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주머닛돈이 쌈짓돈' 병원-간납업체 고리 끊어야"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병원에서는 의약품 외에도 의료기기, 치료 재료 등이 대량으로 쓰인다. 이런 의료용품들은 통상 제조업체에서 도매업체를 거쳐 의료기관으로 이어지는 유통구조가 기본이다.
그런데, 도매업체와 의료기관 사이에 또 하나의 유통 과정으로 '간접납품업체'(이하 간납업체)가 끼는 경우가 많다. 의료기관의 운영자 또는 소유자가 간납업체를 만들어 유통구조 중간에 자리하는 것이다. 이유는 비용을 절감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간납업체를 통해 일종의 '리베이트'에 해당하는 중간 이윤을 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엄연한 불법이다.
현행 의료기기법은 의료기기 제조업자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경제적 이익(리베이트)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당연히 이를 위반하면 처벌된다. 또 의료법에도 동일한 취지의 규정이 존재한다.
최근에는 여러 판결에서 통상적인 도매업체의 마진율(약 5%)을 초과하는 간납업체 중간마진(20~30%)은 의료법상 금지된 리베이트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단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간납업체 비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병원의 대표는 의료기기 간납업체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싸게 사들인 치료 재료들을 비싸게 산 것처럼 속여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에 비용을 청구했다가 적발돼 지난 2018년 법원에서 2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또 2017년에는 유명 대학병원의 이사장이 간납업체 대표와 짜고 수십억 원의 리베이트를 챙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수사에서 이사장이 병원 수익을 자신이 지배하는 간납업체에 귀속함으로써 병원은 순익을 올리지 못하고, 간납업체만 연간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최근 들어서도 수도권의 한 병원에서 이와 비슷한 간납업체 비리가 있었다는 진정이 경찰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2021년 발간한 '의료기기산업 유통실태 보고서'를 보면 국내 의료기기 제조·수입·판매업체는 간납업체로부터 과도한 납품가 할인 요구, 물풀대금 지급 지연 등의 횡포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간납업체가 의료기기 공급사로부터 구입한 의료기기를 실제 구입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의료기관에 공급하고, 그 차액 중 일부를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로 제공한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한 의료기기 회사 대표 A씨는 "현재 국내에 200~300개 이상의 간납업체가 운영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들 업체는 지출 비용이 거의 없고, 영업이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간납업체는 겉으로는 정상적인 도매업체인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일반적인 도매업체가 수행하는 재고관리, 영업, 납품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특정 의료기관에 대한 납품권만 독점한다"면서 "이를 통해 일반적인 도매업체 이윤보다 훨씬 높은 중간 이윤을 취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간납업체 비리가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리베이트로 제공되는 비용이 결국 애꿎은 환자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간납업체가 납품하는 제품이 적절한 가격경쟁을 거친 게 아니라 리베이트 지급을 조건으로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고, 이처럼 부풀려진 비용은 비급여 진료의 경우 환자 부담으로, 급여 진료인 경우 건강보험공단 청구로 각각 이어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병원의 실소유주가 의료법상 1인 1개소 원칙(중복개설 금지)을 피해 가면서 여러 개 의료기관을 지배하려는 목적으로 간납업체를 설립, 운영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의료기관을 중복으로 개설해 각 의료기관으로부터 경영 수익을 취득하는 게 불법이 되는 만큼 여러 개의 의료기관이 1곳의 간납업체로부터 의료기기, 의약품, 소모품 등을 독점적으로 납품받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소유주로 군림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정부가 나서 간납업체 실태를 파악하고, 사법기관에서는 위법 사항에 대해 강도 높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간납업체가 부당하게 제품가격 할인을 요구하거나 대금결제를 지연해 국내 의료기기 업계의 경영난을 가중하고, 대형병원 납품기회를 차단함으로써 제품 개발 경쟁력까지 떨어뜨린다"면서 "일부 불법적인 간납업체가 사라지면 의료기기 납품 단가가 내려가고, 이는 곧 국민에게 의료비 절감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bi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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