀니를 만드는 건 어떨까"란 논의를 시작한 이유다. 여기엔 틀니를 사용하는 고령층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틀니는 65세 이상 노인 중 2명 중 1명이 사용한다.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틀니를 사용하는 인구도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치과용 의료기기 업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틀니 인구는 63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값싸고 품질 좋은 틀니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원인은 복잡한 공정이었다.
별것 아닌 듯하지만 틀니 등 치과 보철물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든다. 치과기공소에서 기공사들이 수작업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일일이 깎아낸다. 이 말인즉슨 제작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상당한 수준의 인건비가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를 포함한 치과계 연구진들은 '보철물을 만드는 기계를 도입해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도입한 건 선박용 CNC밀링기였다. 밀링기로 의치를 깎아 치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좋은 대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비용 부담이 컸다. 기계 한 대 값이 1억원을 넘는 데다, 10만원짜리 블록 하나 넣어서 치아 한개를 만드는 게 과연 효율적인가라는 물음표가 붙었다.
이렇게 한계에 부닥쳤을 때 등장한 게 3D프린팅이다. 송 연구원의 눈에 비친 3D프린팅은 혁신의 집합체였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철물을 만들면 꼬박 7일이 걸립니다. 밀링기를 사용하면서는 이 제작과정이 3~4일로 줄었죠. 그런데 3D프린팅으로 하면 당일 제작도 가능합니다. 원데이 보철(하루 만에 보철물 제작부터 착용까지 끝내는 보철 치료)이 그런 원리죠. 이렇게 되면 시간은 물론 가격도 확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가격 부담을 낮춰서 1년에 한번씩 틀니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당초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거죠."
3D프린팅의 효율성을 검증한 그는 지난해 3월 연구원의 옷을 벗고 창업시장에 뛰어들어 중앙바이오메디컬이란 회사를 세웠다. 3D프린터 4대를 구입해 혼자서 밤낮없이 보철물을 찍어냈다.
하지만 그의 기대처럼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았다. 치과 의료기기업계가 보수적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각종 정부 지원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돌아오는 건 "회사 인력이 부족하다" "특허가 없다"는 평가뿐이었다.
송 대표는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동물시험과 세포독성시험을 홀로 진행하며, 정부 과제를 병행했다. 부천시사회적경제센터의 소셜벤처 단비기업에도 지원해 선정됐다. 사실상 기업의 첫 단추를 채운 셈이다. 이를 동력 삼아 지난해 10월엔 시제품을 출시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어서인지 송 대표의 꿈은 갈수록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치과용 레진 시장이 10년 전만 해도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성장했어요. 3D프린팅 시장도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단계지만 머잖아 크게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그땐 더 많은 어르신이 가격 부담 없이 틀니를 사용할 수 있겠죠. 그때를 기다리며 내실을 다질 계획입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편집자 주-
☞ 단비기업은 "가장 절실한 순간 가장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는 모토로 시작한 부천형 소셜벤처 브랜드입니다. 딱 한장만 내면 되는 'One page 사업계획서' 시스템으로 문턱을 낮췄고, 2017~2022년 총 54개팀을 발굴했습니다. 이번 소셜기록제작소에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단비기업 6기 중 8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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