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십자군 아닌 십자가 정신 필요… 물량주의·세속화 극복을”[M 인터뷰]

장재선 기자 2023. 4. 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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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 인터뷰 - 부활절에 만난 류영모 한소망교회 목사
사회 없이는 교회도 존재불가
기후 · 저출산 등 관심 가져야
젊은층 ‘소통’ 중장년엔 ‘사명’
교회도 재부흥 위한 노력 절실
대형교회 세습에 청년들 실망
최근 3년간 후임목사 승계작업
전과정 유튜브로 투명하게 공개
류영모 목사가 한소망교회 역사관에서 일산 마두동 시절(1997~2010)의 십자가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 나무 십자가를 예배당 앞이 아닌 뒤쪽에 걸었는데, 신도들이 십자가를 통과해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상징이었다.

글 · 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제가 맨땅에 헤딩하다가 이마가 많이 넓어졌잖아요.” 류영모(69) 한소망교회 목사는 유머러스하다. 맨몸·맨손으로 사역을 시작해 신도 1만6000여 명의 교회로 성장시킨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격조 있으면서도 친근한 말투는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세상의 모범이 돼야 하는 교회 소명을 말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서 허리를 곧추세우게 한다. 그는 교회 당회로부터 임기 없는 목회자로 추대받은 ‘위임 목사’이지만 후임 담임목사를 뽑아 승계 절차를 밟고 있다. 그 과정을 유튜브로 투명하게 공개하며 세습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교계에 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류 목사는 2021∼2022년 개신교 최대 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의 대표회장을 지냈다. 특유의 온화함으로 단체를 원만하게 이끌면서도 사회의 그늘을 살피는 교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활절(4월 9일)을 앞두고 국내 기독교계 대표적 지도자인 그를 경기 파주의 한소망교회로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올해 부활절은 그리스도 부활 2000년이 되는 2033년의 10년 전”이라며 “세계 기독교계와 함께 한국 교회가 부활 카운트 다운을 하며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사회는 교회가 아니라도 성장할 수 있으나 교회는 사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과 소통하며 현대인이 갈증을 느끼는 영적 정신의 샘물을 제공해야 합니다. 기후문제와 저출산·소득 양극화·세대 갈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앞장서야 합니다.”

그는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한국 기독교인의 20% 정도가 ‘플로팅 크리스천(Floating christian)’이 되었다고 했다. 플로팅 크리스천은 ‘붕 떠 있는 기독교인’이라는 뜻으로, 온라인 예배를 떠돌며 교회 출석 등 기존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런 신도들에게 관심을 갖고 교회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유비쿼터스·하이브리드 처치·메타 버스 등의 세계를 교회 시스템에 들여와 젊은이들과 소통하며 희망의 가치를 심어줘야 합니다. 또한 중장년 세대들에겐 부흥을 위해 다시 헌신하라는 사명을 줘서 ‘액티브 시니어’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는 코로나 기간 한국 교회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되돌아봤다. 전국 각지의 소규모 교회는 생존을 걱정할 정도였는데, 대형 교회는 반대였다는 것이다. “한소망교회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큰 교회들은 몸집을 더 키우는 데 몰두하는 대신에 양극화 해소를 위해 뭘 할지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한국교회총연합의 대표회장으로 취임할 때 이런 모토를 세웠다.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 방법은 바르게.’ 이 모토는 그가 취임 준비를 하며 간절히 기도한 끝에 얻은 것이었다.

그는 화려한 취임식을 하는 대신에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아 기도하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한국 교회의 뿌리를 찾아 다시 낮은 곳에서 출발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류영모 목사는 작년 10월 전주 선교사 묘역에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의 희생 정신을 새기며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한교총 제공

류 목사가 작년 10월 한교총 임원들과 함께 기독교 근대 문화유산 답사를 한 것도 같은 뜻이었다. 충청·호남·영남 지역을 둘러보며 조선조 말과 일제강점기에 기독교가 우리 근대에 끼친 영향을 살폈다.

“초기 선교사들은 교회와 함께 병원·학교를 세워서 헌신했습니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한국 교회가 현재 위기에 빠졌다면 그 해답을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류 목사는 작년 3월 울진·삼척 산불이 났을 때 그 피해 현장에 달려갔다. 재난을 당한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라는 믿음에서였다.

“피해 지역 주민들이 집을 잃고 코로나까지 걸려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어주고 싶었으나 막상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깊었는데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한교총 소속 35개 교단 회장 회의를 여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해줘서 참 고마웠습니다. 35채를 상징적으로 짓자고 결의했는데 20일 만에 돈이 다 모이더군요. 연로하거나 환자가 있는 가정 등의 추가 신청을 받아서 54채를 짓게 됐지요. 물론 건축 과정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집을 지어 주는 측과 받는 측의 입장 차가 크다는 걸 실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재를 바꿔달라는 등의 각종 민원을 들어주며 일을 끝까지 진행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교총은 오는 14일 울진제일교회에서 ‘사랑의 집짓기 완공식’을 연다. 직전 대표회장인 그는 현재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훈 순복음교회 목사 등과 함께 완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과 역할 분담을 한 것입니다. 저희는 울진 산불, 한교봉은 우크라이나 전쟁 재해민을 돕기로 한 것이지요. 그래서 한교총에 우크라이나 후원금이 들어오면 한교봉에 넘겨 주고, 한교봉은 그 반대로 했습니다. 거기서 새삼 느꼈습니다. 교리는 갈등을 낳을 수 있으나 섬김은 하나 되게 한다는 것을. 한국 교회가 하나 되는 길은 교리 논쟁이 아니라 섬김 경쟁입니다.”

