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이 부른 대체거래소…"개미에 불리" 우려 이유는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한국거래소의 증권매매체결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거래소 인가 절차에 본격 나섰다. 대체거래소 설립 근거가 생긴 지 10년 만이다. 대체거래소 출범으로 주식거래소 경쟁 체제가 시작되면 자본시장 확대, 투자비용 감소 등 선순환 효과를 창출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68년간 한국거래소 독점 체제가 이어졌기 때문에 대체거래소의 메기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금감원, 예비인가 신청 마감… 넥스트레이드 '단일후보'
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27~30일 ATS 도입을 위한 다자간매매체결회사 예비인가 심사 접수를 진행한 결과 넥스트레이드가 유일하게 신청했다.
ATS는 한국거래소(정규거래소)의 증권매매체결 기능을 대체할 수 있는 거래소다. ATS에서 거래할 수 있는 증권은 한국거래소 상장 주식과 주식예탁증서(DR)로 제한한다. 한국거래소 외에도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대체통로가 생기는 것으로, 거래수수료 인하와 호가단위 축소, 거래체결 속도 개선 등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금감원은 △법인격 △대주주 △자기자본 △인력 △전산·물적 △사업계획 타당성 △건전경영 및 사회적 신용 △이해상충방지체계 등 8가지 요건을 중심으로 예비인가 심사를 진행한다. 자기자본 요건은 투자매매업 300억원, 투자중개업 200억원이다. 전산·물적 요건의 경우 예비인가 단계에서는 사업계획서, 회사 전체 전산설비 흐름도, 외부업체와 계약 등에 기반해 심사한다.
금융위원회는 4~5월 중 금감원 심사와 외부평가위원회 평가를 거쳐 넥스트레이드에 대한 예비인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본인가 심사는 예비인가 내용과 부합 여부 등을 실지조사를 통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금융위 본인가까지 이뤄지면 6개월 내에 ATS 영업을 개시할 수 있다.
ATS 인가 절차가 시작되면서 본사 유치 경쟁도 불붙을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시는 ATS 역시 부산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상북도 역시 ATS 유치를 준비 중인 가운데 경주시가 경북도에 본사 후보지까지 제시했다. 전라북도국제금융센터 건립에 나선 전북도 유치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
◇부산 '반대'로 무산됐다 2020년 동학개미운동으로 '급물살'
ATS 도입 근거는 2013년 8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마련됐다. 금투협과 대형 증권사 7곳은 2015년 ATS 설립을 추진하면서 금융위에 거래량 제한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당시 ATS 전체, 종목 거래량 한도는 각각 한국거래소의 5%, 10%로 설정됐다. 과도한 거래량 제한으로 ATS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게 금투업과 증권사들의 주장이었다. 금융위는 2017년 증권업계 의견을 반영해 거래량 한도를 전체 15%, 종목 30%로 높이는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하지만 ATS 설립은 한국거래소에 끼칠 악영향을 우려한 부산시와 부산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2019년 금투협과 대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ATS 설립이 재추진됐다. 지지부진하던 설립 논의는 2020년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촉발된 주식투자열풍,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급물살을 탔다. 증시 폭락 이후 장기간 상승장이 유지되고 거래량이 급증하면서 ATS 도입 적기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금투협은 ATS 설립 논의를 주도하면서 참여사를 대폭 늘렸다. 지난해 11월 ATS 준비 법인 넥스트레이드를 설립했다. 넥스트레이드 발기인은 금투협·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이다. 이 외에 증권사 19곳과 코스콤,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네이버파이낸셜, BC카드, 카카오페이, 티맥스소프트도 출자사로 참여했다.
넥스트레이드 출범 직후 금융당국은 ATS 인가 설명회를 열고 본격적인 인가 절차 추진을 알렸다. 금융위 관계자는 "인가 설명회에서 밝힌 일정대로 예비인가 신청 등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중 ATS 영업 개시가 가능한 일정을 따르고 있다. 다만 인가 요건을 충족해 제때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와 남은 숙제도 많다. 시장 분할로 안전성·투명성 저하, 유동성 분산 등 오히려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거래소 자기자본 요건 장벽, 거래 대상 제한, 한도 규제 등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본격 경쟁 체제 시작... 거래 효율성 'UP' vs 시장 과도하게 분할 우려도
대체거래소의 등장은 증권시장 거래 전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쟁 구도로 매매 수수료 인하, 거래 시간 확대, 거래 속도 개선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새로운 주문유형, 거래서비스도 기대되는 요소 중 하나다. 현재 한국거래소 주문제도는 7가지 주문유형과 2개 주문조건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미 대체거래소가 자본시장에 오랜 기간 정착돼 보편화된 미국은 252가지 주문제도를 선보이고 있어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큰 상황이다.
