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마침내

조성순 수필가 2023. 4. 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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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산불로 타들어 가던 아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단비에 충분히 뽐내고 충분히 즐겼던 벚꽃도 진다.

벚꽃에 홀렸던 어느 날, 사달이 났다.

차에서 내린 순간 뭔가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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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순 수필가

비가 내렸다. 산불로 타들어 가던 아픔을 달래주는 고마운 단비에 충분히 뽐내고 충분히 즐겼던 벚꽃도 진다.

벚꽃에 홀렸던 어느 날, 사달이 났다. 차에서 내린 순간 뭔가 허전하다. 인도에 올라서 가방을 보니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내려놓고 출발한 차도 보이지 않는다. 멍 하다. 뭘 해야 하지?

대청댐 다녀오던 길에 조카와 차 한잔했을 뿐인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 알 만한 가게들인데 선뜻 들어서질 못하겠다. 횡단보도 건너 미용실로 달려갔다. 우선 동생에게 연락해 차 안을 살펴보라 했지만 없단다. 동생이 조카에게 연락해 카페에 알아보니 거기 있었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언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난감해 허둥댄 적이 있었던가? 얼마 전 지리산에 가서 마음을 따라오지 못하는 몸 때문에 난감했고, 워드 작업 중 저장을 하지 않아 청탁원고가 사라졌을 때 허둥댔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방송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테러위협과 맞먹는다며 세상과 단절된 느낌에 하늘이 노랗다 하더니 과연 그랬다.

졸지에 내 세상이 닫혔다.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연락처는 물론이고, 카드와 신분증, 잊지 말아야 할 일정이 있으며 가난한 은행도 그 안에, 갤러리엔 지난 추억도 있다. 핸드폰이 내 손에 없다는 걸 안 순간, 나는 거리에 있는데 내가 사라진 것이다. 비밀번호란 주문을 외면 열리던 요지경 세상이 없으니 암흑이다.

식탁에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차곤 했다. 맛있는 반찬이라도 되는 양 오로지 그 쪽으로만 눈이 가고 손이 간다. 보기 편하게 세울 수 도 있고 무선이어폰까지 편리하고 다양하게 활용한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걸음마도 시작하기 전부터 눈을 맞췄으니 그 활용능력이야 탁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요즘 학습 환경을 보면 선행학습을 제대로 한 셈 아닌가.

버스를 타고 다시 카페로 간다. 버스 안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승객들로 가득하다. 옆자리에 동행이 있어도 각자의 세상만 본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흔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찾아 본 적은 없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도 조용한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핸드폰과 분리되었던 한 시간, 빈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마침내, 카페에서 핸드폰을 손에 넣었다. 그제야 빛이 들었다. 어둠이 걷히고 닫혔던 공간에 창이 생기고 바람도 들어온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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