류 목사는 140여 년 역사를 지닌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로 세속화하고 교권 다툼으로 분열된 것을 통절하게 반성해야 거듭날 수 있다고 했다. 세습으로 대변되는 반사회적 행태를 지양하고, 기독교 가치 아래 하나가 되는 교단 간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세계 종교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하고 또한 가장 빨리 침체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 제3의 기적, 즉 무너지다가 가장 빨리 일어난 새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가 세상 권력과 결탁하지 않고 정의의 길로 바르게 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연합기관 사역을 담당하는 이들이 이권에 매몰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군 정신’이 아닌 ‘십자가 정신’으로 섬겨야 합니다. 연합기관이 몇 사람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됩니다. 개인 야심을 버리고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야 합니다.”

그는 대형 교회 세습 문제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교회에 등을 돌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고 했다. 교회에 따라선 세습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할 수 없으나, 사람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공적 신학’이 바탕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류 목사는 “늦었으나 이제라도 교단 간 소통을 통해 신학적 논의를 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달 한소망교회의 ‘동사(同使)목사’ 선임을 교회 예배에서 공표했다. 최봉규 대구 내당교회 위임목사를 후임으로 청빙해서 1년 반 동안 함께 사역한 후 자신은 내년 말에 은퇴한다는 내용이었다.

“제 사위가 목사입니다. 아주 똑똑하지요(웃음). 제 사위를 후임으로 하자는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저희 가족은 단 한 번도 그걸 입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한소망교회는 3년 전에 승계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다른 교회로 간 목회자 20여 명을 대상으로 청빙 작업을 했습니다. 6명, 3명 등으로 간추리다가 1명을 정한 후 1년간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승계위에서 만장일치로 최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정하고, 제가 그걸 신도들에게 공표했지요. 저는 1년 반 동안 최 목사와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가치·비전과 함께 회중 공동체, 당회·제직회와의 연계 방법 등을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하니까요. 한국 교회에 대한 생각도 나누고, 목사는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유튜브로 공개할 생각입니다. 한국 교회서 처음 있는 일이죠.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신학 박사이기도 한 류 목사는 이단·사이비 종교 문제를 30여 년 동안 연구해왔다. 그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나는 신이다’가 사이비 종교 집단을 다룬 것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했다.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들어 종말론으로 공포를 퍼트리며 더러운 이익을 추구하는 독버섯 같은 집단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윤리적으로 타락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그런 집단에 대응하는 가장 본질적인 대책은 우리 교회가 더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교회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의 진리 안에서 새로워짐으로써 면역을 키워야 합니다.”

한소망교회 앞에 있는 ‘언더우드 나무’. 선교사 언더우드가 1908년 미국에서 가져와 심은 나무가 2015년 수명을 다하자, 그 뿌리에서 자란 어린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 류영모 목사와 한소망교회

‘눈물 닦아주는 복음’ 어느덧 32년… CBS이사장·한교총회장으로 헌신

“나의 눈물이 이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서 울어야 할까?”

한소망교회 역사관에 적혀 있는 글귀다. 신도들의 고락을 함께하며 치유와 회복으로 이끄는 교회의 참모습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류영모 목사는 1991년 서울 은평구 ‘피노키오 유치원’을 빌려 교회 창립 기도회를 열 때부터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음을 소망했다. 경기 고양시 지도읍(현 능곡동)에 첫 교회를 마련하며 ‘한 명이 모여도 만 명이 모인 것처럼, 만 명이 모여도 한 명이 모인 것처럼’ 진실한 예배를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교회는 개척한 지 3년도 안 돼 늘어나는 성도들을 감당할 수 없어 일산 강촌마을 상가건물로 이전했다. 여기서 부흥의 기운이 더 일어나자 신도들이 새 성전을 짓자며 자발적으로 금을 모았다. 우리 국민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하기 이전이었다.

그렇게 지은 마두동 교회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한소망 공동체를 품었다. “땅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시기였다. 성도들은 그때를 ‘푸르고 싱그러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2021년 발간 ‘한소망교회 30년 이야기’ 중)

일산과 경계인 파주 초입에 건축 부지 1만여 평을 마련해 8년 동안 새 건물을 짓고 ‘비전 채플’의 시대를 열었다. 목회자와 신도들을 건강하게 성숙시키는 프로그램 ‘비전의 사다리’ 등이 한국 교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

류 목사는 CBS 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돼 방송 사역에 힘썼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부총회장을 거쳐서 총회장으로 헌신했다. 개신교 연합 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으로서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방송 재단과 연합 기관 수장을 함께 맡은 것은 교계에서 류 목사가 유일하다.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들어서 쓴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먹을 게 없어서 몸부림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통을 받았던 저를 귀하게 써 주신 것이니까요. 그동안 이런저런 유혹을 견디며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을 감사히 여깁니다. 이제 후임 동사목사와 더불어 깨끗한 승계 모델을 만들고,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쓰러져 죽기를 바랍니다.”

△장로회신학대 학·석사 △미국 리젠트대 목회학 박사 △CBS 재단 이사장 △CTS기독교TV 공동대표이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현재 한소망교회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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