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파괴에 저항하는 책이 머물 곳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고전문헌학자 이레네 바예호의 책 <갈대 속의 영원> (반비)에서 로마 시대를 다룬 후반부에는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40~120?)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갈대>
지은이가 이 인물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책의 본질이 그것의 '물성'에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그것이 새겨진 책이란 사물을 통해 비로소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책 역시 그렇습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전문헌학자 이레네 바예호의 책 <갈대 속의 영원>(반비)에서 로마 시대를 다룬 후반부에는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40~120?)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히스파니아(에스파냐) 출신인 그는 후원자에게만 글을 주었던 당시 작가들과 달리 서점을 통해 누군지 모를 익명의 독자들에게 글을 파는 길을 개척했다고 합니다. ‘휴대하기 편하다’며 당시 책의 주된 형태였던 파피루스 두루마리의 대체물로 떠오른 양피지 코덱스를 열심히 활용하고 열렬히 홍보했습니다.
지은이가 이 인물에 주목한 이유는 그가 책의 본질이 그것의 ‘물성’에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그것이 새겨진 책이란 사물을 통해 비로소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지은이의 말처럼, “책(이라는 사물)의 발명은 파괴에 저항한 우리의 끈질긴 투쟁에서 가장 큰 승리”일 것입니다. 바퀴, 의자, 숟가락, 가위, 잔, 망치 등 우리 주변의 어떤 사물들은 그 기능과 디자인이 지극히 효율적이라서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책 역시 그렇습니다. 책의 물성은 개인용 컴퓨터 등 디지털 문명의 기초가 되기도 했죠.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지면서, 또 그 밖의 이유들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책의 물성을 부담스러워합니다. 도서관은 책들을 주기적으로 폐기하고, “출판사의 창고는 서점으로부터 책을 반납받는 영안실이 되었”습니다. 책의 물성을 잘 이해했던 마르티알리스였기에, 자신의 책이 “시커먼 부엌에 끌려가 고등어 새끼를 싸거나 향료나 후추를 담는 용도로 쓰이지 않기를” 빌기도 했다지요. “파괴에 저항”하는 책이 오늘날 제몫을 인정받으며 머무를 수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김건희 여사는 ‘화보’ 촬영 중?…바빠진 행보 속 보도사진 논란
- [단독] 정자교 ‘보행로’ 점검 규정 없었다…위태로운 새도시 다리들
- ‘후쿠시마 오염수’ 우려 전하러 일본 간 민주당…주호영 “반일 퍼포먼스”
- “돌덩이” 한덕수의 잇따른 실언…“똑바로 듣는 게 중요하다”고요?
- ‘퐁당 마약’ 음료에 피싱 접목…“학원가 노린 범죄 충격”
- 이재명 “부모님 묘소 훼손 유감…악의 없는 부분은 선처 요청”
- 중대재해법 원청 대표 첫 ‘유죄’ 나왔지만…“낮은 형량엔 실망”
- 심상찮은 유가…고공행진 항공권, 유류할증료에 더 오르나
- [단독] 이승만 기념관에 460억원…윤 정부 ‘건국 대통령’ 띄우기
- 겹쌍둥이 출산 뒤 산모 하반신 마비…온정의 손길 곳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