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강에 법인세도 불안… “국채 발행 신중히, 지출 구조조정 강화부터”
기업 직격탄…3월 납부 법인세도 불안
세수 결손→추경·국채 발행→나랏빚
尹정부 강조해온 건전재정 원칙 타격
“지출 구조조정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세수 결손 우려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지난 3월 한 달 동안 2022년분 법인세 납부가 이뤄졌다.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급격히 꺾여 법인세 수입도 저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법인세 집계가 끝나면 올해 연간 세수 동향이 어렴풋하게나마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세수 펑크 가능성이 높아져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거나 적자 국채를 발행하면 윤석열 정부의 건전 재정 원칙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정부가 섣불리 국채 발행에 나서면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 노력으로 세수 펑크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경기 하강에 맞서야 하는 정부가 지출을 크게 줄이긴 힘든 만큼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면 서둘러 이 사실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낫다는 조언도 나왔다.
◇ 2월까지 실질적 세수 감소 작년의 4배 이상
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세청과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까지 신고·납부된 12월 결산법인의 2022년분 법인세를 현재 집계하고 있다. 재정 당국인 기재부는 긴장감 속에 법인세 유입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 둔화와 감세 정책, 공시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연초부터 세수 ‘펑크’ 우려가 커져서다. 법인세는 전체 국세 수입의 20%가량을 차지하는 주요 세목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3년 들어 2월까지 국세 수입은 54조2000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조7000억원 감소했다. 특히 세정 지원에 따른 이연세수 등 기저효과를 제외한 실질적 세수 감소분은 1월 1조5000억원에서 2월 6조9000억원으로 4배 이상 불어났다. “예상했던 흐름”이라는 재정 당국의 설명에도 올해 세수 공백 가능성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만약 2월 누적 세수 부족분(15조7000억원)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올해 걷히는 세수는 380조2000억원이 된다. 작년 세수는 395조9000억원이었다. 380조2000억원은 기재부가 올해 세출 예산을 편성하면서 추정한 세입 전망치 400조5000억원보다 20조원 이상 부족한 규모다. 정정훈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지난달 31일 열린 브리핑에서 “올해 세입 여건이 상당히 타이트(tight)하다는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작년분 법인세 수입도 예상치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재부가 올해 세수를 전망한 지난해 8월 이후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은 탓이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을 비롯한 100만개 넘는 12월 결산법인의 매출액·영업이익이 경기 냉각의 직격탄을 맞았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실적 확인이 가능한 262곳의 작년 4분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은 12조98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1% 급감했다.
◇ 세수 펑크 나면 나랏빚도 증가해
문제는 이미 정부가 올해 국세 수입 400조5000억원을 포함한 총수입을 625조7000억원으로 가정했고, 이를 토대로 올해 총지출 638조7000억원의 쓰임새를 확정해뒀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부는 경기 둔화 방어의 일환으로 총지출 계획의 65%를 상반기 중 집행하겠다고 했다. 재정을 미리 왕창 썼는데 나라 곳간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정부는 구멍 난 세수를 메꿀 방안을 고민해야만 한다.
재정 당국은 세수 결손 발생 가능성이 커질 경우 올해 세수를 낮춰잡는 세입 경정을 하거나 추경을 편성해 재정 공백에 대응할 수 있다. 적자 국채 발행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중 추경 여부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9일 열린 간담회에서 “현재는 검토하지 않는다. 올해 예산이 일정 부분 집행된 이후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세수 공백을 채우는 작업은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 24일 국회에서 확정된 올해 국가채무는 1134조4000억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9.8%다. 다만 이는 올해 경제 성장률이 2.5%일 때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정부의 현 성장률 전망치(1.6%)에 세수 결손 시나리오까지 고려하면 올해 나랏빚은 더 많이 불어날 수 있다.
정부가 이달 4일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의결한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전년보다 130조9000억원(6.0%) 늘어난 2326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총수입(617조8000억원)보다 지출(682조4000억원)이 컸는데, 재정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가 국채 발행을 84조3000억원 늘린 결과다.
◇ “지출 구조조정 강화…재정 지원은 취약계층 집중”
경제학자들은 지난해 8월 정부가 2023년도 예산안을 공개했을 때부터 “세수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세정 지원의 영향 등 2022년이 특수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23년 세수는 360조~370조원 정도 걷히는 게 정상이라는 전제하에 계산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동산·금융 거래가 줄어 자산 관련 세수가 정부 전망치보다 더 많이 감소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기가 끝나지 않은 만큼 재정 당국이 국채 발행보다는 지출 구조조정 강화로 세수 결손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레고랜드 사태나 한전채 관련 이슈에서 봤듯이 금리 상승기에 국채를 많이 발행하면 단기자금 시장에서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지출 구조조정 방안을 더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김성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긴축 재정으로 재정 적자 수준과 국가채무를 줄이면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며 “추경이나 국채 발행을 통해 지출 수준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보다는 지출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재정 지원 정책은 보편적인 방향성보다는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 교수는 “경기 둔화 상황에 정부가 지출을 확 줄이긴 힘들다. 전기·가스요금 동결에 따른 재정 지원 자금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차라리 국민에게 세수 부족 가능성을 서둘러 알리고 추경 등의 대책을 제시해두는 게 향후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는데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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