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홍 딛고 준우승' 김연경은 대관식 없어도 빛났다
프로배구 여자부가 '배구 여제' 김연경(35)의 대관식 없이 막을 내렸다.
올 시즌 흥국생명은 도드람 V리그 여자부 정규 리그 1위에 올랐지만 챔피언 결정전 트로피는 한국도로공사에 헌납했다. 2018-2019시즌 이후 4년 만의 통합 우승을 노렸지만 챔피언 결정전은 아쉽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흥국생명은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시즌 도드람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와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2 대 3(25-23, 23-25, 23-25, 25-23, 13-15)로 패했다. 5전 3선승제 챔피언 결정전에서 1,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지만 3차전부터 내리 패배를 당해 우승을 놓쳤다.
기대를 모았던 김연경의 우승도 아쉽게 무산됐다. 김연경은 2008-2009시즌 이후 14년 만의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006-2007시즌 이후 16년 만의 통합 우승에 도전했지만 한국도로공사에 발목을 잡혀 실패했다.
올 시즌 김연경은 매 경기 '배구 여제'라는 칭호에 걸맞은 눈부신 플레이로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자아냈다. 득점 5위(669점), 공격 종합 1위(45.76%) 등으로 팀의 정규 리그 1위 등극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공격의 선봉에 서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5-2006시즌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한 김연경은 데뷔 시즌부터 3시즌 연속 정규 리그 MVP를 수상하며 최고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9년 해외 무대로 진출해 일본, 튀르키예, 중국 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뒤 2020-2021시즌 흥국생명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당시 흥국생명은 '쌍둥이 자매' 이재영, 이다영의 학교 폭력 사건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혼란 속에서도 김연경이 분전했지만 흥국생명은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김연경은 시즌을 마친 뒤 중국 리그로 떠났고, 흥국생명은 6위로 추락했다.
이에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복귀를 추진했고, 여자부 최고 대우인 1년 총액 7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김연경의 복귀로 흥국생명은 올 시즌 개막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나머지 6개 구단의 감독 모두 흥국생명을 경계 대상 1순위로 꼽을 정도로 김연경의 존재는 상대에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구단 내 잡음이 일었다. 흥국생명은 지난 1월 감독 및 단장 경질 사태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특히 팀의 상승세를 이끌던 권순찬 전 감독을 부임 8개월 만에 돌연 경질해 큰 충격을 안겼다. 이 과정에서 구단의 선수 기용 개입 논란 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에 김연경은 고참 선수로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에 대한 구단의 거짓 해명에 반박하는 등 정면으로 맞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를 감쌌다. 김연경이 팀의 중심을 잡은 덕분에 흥국생명은 내홍을 딛고 정규 리그 1위에 올랐다.
흥국생명은 챔피언 결정전에 직행해 한국도로공사를 만났다. 김연경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건재를 과시했고, 흥국생명은 김연경의 활약에 힘입어 1, 2차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1, 2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 100%(6회 중 6회)를 잡으면서 우승을 향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하지만 이어진 3, 4차전에서는 도로공사의 반격을 견디지 못했다. 우승을 코앞에 두고도 승부가 5차전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이틀 간격으로 치러지고 있는 강행군에 김연경마저 체력 부담을 느낀 듯 보였다.
결국 마지막 5차전에서 도로공사에 패하며 리버스 스윕을 허용했다. 김연경은 이날 무려 30점을 터뜨리며 공격을 이끌었지만 팀의 패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연경은 경기 후 "5차전까지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놓치는 바람에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중요한 순간들을 너무 아쉽게 놓쳐 준우승으로 마치게 됐다. 이래저래 많이 아쉬운 것 같다"고 고개를 떨궜다.
김연경은 시즌 막바지 은퇴 의사를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경기를 마친 뒤에는 "많은 팬들이 오셔서 응원을 해주셨다. 아직 내가 뛰기를 원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팬들의 응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사항들을 고려해 결정하려고 한다"고 현역 연장 의지를 드러냈다.
복귀 후 국내에서 우승과는 인연이 없던 김연경의 대관식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김연경의 강한 의지는 여전히 꺾이지 않았다. 올 시즌을 마친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는 그의 행선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우승을 향한 투혼을 계속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흥국생명의 2022-2023시즌은 김연경으로 시작해 김연경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아쉽게 챔피언 결정전 우승 염원을 이루지 못했지만 올 시즌 모든 영광의 순간을 장식한 만큼 역사에 남기에 충분한 김연경이다.
인천=CBS노컷뉴스 김조휘 기자 startjo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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