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주다]④행동주의가 '절대 善'은 아니다…"주주보호 시스템 필요"
경영권 인수시 일반주주 배제 현상…주주이익보호 의무화가 해법
[편집자주] 대한민국 '주주'가 달라졌다. 시세차익에만 관심이던 주주들이 지배구조를 따지고 사업방향을 지적하며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주권찾기 운동' 시대다. 한국에서도 이제 막 싹 트기 시작한 주주행동, 어떻게 단단한 나무로 키울 수 있을까.
(서울=뉴스1) 이기림 공준호 강은성 손엄지 기자 =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하면서 주주행동은 그 구심점을 찾고 뭉쳐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등 긍정적 효과도 크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절대 선(善)'은 아니다. '먹튀' 논란부터 시작해 겉으로는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뒤로는 기업과 야합하는 사례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자본시장의 주요 축으로 자리잡고 긍정적 역할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감시와 견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아니어도 일반주주들도 주주행동을 보다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무엇보다 주주가치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 또한 법적·제도적으로 보완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행동주의 '가면' 쓴 장사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주주보호 선행해야
지난 2002년, 국내 대표 상장사 삼성전자(005930)는 외국계 자본 '엘리엇 어소시에이츠 펀드'(이하 엘리엇)와 지난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었다.
엘리엇은 자회사 맨체스터증권을 통해 삼성전자의 우선주를 4만주를 매집해 우선주주가 됐다. 당시 맨체스터증권은 2002년 삼성전자가 주주총회에서 '우선주의 보통주 자동전환' 정관조항을 삭제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고 수원지방법원에 정관삭제 무효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런데 맨체스터증권은 소송을 제기한 후 회사측에 별도로 접촉해 자신들이 보유한 우선주를 되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우선주 가격이 아닌 그보다 높은 단가의 보통주 가격으로 매입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엘리엇 측이 소송을 제기한 뒤 회사측에 자신들이 보유한 우선주를 보통주 값에 사 달라는 요구를 했다"면서 "이는 이면거래에 해당하며 주주에 대한 신뢰와 투명경영 원칙 등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엘리엇과 맨체스터증권의 이같은 행위는 '그린메일'이라고도 불린다. 과거 미국의 일부 펀드가 기업의 지분을 매집한 뒤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등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뒤로는 비싼 값으로 주식을 되사라고 요구하는 행위다. 만약 기업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해당 펀드는 지분을 되팔고 차익만 챙겨 떠났다. 이 펀드의 '주주행동'에 동참했던 일반주주들이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것은 물론이다.
삼성전자는 당시 엘리엇이 더이상 법적 분쟁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우선주보다 훨씬 높은 보통주값으로 지분을 되사달라고 요구한 만큼 명백한 그린메일 행위에 해당한다며 엘리엇의 행태를 비판했다.
최근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크게 활약하고 있지만 이같은 '그린메일' 행위가 벌어지지 않는지 견제해야 할 필요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지배구조 개선, 주주가치 극대화 같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기 때문에 겉으로는 환영을 받지만, 실제로는 기업을 협박하거나 야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경우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업이 먼저 자신들을 흔드는 행동주의 펀드에 그린메일을 역으로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린메일은 행동주의 자체가 아닌 회사 경영진과 일부 타락한 펀드의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국내에선 주주를 시스템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행동주의를 가장한 기업사냥꾼의 그린메일링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행동주의가 제기됐을 때는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승하고 주주도 결집하면서 지배구조도 개선될 듯 보이고 기대감이 부풀어오르지만, 이후 별다른 변화없이 주가도 원상복귀되고 마치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동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결국 주주행동 자체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교수는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법 개정안을 통해 이사 충실 의무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장하는 법률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충실의무를 다하게 되면 투명하고 건전한 지배구조와 함께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경영방침을 세우기 때문에 행동주의를 가장한 기업사냥꾼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면서 "결국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주주와 기업의 상호 신뢰를 높여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 인수시 일반주주 배제 현상…주주이익보호 의무화가 해법
그간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지분 거래 시 발생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취할 때 일반주주들은 배제된다는 문제가 제기돼왔다.
상장사의 M&A 과정에서 피인수기업의 대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높은 가격에 지분을 매각하고, 일반주주는 동일 가격에 매각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불균형이 존재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때 정해진 비율 이상의 주식을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해 일반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계획을 세웠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지난 2017년 IMM프라이빗에쿼티(PE)가 한샘의 지분을 인수할 당시 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하고 소액주주의 지분은 매수하지 않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샘의 창업주 및 특수관계인은 한샘 지분 약 27%를 주당 22만원 이상에 매각했다. 매각거래 발표 전날 종가인 11만7500원보다 2배에 가까운 수치로 경영권을 판 것이다.
지난달 2일부터 21일까지 이뤄진 한샘의 대주주 IMM프라이빗에쿼티(PE)의 공개매수 사례 역시 이런 문제의 연장선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한샘은 자사주 74만4881주로 공개매수에 참여했다. 앞서 한샘은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약 140만주의 자사주를 평균 매수단가 약 7만7000원 수준으로 매입했다.
지배주주의 비용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통해 공개매수에 참여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남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주환원정책이라는 미명 아래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했다가 불과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자사주를 대주주에게 처분했다"며 "드디어 IMM PE의 자사주 활용에 대한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주 매입에 따른 주주들의 이익을 최대주주로 이전하는 효과를 가져온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례들이 발생한다는 점이 정부가 '주식양수도 방식의 M&A시 일반투자자 보호'를 국정과제로 삼고 25년만에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부활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1997년 1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했으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M&A 촉진을 위해 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금융위는 주식의 25%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잔여 주주를 대상으로 공개매수의무를 부과하고 매수가격을 지배주주와 동일 가격(경영권 프리미엄 포함)에 적용시킬 방침이다. 공개매수 의무는 경영권 변경 지분을 포함해 총 50%+1주 이상에 적용된다.
일각에서는 공개매수의무제도가 인수기업의 부담을 키워 효율적인 M&A를 저해할 우려도 나온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경영권 거래가 있는 경우 소액주주의 지분도 동일한 가격으로 매수해야 하므로 인수기업의 자금 부담을 커져 제한된 자금으로 인수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M&A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무공개매수제도 자체보다도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법제화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훈 교수는 "평소에는 방치하고 있다가 M&A 국면에 이르러 갑자기 '프리미엄이 과도하다'며 의무공개매수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라며 "평상시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를 의무화해 수시로 프리미엄을 실시간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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