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주다]②회사와 주주 갈라놓는 '상법'…법적장치 필요하다

강은성 기자 손엄지 기자 이기림 기자 공준호 기자 2023. 4. 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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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가 '주주의 이익'까지 보호했다면 LG엔솔 분할 못해
증거개시제·증권집단소송제 등 사법 장치 통해 주주 보호해야

[편집자주] 대한민국 '주주'가 달라졌다. 시세차익에만 관심이던 주주들이 지배구조를 따지고 사업방향을 지적하며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주권찾기 운동' 시대다. 한국에서도 이제 막 싹 트기 시작한 주주행동, 어떻게 단단한 나무로 키울 수 있을까.

ⓒ News1 DB

(서울=뉴스1) 강은성 손엄지 이기림 공준호 기자 = 2022년1월, 단군이래 최대 규모로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모회사의 주주가치를 훼손한 불명예를 안고 등장했다.

회사의 CEO나 임원 등 '이사'들은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의무'다. 법으로도 규정돼 있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따르면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LG에너지솔루션처럼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행 법으로는 법률 위반이라고 보기 모호하다. 법에서 말하는 '회사의 이익'에 대주주와 기업 자체는 포함됐지만 주주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회사'가 주식회사인 이상 주주도 당연히 그 대상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주주가 회사의 구성요소에서 빠져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심각하게 저평가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의 주요인이기도 하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주주가 곧 회사다"…상법 개정하면 제2의 LG엔솔 사태 예방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09년 대법원은 법인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에 대한 의무'까지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판결한 적이 있다"며 "이 판례 하나가 주주의 이익이 회사 이익과 충돌하더라도 이사는 책임에서 자유롭도록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국내 회사법 관련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도 "그동안 국내에서 회사의 이사는 지분 20% 안팎을 가진 특정주주, 예를 들어 오너일가나 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경영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이 때문에 모든 주권은 동일하다는 주주평등주의 원칙이 존재함에도 대주주의 지분엔 '프리미엄'이 붙고 일반주주는 할인이 적용됐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특히 "주식회사의 구성요소에는 '주주'가 포함돼 있는데 국내에서는 회사와 주주를 별개로 보는 관행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상법에서 이사 충실의 의무 대상에 '회사의 이익'이라 지칭된 것이 마치 주주를 배제해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용우 의원은 상법 제 382조의3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도 포함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지난해 3월 대표발의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 LG화학으로부터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하고 중복상장하는 안건이 이사회 자체를 통과하기 어렵다. 주주의 이익이 심각하게 저해되는 '위법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LG엔솔 사태 이후 일반주주들의 분노가 커지자 물적분할·중복상장을 위한 상장 예비심사를 진행할 경우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강화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주주보호를 위한 제도개선이 사실상 처음이기에 의미는 있지만, 심사강화 단계에서도 "회사가 분할에 대해 주주와 충분한 소통을 했는지,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 보상이 있는지" 등을 심사하는 수준이다. 여전히 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상훈 교수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물적분할 등 쪼개기 상장이나 모자회사 중복상장,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등 주주권익을 헤치는 경영진의 일탈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상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법안심사소위원회 검토 안건에도 올라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곳은 없지만 물밑에서 '재계'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국회의 전언이다.

이용우 의원실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의 정당성과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 할 것 없이 공감하면서도 아직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면서 "민주당은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당대표에게 보고하고 당 차원에서 중점 추진하기 위해 내부 검토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훈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03.24/뉴스1 ⓒ News1 강은성 기자

◇증거개시제·증권집단소송제 등 사법 장치 통해 주주 보호해야

상법 개정과 함께 주주의 권익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사법적 보호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변호사)은 "미국의 경우 주주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사법적 장치로 '주주보호 5종세트'가 있다"면서 "흔히들 미국에서는 주주가치를 훼손했을 때 천문학적인 규모의 소송을 당한다고들 하는데, 그런 소송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사법적으로 주주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주주를 보호하는 사법적 장치는 △증거개시제도 △증권집단소송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주주의 손실을 실제 손실보다 더욱 무겁게 배상하는 것) △사법방해죄(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위증하거나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 국내도 위증죄를 처벌하지만 그 수위가 매우 낮음) △로펌의 원고 모집 광고 허용(주주 집단소송 등을 위해 로펌이 직접 사례를 발굴하고 광고를 통해 원고를 모집하는 행위를 허용함. 국내는 로펌의 이같은 활동이 금지돼 있음) 등이다.

증거개시제도란 일종의 '입증책임 전환'이다. 주주가 회사의 어떤 활동으로 인해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돼 소송을 제기하면 회사가 주주에게 해당 행위가 주주가치 훼손 목적이 아니었음을 입증하고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과 호주, 독일 등 주요 자본시장 선진국은 증거개시제도를 채택해 주주의 소송을 철저하게 보호한다. 이로 인해 주주는 기업보다 정보력과 자본력이 현저히 떨어지더라도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증권집단소송제도 역시 주주에게 큰 힘이 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도 증권집단소송제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국내법에선 미국이나 유럽, 그 어떤 나라에도 없는 '즉시항고' 제도가 있어 증권집단소송제도를 사실상 사문화하고 있다.

김규식 회장은 "만약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기업에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기업은 즉시항고를 활용해 집단소송 개시 자체를 막는다"면서 "항고가 진행되면 집단소송 개시를 위한 '심사'만 대법원까지 간다 했을 때 2~3년이 걸리고 그사이 본안소송은 중단되며, 지리한 싸움끝에 집단소송이 개시된다 하더라도 여기서 또 3년 가까이 시간이 소요돼 결국 즉시항고가 집단소송을 막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증권집단소송을 무력화하는 '즉시항고' 제도를 없애기 위해 학계는 물론 법무부도 오랜시간 검토를 지속하고 있지만 이 역시 재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무력화됐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의 주주보호 5종세트 중 국내에 우선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것은 증거개시제도와 증권집단소송제의 즉시항고 삭제 두가지"라면서 "상법 개정안과 함께 이같은 사법적 장치가 갖춰진다면 기업은 소송이 두려워서라도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재정립하고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경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이 서울 종로구 뉴스1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9.5/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sth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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