매수-매도 스프레드 축소, 거래체결시간 단축, 시장 충격비용 감소 등 암묵적 거래비용 하락과 유동성 증대 효과도 기대해 볼 만하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대체거래소가 시장 간 경쟁을 촉발하고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2021년 말 기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된 대체거래소만 총 62개다. 미국 대체거래소(ATS)의 상장주식 점유율(거래대금 기준)은 2020년 기준 전체 시장의 11.3%에 달한다. 유럽 대체거래소(MTF)는 142개(2020년 기준)로 상장주식 점유율(거래대금 기준)은 전체 시장의 28%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 등의 대체거래소는 주문 정보가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는 기관과 외국인 등 '큰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익명거래시장(다크풀) 형태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물론 대체거래소의 등장에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건 아니다. 과도한 경쟁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매매체결 시설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한 미국에서는 기존 정규거래소 입지가 약화하고 시장이 과도하게 분할되면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에서 제기되는 지나친 시장 분할과 과도한 경쟁이 초래하는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마련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투자자 주문이 ATS와 고빈도거래(HFT)의 이익 극대화 전략의 희생물로 전락하거나 영리 기업화된 정규거래소들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면서 다양한 명목으로 거래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품 확대·규제 완화·제도 보완은 '숙제'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기에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 대체거래소의 경쟁력이 낮은 거래 비용과 빠른 주문체결 속도라는 걸 감안했을 때 이미 한국거래소의 거래수수료율이 낮은 수준이고, 체결 속도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내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체거래소 인가 신청을 금융투자협회 중심의 넥스트레이드만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체거래소의 규제 문턱도 높은 데 사업성에도 한계가 있어 보여서다.
국내 대체거래소는 증권시장에 상장된 주식 또는 증권예탁증권(DR)만 매매할 수 있게 돼 있다. 미국 ATS와 유럽 MTF에서는 주식, 비상장주식, ETF(상장지수펀드), 채권, 옵션, 증권화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 최근 증권형 토큰도 거래가 가능하다. 취급 상품에 있어 상장 주식 이외 거래가 빠르게 늘고 있는 상품 편입이 중요하다.
여러 규제도 걸림돌이다. 국내 대체거래소의 자기자본 요건과 주식 소유 제한에 대한 규제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대체거래소 자본금 요건은 매매 체결의 중개 업무만 영위할 경우 투자중개업자로서 최저 자본금 200억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직접 매매 업무도 취급할 경우 투자매매업 인가 요건은 최저 자본금 300억원이다.
미국과 유럽은 별도 설립 요건이 없다. 일본도 설립 요건이 3억엔(31억원)인 것으로 비춰봤을 때 국내 자기자본 요건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용 위험이 없는 매매 체결의 중개 업무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렇게 높은 최저 자본금을 요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자본시장법에서는 주식 등을 6개월간 정규거래소가 개설하는 증권시장 밖에서 10인 이상의 자로부터 5% 이상 매수 등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공개매수 의무가 있다. 즉 대체거래소에서 경쟁매매를 통해 주식을 매입했다고 해도 기존 정규거래소에서의 보유 비중과 합산해 5%를 초과하는 투자자들은 의무적으로 공개매수를 해야 할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거래소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ATS에서 거래하기를 꺼릴 가능성이 있다. ATS의 유동성 확보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남 연구위원은 "결과적으로 ATS 도입이 국제적 흐름과 오랜 준비 과정을 감안하면 때늦은 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매매체결 서비스의 경쟁을 통한 자본시장의 질적 도약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며 "공개매수 관련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기대되는 요인 중 하나는 매매 체결 속도의 향상이다. 자본시장법상 '다자간매매체결회사'로도 불리는 대체거래소는 이름 그대로 증권의 매매 또는 중개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를 의미한다. 기존에 증권 매매 업무는 한국거래소 독점 체제였는데 대체거래소가 설립됨으로써 매매 속도 향상을 위한 거래소 간 경쟁은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거래소는 앞서 올해 초 '2023년 핵심전략' 발표를 통해 대체거래소와의 경쟁에 대비한 매매제도 개선과 인프라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올해 1월에는 새로운 시장시스템인 '엑스추어3.0'(EXTURE3.0)을 가동해 거래처리 속도를 기존 70㎲(1마이크로초=100만분의 1초)에서 50㎲로 30% 향상시켰다.
