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택의 그림 에세이 붓으로 그리는 이상향]  59. 기록의 중요성

이광택 2023. 4.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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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 첫 발견 아메리고 베스푸치일까 콜럼버스일까
아메리고 베스푸치 신대륙 처음 인식
아시아 아닌 신대륙으로 널리 알려
콜럼버스만큼 알려지지 않은 이유
그의 전기 작가 존재하지 않은 탓
예수도 사도들 없었다면 몰랐을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금 서울을 상징하는 광화문 앞 대로에 우뚝 서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생전에 꼼꼼히 기록한 일기 때문이라고 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고 예측할 수 없는 전쟁 상황이 수없이 벌어지는 와중에서도 충무공은 여느 장군들과 달리 직심스럽게 난중일기를 써 내려갔다. 만약 그가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우리가 어찌 당시 벌어진 전란의 자세한 내막과 한 인간으로서 느꼈던 장군의 고뇌와 번민을 알 수 있겠는가. 기록은 그렇게 힘이 세다.

▲ 이광택 작, ‘2008년 10월 16일 일기’

그런데 기록 중에서도 전기(傳記)의 중요성이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읽다 보니 그 전기를 쓰는 작가의 재능, 특히 유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대륙에 먼저 발을 딛은 것도 진정 위대한 일이었지만, 죽을 때까지 그는 그곳이 아시아라고 믿었다. 만약 그가 한 일이라고 당시의 학계에서 인정했다면 신대륙의 이름은 당연히 아메리카가 아니라 콜롬비아가 되지 않았겠는가. 당대 사람들은 이미 그가 밟은 땅이 아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콜럼버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앵무새, 토마토, 옥수수와 초콜릿 따위를 가지고 스페인에 돌아올 때마다 왜 그는 몰랐을까? 그것들은 익히 알려진 아시아의 눈부신 부와 문명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다리다 지친 이사벨라 여왕은 마침내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고 그는 공금횡령 혐의로 기소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모험가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진정으로 신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신대륙으로 인식하여 그 사실을 널리 알린 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말이다. 베스푸치는 선장, 지휘관이 아니라 선원, 하급 관리의 직책으로 여러 번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고 나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곳은 아시아가 아니라 신대륙이다.”

확신 아래에서 작은 책자 ‘신세계’(1503년)와 ‘4회의 항해에서 새로 발견된 육지에 관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서한’(1505년)을 발간해 그의 이름은 신대륙에 깊은 음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든 것은 발견 자체가 아니라 발견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그래서이다.

그런데 우리는 콜럼버스의 삶에 대해서는 상세히 아는데 어째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생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베스푸치에게는 전기작가가 없었던 반면 콜럼버스에게는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대륙을 발견하는 일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으므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삶에 관한 책을 쓰는 일에 매달렸다. 정작 콜럼버스는 이후 대륙의 원주민에 의해 잔인한 학살자이자 약탈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조명되어 평가가 많이 깎였다는데, 아직도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높이 서 있는 그의 동상들은 이러한 아들의 노력 덕분인 것 같다. 하긴 플라톤이 없었다면 누가 소크라테스를 알겠으며 사도들이 없었다면 그 누가 예수의 생애를 제대로 알겠는가? 미슐레가 없었다면 누가 잔다르크를 기억하겠는가!

선친께서는 91세로 작고하기 한 달여 전까지 매일 일기를 쓰셨다. 나 역시 30년 전부터 매일 일기를 써왔는데, 2007년 3월 22일부터는 명색이 화가인지라 그림일기로 확대 발전시켜 지금껏 쓰고 있다. 6000장에 가까운 분량이 되었다. 이 일기 그림도 그중 하나이다. 지난 2월 28일에 끝난 ‘상춘십곡’전(제1기 춘천예술촌 입주작가 결과보고전)에 216점이 전시되기도 했다.

이것도 분명한 기록이다. 신문 사진을 잘라 합성한 콜라주 작품. 일기에 쓰인 내용들은 훗날 춘천의 작은 역사가 되리라 본다. 서양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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