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주다]③2% 부족한 스튜어드십코드·전자주총…주주권 왜곡
의결권 기준일 변경·전자주총 도입 등 제도 개선 필요
[편집자주] 대한민국 '주주'가 달라졌다. 시세차익에만 관심이던 주주들이 지배구조를 따지고 사업방향을 지적하며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주권찾기 운동' 시대다. 한국에서도 이제 막 싹 트기 시작한 주주행동, 어떻게 단단한 나무로 키울 수 있을까.
(서울=뉴스1) 이기림 강은성 손엄지 공준호 기자 = 주주의 가장 큰 권리중 하나는 '의결권'이다. 국내 법에서는 주주평등주의 원칙에 따라 주식수만큼 의결권을 갖고 권리를 행사한다. 대주주의 1주도, 일반주주의 1주도 동일한 의결권이 있다.
대주주나 일반주주 외에 강력한 의결권 파워를 갖는 곳은 바로 기관투자자다. 대주주만큼은 아니지만 주요주주에 이름을 올릴 만큼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각광을 받은 '행동주의 펀드'들도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을 확보했기에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은 기업의 독단적인 경영을 견제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책이 될 수 있다.
이에 기관투자자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집사(Steward)처럼 자본을 투자한 고객을 대신해서 해당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릴 의무가 있다. 기업가치 증대가 곧 투자 수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가 탄생한 배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회사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났고, 그 이후 2010년 영국이 처음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8년8월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있다.
◇'거수기' 오명 벗고 있지만…정치적·전문성 논란 여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다. 더욱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국민연금이 지분을 많이 가진 기업들은 늘 경계태세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국내 상장자 1143개의 주주총회(825회)에서 총 3439개의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이중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은 2625건(76.33%), 반대는 803건(23.35%), 중립 또는 기권은 11건(0.32%)이었다.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2021년의 16.25%에서 7.1%p(포인트) 늘었다.
한때 '거수기'라는 오명을 썼을 정도로 주총 안건 반대에 소극적이던 국민연금은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적극적으로 반대 표를 행사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국민연금의 의결권 영향력 및 반대 의결권 행사 현황 분석'(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주총 안건 반대 비율이 2010년 8.43%, 2011년 7.89% 수준에 불과했지만,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2018년 18.82%, 2019년 19.07%, 2020년 15.75%로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수록 그 전문성에 대한 의문과 정치적 논란도 함께 커진다.
최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전문위원에 검사 출신인 한석훈 변호사를 앉히고, 그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것을 두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관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기금운용위를 자본시장, 자산운용 영역에서 경험을 갖춘 전문가로 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과 반대되는 흐름이다.
게다가 한 변호사가 활동하게 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2018년 국민연금이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 실행을 위해 기금운용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 산하에 설치한 전문위원회다. 사실상 정부 인사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상황이다.
최근 KT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행사가 정치권이나 이해관계자의 압력으로 인하여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연금기금의 적극적 주주권행사를 반대하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면서 "주주권행사 관련 지배구조에 상당한 취약점이 존재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행사와 관련한 우려는 지배구조를 강화함으로써 비판적 주장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결권 기준일 변경·전자주총 도입 등 제도 개선 필요
일반주주의 주주행동을 위한 의결권 행사도 녹록지 않다.
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들도 많은 데다, 의결권 행사 기준일이 실제 주총보다 3개월가량 앞선다는 점에서 이미 팔았거나, 기준일 이후 매수한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상장사는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난 44개사였다. 그러나 실제 주총에서는 전체 안건의 9건만 승인되는 데 그쳤다.
주주제안의 주총 통과가 저조한 이유는 주로 '표 대결'이었다. 행동주의 펀드를 필두로 내놓은 제안은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나 의결권 자문사를 설득하지 못해 표 대결에서 밀린 탓에 통과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제 일반주주들의 표 모으기 문제를 해결해야 더 나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의결권 기준일과 정기주총 일정과의 기간 차이가 크다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상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정기주총을 3월 중에 여는데, 의결권 행사 기준일은 지난해 12월31일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진입한 기업은 주가가 오르면서 주주들이 주식을 매입하고, 매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벗어난 주식들이 늘어나면서 일반주주들은 '의결권 없는 주식'을 사게 되는 셈이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의결권 기준일과 주총일이 너무 머니까 표결권이 없는 경우가 생긴다"라며 "배당 기준일도 당기는데, 법에도 없는 내용인 의결권 기준일에 대해 못 바꿀 게 없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배당제도를 개선함에 따라 상장사들이 배당액 확정 후 배당 기준일 설정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정비한 것처럼 의결권 기준일의 변경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12월 결산 주권상장법인2267개사 중 646개사(28.5%)가 올해 이같은 정관 정비에 나섰다.
이 교수는 "일반주주들이 규합돼 있다면 상장사들도 당장 도입하려 했겠지만, 주주가 모이고 단합되는 것을 경우는 적다"며 "주총일을 당기는 게 아니라, 의결권 기준일을 미루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자투표제의 활성화와 전자주총의 도입 의무화도 주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자투표제를 이용한 기업은 1669곳으로 2019년(654곳)보다 약 2.5배 증가했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전자투표시스템에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일반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위해 도입된 이래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자투표 도입 기업은 빠르게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주총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방법으로 전자주주총회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자주총은 크게 오프라인 주총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과 온라인에서만 주총을 여는 현장대체형 방식으로 나뉜다.
미국의 경우 델라웨어 등 많은 주가 현장대체형 주주총회를 인정하고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하이브리드형 주총을 허용한다. 일본은 하이브리드형 주총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재계, 투자자 모두 전자주총 도입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지만 그 방식은 여전히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상장사 638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4.2%(279개사)는 현장대체형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또한 현재 상법 제364조 '총회는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본점소재지 또는 이에 인접한 지에 소집하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국내에서 전자주총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법무부는 전자주총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지난해 말에는 회사법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상법 특별위원회를 조직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투표, 회의 등 주총 프로세스를 전자화하는 전자주총 제도 도입을 위한 검토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전자주총 방식이나, 도입 시기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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