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CS의 실패, 무엇을 배워야 하나
167년 전통의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무너졌다. 한때 자산 1조 달러(약 1311조 원) 이상을 자랑했던 CS는 그간 곪았던 상처가 곳곳에서 터지며 결국 최대 경쟁사인 스위스의 UBS에 인수되는 처지가 됐다.
CS 붕괴는 1차적으로 고금리 여파로 인한 투자 손실과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한 탓이 크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경영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정타는 2021년 한 달 새 연이어 터진 영국 금융사 그린실의 파산과 미국 헤지펀드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에서 나타난 위기관리 소홀이었다. CS 경영자들은 리스크를 알았지만 이를 무시하거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위험관리 투자에 인색했다.
이들은 각종 불법적인 스캔들에도 휘말렸다. 모잠비크 뇌물수수 거래, 불가리아 마약상 돈세탁, 유럽 지역 탈세 등의 불법 거래에 연루되면서 2020~2022년 사이 벌금과 배상금으로만 40억 달러(약 5조1920억 원)를 지불했고,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자산인 투자자들의 신뢰도 잃었다.
CS 사태는 경영자의 신념과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에 반해 최근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이 부친인 고 신용호 창립자에 이어 ‘보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보험협회(IIS)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을 수상한 것은 기업 경영에 있어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모범 사례다.
IIS의 월계관상은 보험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을 기릴 목적으로 1957년 제정됐다. 수상자는 흔히 노벨상 수상자를 일컫는 ‘로리어트(Laureate)’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공적과 경영철학은 명예의 전당에 영구 보존된다. 부자가 대를 이어 나란히 수상한 것은 역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 보험산업의 큰 영광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신 창립자는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1958년 교보생명을 설립했다.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해 담배 한 갑 정도만 아끼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퇴직보험과 암보험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며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보험시장을 세계 7~8위권으로 성장시킨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국민서점이 된 교보문고 설립도 이익만 따졌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신 창립자는 평소 ‘세상에는 거저와 비밀이 없다’는 신조를 강조하며 편법으로 사세를 키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보험 외길을 걸었다. IIS가 민족자본형성과 국민교육진흥을 실천한 공로로 1996년 ‘세계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 상’을 수여한 이유다.
IIS는 아버지 뒤를 이어 교보생명을 이끌고 있는 신 의장이 외환위기 여파로 취임 당시 2500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던 회사를 매년 4000억~6000억 원의 순익을 내는 곳으로 탈바꿈시킨 점을 높이 샀다. 당시 유행이었던 외형확대 경쟁 대신 고객중심, 이익 중심 경영을 위해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한 것은 지금도 보험업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무디스 8년 연속 A1등급, 피치 10년 연속 A+등급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금융권 최고 수준의 신용평가를 받은 것도 기본에 충실한다는 경영철학을 계승한 결과다. IIS는 특히 신 의장이 사람 중심의 이해관계자 경영을 바탕으로 교보생명을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지속가능 경영철학을 가장 잘 실천하는 모범 사례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CS의 실패는 외형 확대에만 치중한 나머지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경영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탈이 나고 만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CS는 돈을 벌기 위한 논리만 강조하다가 지속가능 경영철학의 구축에 실패한 사례로 오랜 시간 회자될 것이다.
지금은 사상 유례없는 복합위기의 시대다. 앞으로 언제든 CS 같은 사례가 나올 공산이 크다. 이런 때일수록 교보생명 창립자 일가가 보여준 기업가정신이 중요하다.신용호·창재 부자에서 엿볼 수 있는 고객 중심의 경영철학, 그리고 이익만 좇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와 공동발전을 추구하는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이 더 많은 기업들에게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기본이 탄탄한 기업은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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