대체거래소 인가를 준비 중인 넥스트레이드 역시 빠른 매매 체결 속도를 목표로 IT 인프라 확충을 준비 중이다. 넥스트레이드 관계자는 "목표는 한국거래소보다 더 빠른 매매 체결 속도를 구현하는 것"이라며 "IT 인프라 확대를 위한 투자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대체거래소 설립으로 거래소 간 매매 속도 경쟁이 붙으면 투자자들의 편익은 그만큼 올라간다. 특히 거래 속도에 민감한 고빈도 알고리즘 투자자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1000분의1초 단위로 매우 빠르게 매매 주문을 내면서 다른 투자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가격에 거래가 체결되도록 하는 매매 기법이다.
주식 매매의 경우 가격우선의 원칙과 시간우선의 원칙에 따라 매매가 체결된다. 가격우선의 원칙은 높은 가격을 제시한 매수자 혹은 낮은 가격을 제시한 매도자의 주문이 먼저 체결되는 것이다. 시간우선의 원칙은 같은 가격으로 주문을 낸 투자자 중 먼저 주문을 낸 순서대로 거래가 이뤄지는 방식이다.
고빈도 알고리즘 거래자들은 짧은 시간에 수 없이 많이 이뤄지는 주문의 양상을 포착하고 보다 유리한 가격에 남들보다 빨리 주문을 낸다. 이 과정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 주문과 취소를 반복하면서 이익을 취한다.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고작 1~2틱(호가단위) 정도지만 수천번 반복하면 상당한 이익이 쌓인다.
수십곳의 대체거래소가 운영 중인 미국과 유럽은 고빈도 거래가 전체 거래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주식 거래량의 50%, 유럽 주식 거래량의 20~40%는 고빈도 거래로 추정된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의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를 위해 거액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미국의 알고리즘 매매 전문가인 다니엘 스파이비는 2008년 2억달러를 들여 시카고와 뉴욕의 거래소를 연결하는 기존 광섬유보다 왕복 161km를 단축하는 새로운 회선을 설치했다. 체결속도는 기존 1000분의 17초에서 1000분의 4초로 크게 단축됐다.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은 고빈도 매매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액을 주고 이 회선을 임대했다.
짧은 시간의 매매에서도 이익을 얻기 위한 고빈도 알고리즘 거래자들의 노력(?) 덕분에 시장에는 유동성 공급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생기기도 한다. 고빈도 거래로 활발하게 매수·매도 호가를 제시하다보면 다른 투자자들 역시 원활하게 거래를 할 수 있다.
국내에도 대체거래소가 설립되면 고빈도 거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회입법조사처 연구에 따르면 대체거래소 도입으로 국내 증시에서 프로그램 매매 비중은 현재 약 10~15%에서 20%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는 긍정적 효과 만큼 부작용도 상당하다. 시세 조종을 일으키키도 하고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기관의 전유물이라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불리한 시장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고빈도 알고리즘이 시장을 교란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사건이다. 2010년 5월6일 한 투자 운용사가 거액(41억달러)의 S&P500 미니선물 매도 계약을 내자 다수의 알고리즘 투자자들은 이날 오후 2시41분부터 2시44분까지 3분 간 71억6000만달러의 거래를 했다. 이 과정에서 매수가 실종되면서 주가는 급격히 하락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5분 동안 998포인트 폭락했다 다시 600포인트가 오르는 극심한 변동성을 겪었다.
국내에서는 시타델증권이 고빈도 거래를 통해 시장을 교란했다는 혐의로 118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받았다. 시타델증권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총 264개 종목, 총 6796개 매매구간에서 시장을 교란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고빈도 거래의 특성상 불공정 거래 여부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대체거래소의 도입으로 거래 속도가 더 빨라지는 만큼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감시체계 강화의 중요성도 커진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고빈도 거래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알고리즘 매매를 하는 과정에서 시세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거나 자전거래, 통정매매 등이 의심된다면 불공정 거래로 볼 수 있다"며 "거래소가 매매 속도 개선에 노력하는 만큼 불공정 거래 방지를 위한 시장감시시스템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진욱 기자 sjw@mt.co.kr 정혜윤 기자 hyeyoon12@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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