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우주는 스스로 진화하는 살아 있는 의식체”

고명섭 2023. 4. 7.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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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팩 초프라, 물리학자 카파토스
현대 우주론 표준모델 한계 비판
‘의식하는 우주’ 새 패러다임 제시
인간은 우주의식 품은 작은 우주
디팩 초프라(왼쪽)와 미나스 카파토스. 초프라는 하버드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은 대체의학 전문가이고, 카파토스는 미국의 양자물리학자이자 우주학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이 우주다
디팩 초프라‧미나스 카파토스 지음, 조원희 옮김 l 김영사 l 1만8800원

우주의 탄생과 진화는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한 이래 100여년 동안 물리학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분투했지만 우주는 비밀의 문을 여전히 열어주지 않고 있다. 우주의 미스터리를 해명하려는 현대 물리학의 표준 모델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의 저명한 대체의학 전문가 디팩 초프라와 양자물리학자 미나스 카파토스가 함께 쓴 <당신이 우주다>(2017)는 물리학의 표준 모델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우주의 실상을 설명하는 책이다. 두 사람이 제안하는 우주는 ‘살아 있고 의식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우주’다. 지은이들은 현대 과학이 이룬 성과를 받아들여 그 한계와 모순을 검토한 뒤 자신들의 대안적 우주론을 제시한다.

우주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은 크게 보아 세 단계를 거쳤다. 가장 오래된 것이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창조론이다. 초월적인 신이 우주를 무에서 창조했다는 신화다. 이 전통적 창조론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시대에 ‘이신론’으로 바뀌었다. 이신론이란 창조주로서 신을 상정하되 이 신이 우주라는 자동기계를 작동시키고 떠났다는 이론이다. 신은 정밀한 시계를 만들어놓고 잊어버린 시계공과 같다. 이 패러다임을 대체한 현대 물리학은 우주가 빅뱅으로 태어나 우연의 연쇄를 거쳐 진화했다는 무작위 패러다임에 입각해 있다. 우주에는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고, 생명의 탄생이나 인간의 출현도 우연이 일으킨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너무도 많다. 그러므로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표준 모델을 뛰어넘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지은이들은 먼저 우주 자체의 ‘객관적 존재’를 문제 삼는다. 우리의 ‘소박한 실재론’의 눈으로 보면 세상과 우주는 우리 인간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존재한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예로 들어보자. 들판의 장미꽃은 아름답다. 그러나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따지고 보면, 우리의 눈에 ‘아름답게’ 보일 뿐이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이런 사태는 색깔‧질감‧시간‧크기 같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우리는 우주가 무한히 크다고 생각하지만 우주 자체의 눈으로 보면 큰 것도 작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빛이 밝음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광자가 우리 망막을 통과해 밝음의 작용을 일으킨 결과일 뿐이지 빛 자체가 밝은 것은 아니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우리에게 그런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다.

지은이들이 더 깊이 따져보는 것은 양자 세계의 모습이다. 양자의 일종인 광자는 파동과 입자의 두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관측자가 무엇을 관측하려 하느냐에 따라 파동으로도 나타나고 입자로도 나타난다.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는 말한다. “양자 현상은 입자도 파동도 아니다. 관측을 하기 전까지는 물질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또 다른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좀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실험실의 원자는 이상한 것들이다. 무생물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활성체처럼 행동한다. 이들은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둘 중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한다.” 소립자 자체가 마치 마음이 있는 것처럼 존재 상태를 선택한다는 얘기다.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준 물리학은 우주가 빅뱅으로 태어난 뒤 수많은 무작위적 우연의 중첩을 거쳐 별과 은하를 만들고 생명을 탄생시키고 인간을 낳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주의 진화를 보면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이 진화의 단계마다 무수히 개입돼 있다. 빅뱅 직후의 혼돈 상태를 보자. 이 상태에서 입자는 나타나는 즉시 반입자를 통해 소멸했다. 이 둘의 수가 일치했다면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입자가 반입자보다 10억개 중 한개꼴로 더 많았다. 그 극소의 차이가 지금의 우주를 만들어냈다. 이런 기이한 우연은 우주의 초기 팽창, 초신성의 폭발, 생명의 탄생, 디엔에이 형성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이런 우연의 연쇄를 통해 우주의 탄생이 인간의 출현에까지 이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초끈이론의 추정을 빌리면 그 확률은 원숭이 100마리가 멋대로 타자를 쳐 셰익스피어 전집을 똑같이 써낼 가능성보다 100만배나 낮다. 무작위 우연의 중첩이라는 표준 이론의 설명력은 여기서 힘을 잃어버린다.

그렇다면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지은이들이 주목하는 것이 ‘미세조정’(fine-tuned)이라는 물리학 이론이다. 우주가 진화의 단계마다 스스로 미세한 조정을 거쳤기에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이론이다. 우주는 단계마다 상황에 맞게 자기를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진화의 고비들을 넘겼다. 이 말은 우주가 자기 조직화를 수행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뜻한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인체가 자기 조직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우주가 인체처럼 자기 조직화를 수행한다는 것은 그 우주가 생명 활동을 하는 실체임을 함의한다. 또 생명 활동을 한다는 것은 우주에 어떤 형태의 ‘의식’(consciousness)이 있음을 뜻한다. 자기를 스스로 조직해 가는 우주는 의식을 갖추고 생명 활동을 하는 단일체인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이 책의 설명을 따라가면, 인간은 우주의 의식 활동이 낳은 가장 고등한 의식체, 우주 의식이 가장 높이 발현된 생명체로 나타난다. 인간은 우주 진화의 모든 역사를 응축한 존재다. 그렇다면 그 인간을 자기 안에 우주를 품은 작은 우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렇다면 그 작은 우주가 큰 우주를 알아가는 것은 우주의 자기 인식, 다시 말해 우주가 자기 자신을 인식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이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현대 우주론의 주류는 ‘우주 의식’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넓게 보면 이 패러다임은 스피노자-셸링-헤겔-베르그송-하이데거로 이어지는 근대 형이상학의 우주론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이 책의 논의는 물리학(physics)과 형이상학(metaphysics) 사이에 이해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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