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나라 키프로스]② 유네스코도 인정한 공예 산업의 도시 ‘레프카라’

키프로스 레프카라=양범수 기자 2023. 4. 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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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의 고향 키프로스의 세계적인 레이스 공예
‘레프카리티카’, 2009년 유네스코 유산 등록
14세기 초부터 시작해 아직도 전통 방식으로 제작
“마을의 은세공 기술도 레이스 공예서 유래”
“유네스코 인증 레이스 공예가, 20명 안돼… 정부 지원 필요”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2년경 그린 '봄(Primavera)'. 왼쪽에서 네 번째에 서 있는 여인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구글 아트프로젝트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중세 시대 그림에는 종종 레이스 장식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대표작 ‘봄(Primavera)’의 가운데 있는 아프로디테는 레이스 장식이 된 숄을 걸치고 있고, 아프로디테 좌측의 여성 무리 중 하나도 레이스 장식이 된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으로 묘사될 만큼 키프로스의 ‘레이스 공예’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키프로스의 레이스 공예는 ‘레프카리티카(Lefkaritika)’라고 불리는데, 공예 기술이 발전하고 전승돼 온 남동부 산간 마을인 ‘레프카라(Lefkara)’에서 유래했다.

최소 14세기부터 시작된 레프카리티카는 원주민들의 공예 기술과 1489년부터 키프로스를 지배했던 베네치아인의 자수 공예 기술, 고대 그리스와 비잔틴 시대의 기하학 패턴에서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산속 마을의 여성들을 통해 전승돼 온 이 공예 기술은 2009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지난달 24일 키프로스 레프카라 마을의 모습. /양범수 기자

지난달 24일 레프카리티카를 보기 위해 레프카라를 찾았다. 동남부 도시인 라르나카에서도 약 38㎞ 떨어진 레프카라는 트로도스(Troodos) 산지 비탈에 자리를 잡고 있다. 라르나카에서 차로 약 30분 정도 굽은 산길을 오르면 흰 벽에 붉은 지붕을 가진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곳이 레프카라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은 제품과 그릇, 레이스 장식이 들어간 식탁보, 의류, 장식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레프카라 광장에서 이어지는 3.5m 폭의 좁은 골목길에는 100m 거리에만 이러한 가게가 10여개는 줄지어 있었다.

가게들이 모여있는 골목 한쪽에서 대를 이어 레프카리티카 판매점을 운영하는 데모스 루비스(Demos Rouvis)를 만났다. 루비스는 레프카리티카에 대해 ‘마을 여성들의 삶’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여성들이 레이스 장식이 달린 의류, 식탁보, 손수건 등을 만들며 가계를 책임져왔다는 것이다.

루비스는 “1948년생인 어머니는 12살 때부터 할머니를 따라 레프카리티카를 만들어왔다”면서 “지금도 아버지가 레프카리티카를 디자인하시고, 어머니가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유네스코에서 인정하는 레프카리티카를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자는 키프로스 전역에도 약 20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루비스는 “어머니가 만드는 레이스 공예품 가운데는 가로와 세로가 1㎝도 되지 않는 네모 안에 ‘거미’ 모양을 만드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라며 “레이스 공예가들은 서로 그러한 무늬를 보고 어떤 공예가가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지난달 24일 키프로스 레프카라 마을에서 레프카라티카 판매점을 운영하는 데모스 루비스(Demos Rouvis)가 자신의 가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범수 기자

실제로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레이스 공예품들에는 ‘유네스코 인증 제품(Recognized by UNESCO)’라고 적힌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 손바닥만 한 컵 받침도 23유로(3만2000원)가량 하지만, 꾸준히 찾는 고객들이 있다고 루비스는 설명했다.

루비스는 “어머니가 만들어 교황에 선물한 레이스는 이탈리아 피렌체에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서 교황이 사용하기도 했다”면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레이스 장식이 들어간 식탁보 등을 작품으로 구매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 한 미국인이 벽에 걸어둘 작품으로 800유로(1126만원)짜리 레이스 공예품을 사 갔다”고도 했다.

다만 그는 “요즘에는 레이스 공예를 배우려는 여성들이 거의 없어 숙련공 중 가장 젊은 분의 나이가 60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레이스 장식을 만드는 것은 고된 일로 가로, 세로 20cm 정도의 장식품을 만드는 데 일주일 정도가 얼린다”고 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공예가의 개성을 레이스 장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 레프카리타는 오늘날에도 여러 기본 뜨기 종류를 결합해 손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제작법을 따르는데, 이런 기술을 숙련하기 위해서는 어린 소녀들이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수년간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근래에는 훈련을 받으려는 어린 소녀도 없거니와 기술자들 역시 까다로운 문양을 완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여겨 기술 전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루비스는 “기술 보존을 위해 정부가 지원금 등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키프로스 레프카라 마을의 데모스 루비스의 가게에서 루비스의 어머니가 레프카라티카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양범수 기자

화산섬인 키프로스는 다량의 황과 함께 은이 매장돼 있는데, 레프카라 마을은 은을 활용한 세공품으로도 유명하다. 루비스는 은세공 기술 역시 이곳 남성들이 여성들의 레이스 공예를 보고 모방하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 세공품 역시 레이스 장식을 만들 듯 은을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만들어 장식품을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가게에 함께 마련된 은세공품 매장을 둘러보니 은을 아주 얇게 만들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거나 꽃, 달 등을 표현해 만든 장식품이나 팔찌, 목걸이 등이 많았다. 12유로짜리 작은 장식품부터 수십, 수백 유로짜리 장신구들이 가득했는데, 루비스는 “그런 모양의 제품이 레프카라의 전통적인 은 공예품”이라고 했다.

루비스는 “은 공예품 역시 많은 나라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면서 “유럽과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관광객들도 방문해 은 세공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관광객들로부터 받아 책상 유리 아래 모은 지폐들을 보여주며 “최근에는 브루나이에서 키프로스를 찾은 한 왕족이 제품을 구매해가기도 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키프로스 레프카라 마을의 데모스 루비스의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는 은세공품들의 모습. /양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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