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로 시작한 ‘봄마중’…농한기 없는 ‘사계절마중’ 간다
정종환 봄마중 영농조합법인 대표 <경남 하동>
30여년간 수액 채취한 ‘달인’
플라스틱 코르크 도구 개발도
살균처리 첫 도입해 농가 선도
황율·매실청·꿀·곶감 등 취급
봄부터 겨울까지 고르게 분주
연중 부가가치 창출 성공 비결 경남>
지리산 남쪽 자락, 섬진강 상류 청정한 물줄기가 흐르는 골짜기. 이곳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 자리한 ‘봄마중’은 정종환씨(57) 부부를 중심으로 부모와 아들 내외 3대가 함께하는 가족농 영농조합법인이다.
정씨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취급품목을 특정할 수 없다. 고로쇠 수액부터 꿀·매실액·곶감·황율(말린 밤) 등 주요 취급품목이 최소 5가지다. 농한기도 없이 연중 농업활동을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여유롭다. 아이디어 농기구를 뚝딱 만들어 쓰기 때문이다. 하동의 괴짜 농부 정씨의 성공 비결엔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 적지 않다.
◆문제가 있으면 즉시 해결하라= 정씨는 대를 이어 지난 30여년간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 달인으로 업계에선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5만2890여㎡(1만6000평) 규모의 임야에서 매년 18ℓ 들이 1500통 정도를 채취한다.
이른 봄 맛볼 수 있는 고로쇠 수액은 나무 기둥에 작은 구멍을 뚫어 얻는다. 이때 상당수 농가에선 플라스틱 코르크를 나무 구멍에 꽂아 수액을 뽑는다. 이 도구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봄마중의 정 대표다. 그전까진 나무를 도끼로 찍고 톱으로 썰어서 수액을 채취했다고 한다.
과거 다른 농가에 비해 일손이 부족했던 터, 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고 도구를 만들고자 했던 게 그가 코르크 개발에 매달린 이유였다. 부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 회사까지 찾아가 금형을 뜨는 등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만든 정씨의 코르크는 전국 고로쇠 수액 채취 도구의 원형이 됐다.
고로쇠 수액에 처음 살균 처리를 도입하며 다른 농가를 선도했던 것도 정씨였다.
채취·포장 등의 과정에서 톱밥이나 먼지 등이 침투할 수 있으므로, 2000년대부터 자외선(UV) 살균기를 도입해 수액 제품의 오염 가능성을 사전 차단했다. 지금이야 살균 안하는 고로쇠농가는 찾기 어렵다.
◆연중 겹치지 않는 품목군을 선택하라= 봄마중의 생산 제품은 고로쇠 수액 외에도 여러가지다. 2009년 이전까지는 고로쇠 수액이 주품목이었다면 그 이후론 말린 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2020년을 지나면서 주도권은 매실청으로 넘어갔다. 이밖에도 꿀·곶감 등 꾸준히 공급하는 품목이 적잖다.
봄마중이 여러 농식품을 취급할 수 있는 건 품을 들이는 시기가 서로 중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고로쇠 수액은 2월 채취를 시작해 3∼4월 판매가 끝난다. 그러면 아카시아(아까시나무)꽃이 피는 4∼6월은 벌을 치고 꿀을 뜬다. 6∼8월에는 매실청을 담근다. 그리고 9월이 되면 밤을 말리고 곶감을 만든다. 한겨울 빼고는 농한기 없이, 그렇다고 특정 시기에 손이 몰리지 않고 연중 고루 일이 있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각자 맡은 역할이 다르다. 정씨의 부모는 양봉을 하고 아들 내외는 매실청 가공을 담당한다. 정씨 부부는 고로쇠 수액 채취와 말린 밤 유통을 맡는다. 한 지붕에 있지만 세부 직업은 각자 다른 셈이다.
정씨의 부지런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동지역 녹차 씨앗을 가공한 차 생산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녹차 씨는 보통 10∼11월 수매한다. 그의 계획이 본격화한다면 정씨네 가족은 한겨울에도 농한기 없이 분주할 예정이다. 고로쇠 수액으로 시작한 봄마중이었지만 이제는 연중 멈추지 않는 ‘사계절마중’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농산물 생산·가공으로 연중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정씨가 전하는 이야기의 전문은 <디지털농민신문> 회원 전용 콘텐츠인 ‘고수의 N(엔)계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수의 N계명은 성공 영농을 위한 각 분야 선도농가들의 노하우와 비결을 담고 있다.
하동=이현진 기자 abc@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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